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란 ‘금속을 달구고 두드려 연장과 기구를 만드는 장인’을 뜻한다. ‘대장장이’라고 하면 보통 옛날 사극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이 기계화된 현대에도 대장장이라 불리는 이가 있다. 바로 서울과 대전에서 ‘한밭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전만배(60) 장인이다. 온갖 금속으로 된 물건들을 만드는 대장장이의 일 중 전만배 장인의 전문분야는 칼이며, 그중에서도 회칼과 같은 고급 칼을 만든다. ‘작품을 빚는다는 생각으로 칼을 만든다’는 그는 칼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칼과 함께 한 외길 인생, 명품 칼잡이 전만배 장인을 만나보자.
노량진 고급칼잡이, 대장간에 첫 발을 내딛다
비릿한 생선 냄새가 풍기고 사람들 소리로 시끌벅적한 노량진 수산시장, 그곳의 3층 주차장에서는 매일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린다.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구석에 자리 잡은 대장간을 만날 수 있다. 그 안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마스크를 쓴 전만배 장인이 열심히 칼을 갈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오후 3시는 한밭대장간의 마감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칼을 손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칼을 몇 번 보더니 바로 칼의 상태를 알고 손질해주는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칼의 장인이었다. 칼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기자의 상상은 그가 마스크를 벗자마자 깨져버렸다. 그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기자를 맞이해줬다.
전만배 장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대장장이였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대장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14살 때부터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어느새 46년 경력의 칼 장인이 됐다.
“원래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먹고 살기 바빠 학교를 못 다니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대장장이 기술을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 일이 우리나라 전통을 전승하는 것이기에 보람을 느껴요”
사라져가는 대장간 속에서 전통을 말하다
쇠 덩어리가 칼이 될 때까지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듯 그의 인생도 많은 굴곡이 있었다. 대장간 일은 일 자체가 힘들기도 했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더 컸다. 1985년경 까지만 해도 농경사회의 전통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대장간끼리 경쟁을 해야 할 정도로 대장간 수가 많았다. 그때는 각 분야별 기능인들도 많았다. 그러다 1988년쯤 이른바 건설붐이 일면서 대부분의 대장장이들이 철근공으로 직업을 바꿨고, 남아있는 대장장이들도 기계화로 인해 일감이 줄어들면서 대장간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때 대장간을 찾는 사람이 줄어 고민하기도 했는데, 대장장이 수가 더 빨리 줄어들다보니 일감이 줄어들지 않더라고요. 칼은 많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져요. 크게 세 단계를 거치는데 쇠를 두들겨 칼의 형상을 만드는 ‘한마’, 형상이 나온 칼을 정밀하게 다듬는 ‘대장’, 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듬어 편리롭게 하는 ‘연마’가 그것이죠.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하다 보니 많이 힘들었죠”
그는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대장장이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실력 있는 대장장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대부분이 그들의 기술을 물려줄 후계자가 없어 고민이죠. 후계자를 양성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직업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줘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더 많은 대장장이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세계적인 경쟁력이 생기고 주변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어요”
더 단단해진 대장장이가 되다
전만배 장인이 칼을 전문적으로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그 후 5년 동안 그는 전국을 돌며 칼에 대해 배우고 연구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의식주는 사람이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기에 그와 직접 관계된 물건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요리할 때 필요한 칼을 선택했고, 생산.판매.서비스를 일원화하기 위해 지금의 한밭대장간을 만들었어요”
그는 칼 중에서도 고급 칼을 만드는 데 몰두했다. 결국 그는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됐고 독일에서 연봉 17억 원에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다.
“저는 칼을 만드는 일개 대장장이일 뿐인데 독일에서까지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제가 가진 기술이 세계에 알려질 정도로 가치 있고,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들 전종렬(29) 씨는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결정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23살부터 대장장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에 전종렬 씨는 선뜻 대장장이 일을 하겠다는 아들이 대견하다 말한다.
“저는 어른들 때문에 대장장이를 시작하게 됐지만, 적어도 아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라고 조언했죠.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려다가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것이 있었는지 저의 대를 잇겠다고 했어요. 후계자를 찾던 저에게는 기쁜 소식이었죠”
전통의 가치를 지키려는 그의 노력
전만배 장인은 평생 하고 싶었던 칼에 대한 연구를 5년 전부터 시작했다. 그는 사비를 들여 역사학자들과 함께 칼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모으고 있다.
“아직 원하는 자료를 찾지는 못했지만 칼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기술을 보존하고 싶어요”
그의 꿈은 그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충고한다.
“대장장이라고 하면 아직도 천시하는 풍조가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처럼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이 가진 전문성을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막상 취업을 못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런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가치를 가지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을 찾으면 소중한 지금의 시간을 투자해 보세요. 그게 바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 생각해요”
전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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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