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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송희
‘오티스타’로 자폐인의 자립을 실현한 이소현 교수
제 905 호    발행일 : 2016.04.04 
이소현 교수

언론에서 종종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폐아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영국 레스터셔에 살고 있는 6살 아이리스 그레이스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아이리스 그레이스의 작품성은 영국 내에서 이미 유명하다. 각 계 언론에서는 모네에 견줄만한 화가라고 칭송한다. 이 꼬마 화가의 몇몇 작품은 전 세계 작품 수집가에게 높은 값에 팔리기도 했으며 안젤리나 졸리 같은 유명인도 이 아이의 작품을 구입했다.
이소현 교수는 자폐아 중 일부는 아이리스 그레이스처럼 특별한 시각적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착안해 ‘오티스타’를 만들었다. 자폐아 또한 사회 구성원 중 일부로서 더불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들을 직업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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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된 배경

  아주 어렸을 때는 선생님과 현모양처를 꿈꿨다. 이소현 교수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검소한 삶의 태도를 배웠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지내면서 경제적인 관점에 대해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친구들이 입는 예쁜 옷, 맛있는 음식, 일제 학용품 등이 부럽기도 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그런 것들을 다 가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경제, 사회, 그리고 ‘차이’에 대한 것들을 알게 모르게 배워 갔던 것 같습니다”이런 것들에 복합적인 영향을 받은 이소현 교수는 고등학생 시절 걸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자 했다. 걸스카우트에서 활동하며 중증장애인이 입원해 있는 시립병원에서 봉사활동을 자주했는데 갈 때마다 ‘왜 이 아이들이 병원에만 있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특수교육학과를 알게 됐다. 사실 이소현 교수는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정하지 못했다. 그저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 부는 인문학적인 겉멋에 물들어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려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특수교육이라는 개념이 생소해 학교 선생님도 원서를 써주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어요. 선입견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가고 싶지 않아 했고 저 조차도 있는 줄 몰랐던 전공을 선택하게 된 거죠”

자폐아의 잠재적 재능을 발견하다

  이소현 교수는 ‘오티스타’라는 디자인 기업의 대표이기도 하다. 여기서 ‘교수가 회사 대표를?’이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오티스타’는 이화여대에서 산학협력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디자인 기업이다. 이소현 교수는 ‘오티스타’를 우연히 차리게 됐다고 했다. 계획하고 있지도 않았고 회사를 어떻게 경영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폐아도 재능을 발휘해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모델이 필요했다. 이소현 교수가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랜 시간 자폐 아동을 연구하면서 그들이 가진 재능이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오티스타는 자폐증을 가진 청소년이나 성인에게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 이소현 교수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조기특수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특수교육이 앞으로 이들이 살아갈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특수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소현 교수는 “특수교육은 장애인들도 사회에서 한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이에요. 그런데 20년 넘게 특수교육을 연구하면서 보니 기업이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복지 시스템은 장애인을 일방적인 수혜자로 보는데 저는 그런 마인드가 싫었어요. 장애인의 존재와 이유의 목적에 대해 인정해주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해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장애인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이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오티스타를 시작하게 됐어요” 결국 이소현 교수는 ‘자리를 내어주면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실제적 모델을 보여주기 위해서 오티스타를 만들었다.

엄마, 교수, 회사 대표라는 세 가지 직업

  이소현 교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물론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 학교에서는 교수의 역할, 회사에선 대표의 역할을 맡으면서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나간다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요. 즐겁게 일하고 있지만 교수라는 것이 여유 시간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교수만 할 때도 자녀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는데, ‘오티스타’까지 창업하다 보니 투자해야할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이소현 교수는 ‘오티스타’와 교수 업무 사이에서 회의감을 느꼈다. 그녀는 교수로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교수로서의 업무와 오티스타를 모두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수업 준비도 ‘오티스타’를 창업하기 전보다 열심히 했어요. 교수의 본분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연구 성과가 나오기도 했어요.”
  ‘오티스타’도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절박한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고 이소현 교수는 말했다. “한 달 지나가면 월급도 줘야 되고 대충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이런 것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3년 동안 나 자신과 수많은 타협을 한 끝에 ‘아 내 일이구나’ 했어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다니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소현 교수는 ‘오티스타’를 통해 자폐인들의 실제 사례를 접하면서 특수교육학문이 더 깊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디자인 스쿨로 시작한 ‘오티스타’

