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도깨비>가 종영했다. 케이블 드라마 최초로 시청률 20%을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은 이 드라마는 그 무섭다는 한한령(중국 내 한류 금지령. 드라마 <도깨비>도 중국에서 방영이 금지된 컨텐츠 중에 하나다)을 뚫고 중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에서 도깨비 역할을 맡았던 공유는 ‘중국판 트위터’라 불리는 ‘웨이보’에서 검색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렇게 드라마 <도깨비>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사람들은 우리나라 도깨비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열심히 우리나라 도깨비의 특성과 모습에 대해 찾아보던 중 김종대 교수의 기사를 접하게 됐고, 30년간 도깨비 연구에 매진해온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6일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인생의 반을 함께 하게 된 이유
지난 6일 중앙대학교 법학관 8층에 있는 김종대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실 문을 열자 도깨비와 관련된 책으로 빽빽하게 차있는 책장에 둘러싸인 그가 있었다. “뭐 타고 왔어요?”라고 물으며 기자를 맞아주는 그의 얼굴은 왠지 도깨비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그는 어떻게 도깨비와 인연을 맺었을까. 김종대 교수는 중앙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같은 대학원에서 구비문학을 전공했다.
“학부 때는 현대문학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졸업 후에 민속 박물관에서 일을 했는데 자연스럽게 구비문학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원에서는 구비문학을 전공하게 된 거죠”
구비문학을 전공한 김종대 교수는 1985년도부터 산으로 바다로 도깨비와 관련된 민담을 찾아 다녔다. 왜 하필 도깨비였을까? 그가 박물관에서 일할 때 1년에 한 번씩 갈 수 있었던 조사 사업으로 전라북도 위도를 찾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우 흥미로운 도깨비 얘기를 들었다.
“그 당시에는 박물관에 돈이 별로 없어서 1년에 한 번만 민속 문화에 대한 조사를 갈 수 있었어요. 한번은 민요와 관련된 조사를 위해 전북 부안군 위도에 갔어요. 그런데 창을 하던 영감님이 노래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도깨비 이야기를 해줬어요. 도깨비는 위인을 어린 시절부터 알아본다는 거였죠. ‘그게 정말이에요?’라고 물어보면서 듣다보니 재밌는 거예요. 그 이야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죠”
어르신의 이야기는 그의 인생을 바꿔 놨다. 그에게 도깨비는 인생에 찾아온 기회였고, ‘도깨비 박사’라는 명칭까지 얻게 해줬다.
“요즘 드라마 <도깨비> 때문에 제 연구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그 전에도 몇 번 도깨비로 관심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아쉬운 건 이 관심이 금방 식는다는 거예요. 지속적인 관심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이런 관심이 계속돼야 우리나라 도깨비도 많이 알려질 수 있거든요”
도깨비가 정말 있을까?
그에게 도깨비를 연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어봤더니 사람들이 도깨비의 존재를 믿어주지 않았을 때라고 말했다.
“도깨비 연구를 시작했을 당시에 시골을 돌아다니다보면 우리나라 도깨비의 진짜 모습에 대해 알고 있는 어르신이 꽤 있었어요. 민담은 대부분 직접 경험한 내용으로 이뤄진 것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도깨비가 진짜 있다고 믿어요”
김종대 교수는 1986년 도깨비와 관련된 첫 논문인 ‘한국 도깨비담 연구’를 발표했다. 하지만 논문을 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도깨비 얘기를 낯설어 했다.
