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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윤정
그를 통해 만난 ‘천상의 색’
제 914 호    발행일 : 2016.12.05 
이정오 단청장

고궁, 사찰, 또는 숭례문과 같은 문화재를 찾아가면 지붕 처마 끝에 색이 칠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단청이다. 단청이란 광물성 안료(물 및 대부분의 유기용제에 녹지 않는 분말상의 착색제)인 진채로 건조물이나 공예품 등에 채색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청.적.백.흑.황의 오색으로 색이 입혀진 단청은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매력을 갖고 있다. 또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양을 바탕으로 동양의 미를 선과 면으로 표현한다. 이정오 단청장은 ‘단청은 천상의 색’이며 ‘색과 세계 즉,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로 일흔인 그는 고운 단청처럼 환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단청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그의 삶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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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으로 물든 그와의 만남

  지난달 26일, 기자는 2시간의 버스 여행 끝에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전통나래관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첫 만남의 순간 기자의 눈을 끈 건 그가 매고 있던 넥타이였다. 단청처럼 오색으로 물든 넥타이를 맨 그는 바로 대전무형문화재 제11호 ‘이정오 단청장’이었다.
  그는 유년시절을 사찰에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있던 사찰에 찾아온 한 스님을 만나면서 단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 스님은 단청 분야에서 당대 최고로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됐던 김일섭 스님이었다. 이후 그는 스님이 단청 작업하시는 모습을 늘 보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기보단 늘 보고 접했던 것 같아요. '그런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현재까지 단청 일을 하고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해요. 스님께서 단청을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어요. 그래서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10~30분 혹은 1시간씩 단청 일을 하곤 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단청을 접하게 됐어요”
  그는 1974년 문화재청에서 실시하는 지정문화재 수리기술자(단청기술자)선발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단청 일에 발을 들이게 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6세였다. 생활 속에서 단청을 접해오면서 자연스럽게 발을 들이게 됐다는 그에게 혹시 다른 꿈은 없었는지 물었다.
  “현대건설과 같은 큰 기업의 회장이 돼 많은 직원들을 거느리고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문화예술관과 같은 것을 지어 관장이 되는 꿈도 꿨었어요. 현재 큰 기업의 회장은 아니지만 과거에 그 꿈들이 자연스레 이뤄졌다고나 할까”

안 된다 하지 말고, 한 번 해봐라

  2000년 10월 30일은 이정오 단청장이 대전무형문화재로 등재된 날이다. 그의 단청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경력과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무형문화재인 그가 어릴 적 기업가의 꿈을 이뤘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정문화재 수리기술자(단청기술자)선발 시험에 합격한 후 그는 지인의 소개로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단청 작업을 하며 책임감을 갖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그는 최고 연봉을 받는 지위까지 올라갔다. 이후로도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계속됐다. 단청 뿐 아니라 종합적인 문화재 보수 및 복원으로 업무영역을 확대됐다.
  그러던 중 1988년, 충청권에서 문화재 보수 정비를 해오고 있던 친구가 문화재 보수에 힘을 보태달라고 부탁을 해 대전광역시로 내려오게 됐다. 이를 계기로 문화재 보수와 관련된 일을 하는 건설회사의 전무로 입사했다. 후에 그는 그 회사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기업가가 됐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그가 단청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가의 꿈도 이뤄낸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5개 건설 회사를 장악할 정도로 자칭 왕회장이 됐어요. 그래서 가끔 강의를 하게 되면 ‘안 된다 하지 말고 한번 해봐라’라고 말해요. ‘어떻게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라’라고요. 과거와 달리 현대는 분야별로 세분화 됐기 때문에 한 가지만 잘해도 먹고 살아요. 그래서 청년들에게 한 가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해요”
  그는 앞으로 자금을 모아 문화공간으로 사용할 건물을 짓고 싶다고 했다.
  “전국 어디서나 나를 만나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편히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기술과 재주를 전해주고 싶어요”
  한편, 그의 아내는 소리를 하는 예술인이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대전광역시에서 ‘문화 부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가 지을 문화공간을 한 층은 소리 공간, 또 다른 층은 공예 공간으로 만들어 부부가 가진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아름다움 속에 내재한 위험