  ‘오티스타’의 출발은 디자인 스쿨이었다. 특수교육과 디자인 교육을 떠올리면 덜컥 비용부터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티스타’에서는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산학협력 덕분에 차려 연구비로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여 명이 디자인 스쿨을 거쳐 갔고 현재는 7명의 청년을 정식 디자이너로 채용했다. 이들이 디자인한 작품들은 머그컵, 티셔츠, 모자, 텀블러 등의 상품에 실려 전 세계로 팔려 나가고 있다.
  오티스타의 디자인 교육에는 3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잠재된 재능을 끌어는 것, 둘째는 교육생이 자폐인이라는 것, 셋째는 작품을 자체적으로 제품화 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교육을 하긴 하지만 전문 디자인학과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과정은 아니다. 이소현 교수는 ‘오티스타’를 창업하고 자폐인에게 해줘야 할 디자인에 대해 혼자서 공부를 시작했다. “제가 자폐학생을 위한 디자인 교육을 개발하기 위해서 혼자 공부를 좀 했어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요. 근데 포커스는 아이들에게 전문 디자인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 또는 디자인 재능에 대한 평가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오티스타에서는 디자인 교육생을 뽑을 때, 먼저 평가 프로그램을 돌린다.

갈 길이 먼 우리나라 특수교육 시스템

  사실 이소현 교수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은 생소한 학문이었다. 더군다나 이화여대도 특수교육학과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더욱 심도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특수아 조기교육’을 전공하고 들어왔다. 이소현 교수는 이화여대 특수교육 전공자 중 박사 1호였고 ‘개척자’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수 교육이 정착이 안됐다는 것은 층이 두텁지 않다는 거잖아요. 개척자 역할을 해야 했어요.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돌아왔을 때 전공한 분야를 먼저 한 선배가 없어 탄탄한 동료 집단이 없었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긴 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조기특수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낙후돼 있어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원래 자폐아동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미리 봐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이런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인력이 부족해서 어린이들까지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했다. 이소현 교수는 “미리 재능을 발견해서 교육시키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직업으로 연결시키는 진로교육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요. 삶 자체가 나아진다는 개념보다 아이가 살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오티스타’는 특수교육 사례의 정말 일부분인데 우리나라 내에서는 아직까지 부족함이 많아 ‘오티스타’에 들어오고자 하는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미안해요”

‘오티스타’와 같은 사례가 많아지길

  이소현 교수는 사람들에게 ‘오티스타를 특허로 지정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오티스타’ 자체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이고 다른 곳에서 따라하면 경쟁력이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걱정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소현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저는 오히려 ‘오티스타’라는 모델이 표본이 돼서 사회에 확산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 많은 자폐인들이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어요. 지방에 살고 계신 학부모님들은 정보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예전에 비해 많이 지원과 서비스가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서울 수도권과 편차가 크다. 또 오티스타가 서울에 있다 보니 종종 지방에서 찾아오는 학부모도 있다. “천안, 대전, 수원, 용인 지역의 학생들까지만 디자인 스쿨에 등록이 됐어요. 학부모님들이 KTX라도 타고 온다고 그러세요”
  현재 지방에 확장.보급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 교육방법을 엮은 책도 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저 혼자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국가제도와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도록 조금씩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하루 빨리 자폐인이 우리나라 사회의 자립적인 존재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송희 기자
shinypin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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