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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별
민화, 현대와의 만남 ‘남정예 민화 작가’
제 904 호    발행일 : 2016.03.21 
남정예 민화 작가

복잡한 서울 도심 속 낙원동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 추억과 여유로 가득하다. 좁기보다 아담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 골목 사이로 공방과 찻집들이 즐비해 있다. 그 속에 자리한 민화 작업실. 조심스레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벽 한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액자 2개였다. 그 크기에 놀라 뒤늦게 알아차린 액자 속에는 한 폭의 민화가  정갈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비와 모란이 소담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곧이어 물감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른 작업실의 주인은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바로 남정예 민화 작가다. 20년 동안 오로지 민화만을 그려온 그와 함께 민화의 세계로 함께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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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새 옷을 입다

  남정예 작가의 민화 속에는 절묘하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그는 민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전통 생활화인 민화에서 현대적인 미가 느껴지는 것이 신선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그녀가 현대적으로 그려낸 민화에서 왠지 모를 친근함과 동시에 새로움을 느낀다. 민화엔 항상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생활과 밀접한 것들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저 역시 집의 현관문에 조그마한 강아지가 그려진 민화를 걸어놓았어요. 집을 나설 때마다 그림 속 강아지가 집을 잘 지켜줄 것이라는 위안을 받으면서 말이죠”
  그는 자신의 작품이 과거 혹은 현재에 머물러 있기보다 서로를 잇는 징검다리 같은 작품을 바랐다.
  이 때문에 그의 현대적인 민화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작품으로 채워진 큰 달력 하나를 가져왔다. “한 대기업에서 제 작품으로 달력을 만들고 싶다고 제의가 왔어요. 예전 같았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요즘 들어 민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는 것 같아 민화를 그리는 작가로서 굉장히 반가운 현실이죠” 그는 민화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며 기뻐했다. “마치 지난 20년 동안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해왔던 시간에 대한 선물을 받은 것만 같네요”
  동시에 전통 민화가 미술사에 있어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비쳤다. 그는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민화 또한 현대 사회의 미감(美感)에 맞게 변화해야 함을 밝혔다. “전통 민화는 현대인들의 생활화라고 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민화는 현대인의 감각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생각과 달리 옛날에 그려진 민화를 보다 보면 조형적이고 현대적인 그림이 민화를 자주 볼 수 있다.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 민화다.

우연히 보고 필연으로 만나다

  “대학시절에는 공예과로 도자기를 공부했어요. 제가 민화 작가가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는 우연한 계기로 민화를 접했다. “어느 날 친언니에게 민화를 그려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게 됐어요. 막연하게 민화하면 왠지 칙칙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별다른 흥미가 생기지 않았죠”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은 민화를 직접 보게 된 이후 180도 뒤집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민화에 빠져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20년이 흘러버렸네요”
  민화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정도다. 그 전에는 작업실이 없이 전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2002년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민화 강사로 활동했다. “아마 이때부터가 민화작가로서의 삶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네요. 수업과 작품활동을 같이 하면서 직업화가로의 길을 걷게 됐죠” 그는 민화 강의 중 인상 깊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민화를 배우는 많은 분들에게 너무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전 그때마다 항상 같은 말을 얘기하곤 해요” 그에게 있어 민화는 매순간 일분일초가 행복과 재미의 연속이었다. “나도 20년이나 재밌었는데, 앞으로 계속 즐겁고 재미있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죠”
  한 분야의 길을 오랜 시간 동안 걷게 되면 어려운 일이 한번쯤 찾아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작가는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20년 동안 민화를 그리면서 힘들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민화를 시작할 당시 전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민화는 나에게 있어 항상 즐거움이었죠.” 그에게 민화는 단순한 직업 그 이상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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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가 지닌 어울림의 미학

  큰 것을 크게 그리고 작은 것을 작게 그리길 기대하지 말라. 민화는 뒤에 있지만 중요하면 크게 그리는 것처럼 기법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 “민화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기 때문에 작품을 그리는 데 있어 항상 새롭고 지루할 틈이 없죠. 채색이 밝고 명랑한 기운은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들죠”
  해학적이면서도 민화가 지닌 상징성은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예를 들어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쫒아주는 벽사의 의미를 지니며,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에 대한 질문을 듣고 그는 긴 시간 생각에 잠겼다. 그는 끝내 전부 다 애착이 가서 나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답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작품 중 여러 개를 차례차례 설명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기사 우측, 컵 속에 담겨 있다. 호랑이와 모란과 나비. 말만 들었을 때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참 사이 좋게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옛날 그림을 보면 호랑이의 파트너로 까치를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호랑이는 까치보다 모란이랑 더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죠” 호랑이와 꽃, 듣기만 할 때는 다소 어색한 조합처럼 들린다. “호랑이가 약간 무섭게 느껴질 수 있는데 모란과 같이 그려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뿐만 아니라 의미에 있어서도 이만한 좋은 뜻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지 않나요?” 나쁜 일을 쫒아주는 벽사를 뜻하는 호랑이와 부귀 영화를 의미하는 모란이 함께한 이 그림은 복이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호랑이 주변의 나비 한 마리 보이나요? 나비는 장수를 상징해요. 이 그림은 정말 좋은 의미와 염원을 담은 작품이죠”

지금의 작품, 앞으로의 남정예

  현대 사회는 불안의 시대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민화는 이런 시대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자신의 영혼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따뜻한 마음, 사랑과 같은 감정을 작품 속에 표현하죠. 나의 감정이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요" 그에게 있어 작품을 통한 독자와의 소통은 굉장히 보람있고 즐거운 일이다. “독자들이 제 그림을 보고 위로를 받고 항상 행복을 느끼길 바라요”
  그녀의 목표는 기자의 생각보다 훨씬 소박하고 간단했다. “저는 작가니까 끊임없이 작품을 그리고 전시하는 것이 나의 일이자 목표죠” 현재 경주대 문화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민화를 주제로 한 논문을 연구 중이다. “민화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작업에도 많은 도움이 돼요. 제 작품이 좀 더 내적으로 성숙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덧붙여 그는 앞으로의 작은 바람이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제 작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민화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호응을 받았고 다들 굉장히 좋아했어요” 원근법과 같은 고정적 관념이 있는 서양과 달리 자유분방함, 한국적인 독특한 색감이나 조형미에서 세계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민화가 가장 한국적인 그림인데 또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회가 된다면 민화를 세계적으로 소개할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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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민화가 취미로밖에 될 수 없었던 때 시작해서 지금은 직업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가장 행복한 직업을 갖게 됐네요” 그녀는 이 기사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을 찾고 그것에 힘껏 매진하길 강조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그는 기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며 작업실 한켠에 위치한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작업 중인 작품들이 빼곡이 쌓여 있었다. 켜켜이 쌓인 종이들 속에서 결국 원하는 그림을 찾진 못했지만 이미 작품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전시회를 상당히 자주 여는 작가 중 하나다. “열심히 해야 전시회에 작품을 내걸 수 있죠. 전시 활동을 활발히 하려면 꾸준히 열정을 가지고 작품 활동에 매진해야 해요”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그의 표정은 밝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전 작업하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집으로 돌아오는 기자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있다. 좋은 의미가 모두 모여 있다는 <꿈꾸는 호랑이>가 그려진 컵이다. 그와의 대화 후 기자가 나가기 전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는 일마다 잘되고 부귀영화 누리실 거예요” 서울에서 청주로 돌아오는 길, 컵에 담긴 물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따뜻해지는 시간이다.


이은별 기자
silverstar@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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