  단청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건설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먼저 건물을 지어야만 지붕 처마에 단청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과 같은 곳에 단청을 작업하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연습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교하고 미세한 작업이기 때문에 약간의 손 떨림도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단청은 ‘출초’에서 시작한다. 단청의 초안도를 두꺼운 초지에 그대로 옮겨 그리는 작업이 출초다. 출초로 완성된 밑그림 도안의 윤곽선을 따라 바늘로 구멍을 뚫는 ‘천초’작업 후, 단청을 작업하기 위한 곳에 미리 바탕색을 칠하는 ‘가칠’을 해놓는다. 가칠한 자리가 마르면 그 자리에 천초로 구멍을 뚫은 종이를 올려 단청 문양의 도안을 새긴다. 도안은 조개가루인 호분 뭉치로 구멍이 뚫린 자리를 따라 천천히 두들기는 ‘타분’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이후 도안을 따라 여러 명의 단청기술자들이 맡은 부분에 색을 순서에 따라 입히는 ‘시채’과정을 진행한다. 시채과정이 끝나면 경우에 따라 금박을 붙이기도 한다. 모든 채색이 끝나면 먹으로 외곽선을 그리는 작업이 남는데, 이때 외곽선의 두께가 일정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숙련된 기술자가 이 작업을 맡는다.
  “건물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청은 대부분 혼자 작업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단청기술자들이 분업하죠. 예를 들어 꽃문양을 단청한다고 하면 한 사람은 꽃잎 색, 다른 한 사람은 꽃 테두리 색 이런 식으로 분업해서 색을 입혀요. 결국 하나의 꽃문양에도 5명 이상이 붙어 작업하게 되는거죠”
  단청을 복원하는 과정은 더욱 복잡하다. 손상된 단청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칠해져 있는 색을 모두 지우고, 오물을 제거한 후 접착제 등으로 손상된 부위를 꼼꼼히 보수한다. 그러고 나서 앞의 과정을 그대로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단청은 아름다운 빛을 뽐낸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 속에는 위험이 따른다.
  “단청은 대부분 사람보다 높은 곳에 있어요. 그래서 기술자들은 가설공사를 통해 임시로 만들어진 발판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작업해요. 작업을 하다보면 발판 밑으로 빠지거나 떨어져 다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죠. 실제로 이 일을 하면서 사고당한 동료들을 여럿 봤어요”
  이렇듯 위험한 상황에서도 섬세하게 색을 입히는 단청기술자들이 있기에 오색의 빛을 발하는 단청이 탄생하는 것이다.

최상의 위치에서 남은 일, 후계양성

  단청은 원래 사대부가, 사찰, 관아 등의 건물에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찰의 단청은 권위와 장엄을 통해 사람들의 신심을 이끌 목적으로 했다고 한다. 또한 목조 건물의 단청은 자연 현상으로 인한 부식과 해충을 막아준다.
  이정오 단청장은 합천 해인사 대웅전, 온양 현충사 현충각, 대구 영남루, 직지사 대웅전, 대전 덕수암 대웅전 등의 단청을 작업해왔다. 어린 시절 일상으로 찾아온 단청과 평생을 함께 한 그는 이제 후계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기업에서 대표까지 했으면 더 올라갈 곳이 없는 것처럼 무형문화재가 됐다는 것은 문화재 대통령이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제자를 받아 후계자를 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수업시간은 물론 그 외 시간에도 제자들과 만나 항상 같이 연습하고 기량을 높일 수 있게 도와주고 있죠. 그리고 단청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가 조언과 지도를 해주고 있어요”

  화려한 단청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온 기자는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단청을 바라봤으면 좋겠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단청을 보게 되면 저절로 넋을 놓게 될 거에요”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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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정 기자
joo@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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