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개, 강아지라는 말을 넘어 반려견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반려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다. 강아지가 친구이자 가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렇게 반려견과 사람은 더욱 긴밀한 관계를 보이게 됐지만, 이들에게는 아직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다. 가령 반려견이 소파를 물어뜯거나 식기류를 깨뜨려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이러한 문제견의 행동을 바로잡아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동물행동교정훈련사(이하 훈련사)이다. 기자가 만난 이웅종 훈련사는 그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27년 동안 강아지와 동고동락하며 한길로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반려동물을 사랑한 그의 첫 발걸음
경기도 화성시 외곽, 한적한 도로와 뉘엿뉘엿 단풍이 물들어가는 숲 사이에 그가 운영하는 ‘이삭애견훈련소’가 있었다. 재밌는 시설물과 장난감이 가득한 훈련소 안뜰에서는 강아지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몇몇은 집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어 마치 놀이터 같은 분위기였다. 기다리고 있던 기자에게 그가 밝게 웃으며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미소와 함께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동물이라면 다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막연히 동물 농장을 차려, 가꿔 나가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고 그 꿈을 접게 됐다. “어렸을 때는 동물 농장을 차리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선 땅이나 축산시설 등이 꼭 필요한데, 재정적으로 저희 집이 어려웠기 때문에 꿈을 포기했죠” 하지만 동물을 좋아했던 그에게 다른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그는 전문애견훈련사로부터 비싼 가격에 순종 아키타견을 분양받았다. 하지만 분양받아 키운 아키타견이 낳은 강아지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없었다. 이 일로 그는 전문 교정 훈련에 따라 애견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애견 산업의 부가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가 훈련사라는 직업에 확신을 갖게 된 계기도 우연히 찾아왔다. “군 생활을 부산 가덕도라는 섬에서 했어요. 그곳은 초소별로 군견이 배치돼 있었는데 선임이 그중 한 마리를 관리했죠. 일정 주기마다 그 군견을 훈련시켰는데 선임 보조자 역할을 하면서 개를 훈련시키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어요. 원래 동물을 좋아했고 적은 돈으로도 노력만 있으면 문제없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말년 휴가 때 우체국 전화번호부를 뒤져 한 훈련소를 찾아갔고, 군대 제대 후 1991년 12월부터 수습 훈련생으로 훈련사에 발을 담그게 됐죠”
말단 수습 훈련생부터 최고의 동물조련사가 되기까지
그러나 그의 처음 훈련생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가족의 반대도 심했고 재정적인 여건도 좋지 않았으며, 훈련 방식을 배우는 것도 명확한 틀이 없어 힘들었다. “군대 제대하고 훈련소에 들어간다니까 부모님이 ‘개를 훈련시키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냐’고 반대하셨어요. 또 훈련소에서는 체계화된 교육 방식도 없었죠. 이론적인 공부는 주로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출판된 책을 번역해서 읽어야 했어요. 실제로 하는 실습에서는 그저 선배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비슷하게 따라 하는 것이 전부였죠”
하지만 그의 끈질김이 이러한 열악함 속에서도 그를 이 분야의 최고로 만들었다. “훈련소에 들어오면 보통 3년에서 4년 정도의 교육을 받고 개인 훈련소를 차리곤 했죠. 하지만 저는 9년을 했어요. 처음에는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1년만 하려고 했죠. 하지만 1년으로는 가정견, 사육견 등 단계별로 밟을 수 있는 과정에서 초급 단계밖에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3년 정도만 더 해보자’ 하고 하는 데도 중급 단계까지 밖에 수료할 수 없었어요. 저는 ‘최고 단계도 못해본 사람이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겠냐’고 생각하고 계속 배워 나갔죠. 그러다 보니 9년이 흘렀어요. 그렇게 한 곳에서 오래 있다 보니 자연스레 ‘착실하다’는 평판이 쌓이게 됐고, 3년에서 5년 만에 훈련소를 차린 다른 동기들에 비해 몇 년 늦게 훈련소를 차렸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그동안 꾸준히 쌓아온 평판 덕에 오히려 저를 찾아 반려견을 훈련시키려는 분이 많았죠”
이후 <수학의 정석>의 저자인 홍성대 씨와의 만남은 그에게 또 다른 도약의 계기를 만들어 줬다. 홍성대 씨는 우리나라에서 반려견을 가장 잘 교육시키는 사람이 이웅종 훈련사라고 들었다며 반려견 훈련을 요청했다. 그의 반려견은 훈련 시범 견으로 활동할 정도로 교육을 잘 받아들이고 지시를 잘 따랐다. 하지만 홍성대 씨는 불만스러웠다. “그때 그분의 말이 아직도 선명해요. 자신의 반려견이 자기 말을 너무 안 듣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접 찾아가 보니 또 제 말은 잘 들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아무리 훈련을 잘 시켜도 내 말을 안 들으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훈련법을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하라고 조언을 하셨어요”
이웅종 훈련사는 그의 말을 듣고 공감했다. 정작 훈련사는 반려견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지만, 견주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견주에게 적절한 훈련 방안을 알려주기엔 당시 그도 자질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비해 반려견 문화가 발달된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3개월과 6개월 과정으로 연수를 떠났다. 미국과 일본에선 이미 견주와 반려견이 함께 참가하는 방식으로 훈련이 이뤄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목줄까지 풀어 놓고 견주와 반려견이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보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그는 표준화된 공개 프로그램 개발에 힘썼다. 프로그램 ‘개과천선’이 대표적인 성과물 중 하나이다. “훈련소에서 진행하는 개과천선 프로그램은 견주가 반려견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에요.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나서 실제로 한 행사장에 가서 견주와 반려견이 훈련시범을 보였죠. ‘앉아’, ‘엎드려’ 등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훈련사가 아닌 일반인이 시범을 보이니 당시 많은 사람이 놀랐죠”
훈련법을 공개하지 않던 다른 훈련소와는 달리 이웅종 훈련사는 개과천선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훈련 방식을 공개했고 국내 최초로 견주와 반려견이 함께 하는 훈련방식을 개발했다. 남들과 다르며 한발 먼저 앞서나간 그의 훈련 방식은 노력과 열정의 결정체이며 그를 감히 국내 최고의 반려견 훈련사, ‘강아지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들어줬다.
현재진행형인 반려동물을 향한 애정과 목표의식
그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반려견과 연관된 공인 자격증을 만드는 일은 꼭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코리아 스탠다드 도그’라는 공인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지금 제가 이루고 싶은 가장 큰 목표에요. 사회성, 복종 등 특정 지표를 가지고 반려견과 견주가 얼마나 호흡을 잘 맞추는가를 확인하는 거죠. 올바른 교육방식을 통해 문제견을 줄이고, 반려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버려지는 유기견 수를 줄이는 사회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요. 또한, 자격증을 취득한 견주의 반려견은 공공시설의 출입을 비교적 자유롭게 하는 혜택을 주는 거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반려견을 늘리고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지자체가 협력해 주면 좋겠어요”
이어 그는 자신의 꿈을 찾는 대학생을 위해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끝을 보고자 하는 생각이 중요해요. 쉽게 성취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는 또한 자신이 하고자 한 일이라면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취업 한다 해도 보통 3개월, 6개월씩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대다수에요. 하지만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그 일에 대해 지레 포기하고 그만두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요. 진득하게 한 곳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끈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언젠가 빛을 보는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손은택 기자
grace@cbnu.ac.kr








손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