“처음 논문을 냈는데 우리나라만의 도깨비가 있다는 얘기를 사람들이 믿지 않았죠. 또 <깨비 깨비 참도깨비>라는 동화책을 냈는데 그 당시에는 뿔 달리고 방망이를 든 도깨비가 우리나라 도깨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동화책에 나온 도깨비 모습을 믿지 않았어요. 그래도 책은 잘 팔려서 다행이었죠”
그는 이렇게 말하며 좌절했던 순간을 웃음으로 넘겼다. 사실 우리나라 도깨비는 머리에 뿔을 달고 있지도 않고 방망이를 들고 있지도 않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도깨비의 모습은 ‘일제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뿔 달리고 철퇴 들고 있는 도깨비는 일본에서 건너온 거예요. 또 여러 동화책에서 도깨비 색깔이 알록달록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도깨비는 여러 가지 색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사실 우리나라 도깨비는 정형화된 형태로 말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각자 마음속에 떠올리는 도깨비의 모습이 있다면 그게 도깨비의 모습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뿔이 있거나 방망이를 들고 있진 않아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도깨비의 모습은 일본의 ‘오니’ 모습에 가깝다. ‘오니’는 일본에서 무시무시한 괴물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덩치가 크며 세 개의 손가락과 날카로운 손톱, 전신에 빳빳한 털이 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종류도 한 가지가 아니라 외눈박이, 몸에 색깔이 있는 오니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오니’와 다르게 인간과 친해지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요. ‘남자를 만나면 친구하자고 하고 여자를 만나면 부부관계를 맺자고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거든요. ‘오니’는 민가를 습격하고 사람들을 공격하기 때문에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는 반면, 우리나라 도깨비는 매번 인간과의 씨름에 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 이겼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아요. 오니와 인간이 같이 씨름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그만큼 우리나라 도깨비가 인간과 친했다는 거죠”
도깨비 방망이 얻기
우리나라에 도깨비가 실제로 있다면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김종대 교수에 따르면 도깨비는 갯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도깨비와 관련된 민담 중 대부분이 갯벌이 많은 서해안에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갯벌에 가면 썰물 때 물에서 ‘퐁퐁’ 소리가 나거든요. 그 소리가 나면 도깨비가 걸어가는 소리라고 어떤 어르신께서 말씀해주셨어요”
우리나라 도깨비 민담은 산에 관련된 것과 바다에 관련된 것 둘로 나뉜다. 산에서 사는 도깨비 민담은 주로 인간이 도깨비의 영역을 침범해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이 있고, 바다에 사는 도깨비 민담은 풍어를 빌며 도깨비에게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가 많다.
“산에 사는 도깨비 민담을 보면 인간이 산 고개를 넘어가다가 도깨비에게 붙잡혀 씨름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렇게 산에 사는 도깨비는 인간이 자기 영역을 침범하면 내기를 신청한다던지 골탕을 먹인다던지 하죠. 바다 쪽에서 나오는 민담을 보면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도깨비에게 빌면 도깨비가 물고기를 엄청나게 잡히게 해준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어요”
그는 이런 도깨비 이야기들 중 ‘도깨비 방망이 얻기’라는 민담을 가장 흥미롭게 들었다. 이 민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부리영감’ 이야기와 맥락이 비슷하다. 하지만 ‘혹부리영감’은 일본의 전래동화이다. ‘혹부리영감’은 권선징악의 결말만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도깨비 방망이 얻기’는 효 사상이 함께 녹아있다. 일본의 민담은 대부분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에 효 사상을 담지 않는다.
“민담은 대부분 도깨비랑 씨름을 했다는 둥 조금의 허구와 함께 자신이 직접 겪었던 경험담을 녹여내거든요. 그런데 ‘도깨비 방망이 얻어오기’는 완전히 허구로 이뤄진 이야기에요. 이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험담이 많기 때문에 도깨비와 인간이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죠”
“도깨비와 관련된 풍습 많이 사라져 안타깝죠”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호랑이를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문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발달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는 공포를 넘어 경외심을 갖게 하는 존재였어요. 그래서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보단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더 많아요”
우리나라의 경우 전라도 지방에 도깨비와 관련된 문화가 비교적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시대를 거치면서 지역과 상관없이 새로 생겨난 문화가 많다.
“영천에서 ‘도깨비 물리치기 굿’이라는 행사를 매년 했는데 올해는 안 했어요. 한번 가보려고 했는데, 우리나라는 병을 옮기고 다닌다는 ‘역신’ 관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행사는 도깨비가 병을 옮긴다는 이유로 도깨비를 물리치는 굿을 한다고 해요. 아마 새로 생겨난 문화 같아요”
인구 3만 5,000명에 불과했던 지방도시인 일본 돗토리현의 사카이미나토시는 ‘요괴’라는 독특한 콘텐츠를 활용해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관광 도시’로 급부상했다. 죽어가던 소도시를 연 평균 200만 명이 찾는 관광 도시로 바꿔놓은 사람은, 2015년 작고한 미즈키 시게루라는 만화가이다. 그는 그의 대표작 ‘게게게의 기타로’에 등장하는 요괴 캐릭터 저작권을 사카이미나토시에 무상으로 기증했고, 거액의 기부금도 냈다. 이 지역은 요괴 마을로 거듭나기 시작했으며 캐릭터 동상이 세워진 거리는 작가의 이름을 따서 ‘미즈키 시게루 로드’라 이름 지었다.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도깨비와 관련된 문화가 많이 사라진 상태에요. 일본처럼 귀신이나 요괴를 활용한 관광지를 개발하면 좋겠지만, 그들처럼 지속적인 노력이 없어서 당장은 어려워요. 특히 일본은 귀신 문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요괴를 활용한 관광지 개발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최송희 기자
shinypine@cbnu.ac.kr








최송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