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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주
구석기를 사랑한 남자, 고고학의 역사를 쓰다
제 907 호    발행일 : 2016.05.16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이융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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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을 도와주는 유용한 물건인 ‘자’는 언제부터 등장한 것일까. 문헌에 따르면 자의 기원은 5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놀라운 유물이 발굴됐다. 지금으로부터 4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에 사용하던 눈금자가 발견된 것이다. 이를 발굴한 사람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이융조 이사장이다. 자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그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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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세계, 첫 발 내딛다

  지난 6일 이융조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기자는 용암동에 위치한 선사문화연구원을 방문했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니 천장까지 빼곡히 쌓여있는 수많은 책들과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온갖 유물들이 인상적이었다. 반갑게 기자를 맞은 그는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당시 경쟁률이 높았던 공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공주사범학교는 초등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였다.
  “졸업이 다가오니 이대로 초등 교사를 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열정이 컸어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가족들은 그가 대학교에 진학하기보다 초등 교사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교에 진학해 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학원으로 이어졌고, 대학원 과정과 함께 사학과 조교를 병행했다.
  이 시기는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됐다.
  “석장리 유적 2차 발굴을 떠날 때 손보기 교수에게 구석기를 연구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손보기 교수는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를 개척한 인물로 현재 한국 구석기연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에요. 그 당시는 구석기시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어요. 처음 저도 발굴이란 것이 곡괭이질만 하면 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직접 발굴에 참여해보니 생각보다 재밌어서 세부전공을 바꾸는데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는 고민 끝에 지도교수였던 홍이섭 학장을 찾아갔다. 애제자가 세부전공을 고고학으로 바꾸고 싶다는 말에 학장은 선뜻 허락했고 ‘꼭 큰 학자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1965년 9월 1일부터 그는 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고고학 연구에 첫 발을 내딛었다.

발로 뛰며 고고학의 역사를 만들다  

  그는 자신의 진로 방향을 바꾼 만큼 이를 뒤쫒아 가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매일 학문을 쌓아가던 그에게 손보기 교수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 그 이상이었다.
  “손보기 선생님과 발굴이나 연구현장을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또한 그의 학문적 스타일을 닮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는 손보기 교수가 주도하는 석장리 조사와 제천 점말 용굴 조사에 참가하며 그의 연구방법에 대해 배웠고 이를 모델로 삼았다. 이는 1개월간의 조사와 발굴 후, 10개월 동안 이를 연구・정리하는 방식이다.
  1976년 그는 우리 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이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유적조사는 시작됐다. 그는 한데유적에서 동굴유적까지 다양한 유적을 발굴했다. 한데유적은 강변에 있는 유적을 의미하며 동굴유적은 동굴 속에 있던 유적이다. 그가 발굴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두루봉 동굴유적과 단양 수양개 유적 그리고 가와지 볍씨와 소로리 볍씨가 있다.
  “유물을 찾을 때마다 자식을 찾은 것 같이 느껴졌어요. 제가 다른 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1차에 끝낼 유적 발굴을 10차, 13차까지 끊임없이 확장하며 파고들어 연구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같이 훌륭한 유물이 발굴됐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국내.외 학계에 자주 소개하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두루봉 동굴을 발굴했던 당시, 현장은 광산으로 인해 훼손돼 마치 절벽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남겨져 있었다. 아슬한 절벽에 조그만 구멍을 뚫고 무려 5m에 달하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연구를 진행했다. 10차에 걸친 발굴을 통해 다양한 구석기 시대 동굴 유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10만 점의 구석기 유물이 발굴된 수양개 유적 역시 쉽게 찾은 것은 아니다. 수양개 사전조사 당시 비가 장대같이 와 불어난 물로 인해 그와 학생들이 탄 배는 마치 작은 나뭇잎처럼 위태로웠다. 수양개에서는 무려 13차에 걸친 발굴 끝에 4만년에서 1만 8천년 구석기 시대 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돼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일본 명치대에서는 ‘한국 수양개와 일본의 구석기 시대’란 주제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수양개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무려 22번의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벼로 가와지 볍씨를 찾아냈다. 이 볍씨는 2차에 걸친 발굴을 통해 5천 20년 전의 재배벼임을 밝혔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농사의 시작이 5천 20년 이전부터였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리고 1997년도에 발굴한 소로리 볍씨는 재배벼 이전의 볍씨인 순화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다. 이는 2003년 영국 BBC뉴스 메인을 장식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발굴된 모든 유적의 영광을 함께 고생했던 우리 학교 역사교육과, 사학과 그리고 고고미술사학과 학생들에게 돌리고 싶어요. 또한 학생들의 수많은 발굴로 수업 진행에 지장이 있었을텐데 이를 배려해주신 그 당시 다른 교수님께 감사한 맘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의 끝나지 않은 ‘학문 열정’

  그는 정년을 앞두고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을 세웠다. 이는 선사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곳으로 그간 유물 연구에 힘써줬던 우리 학교 학생들이 연구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선사문화연구원의 연구원은 총 30명인데 그 중 20명이 우리 학교 졸업생이다. 기자는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수양개 유적에서 발굴된 눈금돌과 얼굴돌의 중요성을 다양한 국제회의를 통해 알리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알려진 ‘자’의 역사는 5천 년 밖에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수양개에서 발굴된 눈금자를 통해 자의 연대가 5천 년 전에서 4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로 올라가게 됐지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수량학, 계량학의 시작점이 되며 아주 찬란한 구석기 문화였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에 시달리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참 지금 어려운 때지요. 하지만 지금의 어려움은 4.19, 5.16 시대를 겪었던 저의 젊은 시절과 비슷해요. 민주주의 혼란기였던 그때도 참 암담했죠. 하지만 75년을 살다보니 인생은 참 긴 것 같고 지금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청년들이 충실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환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박물관에서 구석기와 함께 50년을 보냈던 저의 인생은 행복했습니다”
  7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총명한 그의 눈빛에서 학문에 대한 열정과 그가 사랑한 구석기 시대의 모습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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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 수양개 1지구의 발굴 현장.                               사진제공 :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김윤주 기자
yellowtre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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