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때 저물어 가던 한국 만화 시장이 다시 성장했다. 그 이유는 바로 ‘웹툰’의 등장이다. 인터넷을 통해 등장한 웹툰은 출판 만화의 부진을 만회했고, 이어 스마트폰의 보급에 발맞춰 대중매체를 넘나들며 자연스레 대중문화에 앞장섰다. 실제로 KT경제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웹툰 시장의 규모는 4,200억 원대까지 성장했다. 또한 이 성장은 계속 돼 2018년에 이르면 8,805억 원대까지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웹툰 시장 성공의 일등 공신은 바로 ‘웹툰 작가’이다. 실제로 ‘웹툰 작가’는 좋은 컨텐츠의 생산뿐 아니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그 유명세에 수직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중 포털사이트 ‘다음(Daum)’ 완결 웹툰 2위에 당당히 순위를 올린 <밤의 베란다>의 이제 작가가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웹툰 작가로서의 시작
지난 7월 24일 <밤의 베란다>는 총 4부 46화와 마지막 화(상), (하) 편으로 막을 내렸다. 긴 호흡을 이어온 웹툰의 완결을 축하한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완결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기분이 이상해요. 완결을 오랫동안 실감하지 못했는데 마감 후 한 달 정도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어요. 긴 시간을 들인 데뷔작이었기 때문에 <밤의 베란다>는 제게 의미가 남달라요. 그리고 여전히 연습장을 펴서 공백의 종이를 보면, 저 너머에서 주인공들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그의 어릴 때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그 때는 단지 ‘만화가’라는 직업을 몰랐을 뿐,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했고 실제 경험을 쌓기 위해 펜터치(연필 등으로 스케치 된 밑그림에 펜으로 먹을 입혀 그림을 완성하는 행위)아르바이트를 하며 데뷔를 준비했다.
그의 웹툰 작가 데뷔는 어땠을까? 그는 지난 2012년 제4회 ‘다음만화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해 연재 기회를 얻고 2013년 2월 10일 프롤로그를 올리며 대중 앞에 섰다.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연락을 받고 다음 본사에 가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그 후 양해를 구하고 데뷔준비기간 약 1년을 가졌어요. 그 시간들은 부족한 자료조사와 스토리 정비에 썼어요. 그 시간 덕분에 <밤의 베란다>를 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재 기회를 얻었지만, 1년 동안의 연재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주말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며 힘겹게 데뷔를 준비한 그였지만, 데뷔를 포기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데뷔작으로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선택한 것 같아 후회가 됐어요. 캐주얼한 작품으로 시작해 실력을 길러 내공을 쌓은 후 이 작품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또 막상 수상하니 긴 기간 동안 주 1회 연재를 이끌어 갈 자신도 없었어요. 저의 얕은 바닥이 금방 드러날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그가 데뷔를 강행한 이유는 작품과 세상에 대한 강한 신념 때문이었다.
“일본의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누군가에게 한 순간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참 좋은 문학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저도 그 말과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그런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밤의 베란다>의 내용처럼 이해가 많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가 웹툰 작가로 데뷔하고 연재를 진행해보니, 공모전 때와 차이점이 있었다. 공모전은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자료를 조사하고 그림을 다듬을 때 쫓기는 일 없이 섬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연재에서는 주마다 한회씩 완성품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에 늘 시간이 모자랐다.
“매일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신 독자 분들께 죄송해요. 연재는 정말 시간싸움이기 때문에, 업로드한 당일 저녁부터 바로 다음화 콘티에 들어갔어요. 하루라도 개인적인 용무로 외출하게 되면 휴재 위험이 따를 정도였어요. 4부에 들어서는 도와주시는 분을 구해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 1회 연재는 굉장히 고된 일이었어요”
‘밤의 베란다’ 그 속으로
<밤의 베란다>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학대를 받고, 당뇨병까지 앓았던 여자 주인공 ‘유온’이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살아갈 자기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했을까? 특별한 사건이라도 있을 것 같은 기대와 달리, 그는 특별한 계기가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소재노트에 무심코 적은 ‘애(愛)인지 증(憎)인지 모를 관계의 남녀’라는 글을 공모전에 내기 위해 작품으로 다듬었어요. 그저 현대물이기 때문에 그리기 쉽지 않을까 하는 사소하고 단순한 이유였어요”
이 소재에 자연스럽게 평소 그가 하던 고민과 관심이 많았던 심리학책의 내용이 더해져 <밤의 베란다>가 만들어졌다. 이어 그는 자신의 삶의 철학도 함께 담았다. 바로 ‘이해’에 대한 내용이다. “이해가 불가능한 많은 것들은 우리에게 공포와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외면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나면 어떨까요. 마치 귀신의 집의 뒤편과 분장을 지운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것 같지 않을까요?”
그는 그의 ‘이해’에 대한 삶의 철학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밤의 베란다> 속 주인공뿐 만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주.조연의 가정사와 내면을 함께 담았다. 그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이야기를 담는 건 주인공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보다 힘들었어요. 하지만 모두가 어떤 부분을 오해받았으며 어떤 부분을 이해받고 싶었는지 묘사해야 했어요. 그래야 퍼즐이 완전히 맞춰지는 이야기였어요”
그는 독자들에게 등장인물들을 이해시키기는 노력 또한 잊지 않았다. 이를 위한 장치가 바로 화별로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독백이다.
“독자들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심리묘사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내가 캐릭터가 됐다고 생각하고 그 입장에서 말을 해 보면, 어떻게 표현해야 감정이 독자들에게 닿을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 이 작업이 심리묘사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때문에 그는 연재하며 무거운 부담감을 느꼈다. 자세 또한 남달랐다.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상처와 고통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작품에 임했다.
“슬픔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니까 단어 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썼어요. 가상의 이야기로 소비되고 있지만 누군가에겐 실제이고 삶이기 때문이에요”
웹툰에는 누구나 로그인만 하면 댓글을 달 수 있다. 그는 댓글을 꼼꼼히 챙겨보며 독자들의 삶까지 함께 짊어졌다. 무거운 이야기인 만큼 독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분명 독자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했지만, 혹여나 독자들이 자신과 캐릭터를 동일시해서 나쁜 생각을 하거나 상처를 합리화하는데 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읽어주신 모든 분들이 더 행복해지길 바라고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밤의 베란다’의 끝과 새로운 시작
그는 평소 자신을 ‘뭔가 시작하면 끝을 보는 법이 없고 일이 복잡해지면 도망가기 바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의 베란다>가 완결 된 후 그는 몰랐던 ‘나’에 대해 알게 됐다.
“막상 정식 연재를 시작하니, 상금을 돌려주고 연재를 포기할까 고민했던 저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무언가를 시작해 완성한 경험은 앞으로의 인생에 든든한 발판이 될 것 같아요. 또 버틸 수 있게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하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어요”
첫 데뷔작을 무사히 마친 그의 다음 여정은 어떨까? 그는 현재 동료작가와 함께 차기작을 구상중이다. 그는 그림을 맡아 연재할 계획이다.
“비싼 거금을 들여 신티크(웹툰을 그리기 위한 액정 타블렛)를 사던 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어요. 또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계속 웹툰을 그릴 것 같아요”
독자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밤의 베란다>의 애독자 최인영(경기도 이천시.21) 씨는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웹툰에서도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절대 서로를 이해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주인공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려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밤의 베란다>의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와 달리 독자에게 긍정정인 메시지를 전하는 이제 작가,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문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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