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는 흔히 오감만족이라고 한다. 종이를 접을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 색종이의 묘한 향기,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감, 손으로 느껴지는 촉감 그리고 혼자서 작품을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 풀과 가위 그리고 종이만 있으면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낸다는 요술 손 ‘종이접기 아저씨’가 있다. 1990년대 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종이접기 아저씨’로 등장해 많은 사랑을 받은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김영만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15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 출연해 추억의 종이접기를 재연하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김영만 원장은 여전히 어린이들과 종이접기로 소통하고 있었다. 화려한 색종이처럼 아름다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달 17일,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한 어린이 미술 체험 공간 ‘아트오뜨’를 찾아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김영만 원장을 만났다. ‘아트오뜨’는 그가 직접 운영하는 미술 체험 공간으로, 무엇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알록달록한 색채감에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의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기자를 반겼다.
김영만 원장은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홍익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여느 미술 전공자처럼 졸업 후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그가 어떻게 ‘종이접기 아저씨’로 살게 됐을까.
우연한 기회로 마주한 종이접기
“회사를 잘 다니다가 사업에 도전하고 싶어 사표를 냈어요. 젊은 혈기로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결론적으로 그 사업이 잘 안됐죠. 그래서 조사할 겸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일본 어린이들이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거죠”
일본 어린이들이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 김영만 원장은 문득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저런 거 잘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귀국 하자마자 어린이 교육기관을 찾았다. 당시 우리나라 어린이 교육기관에는 종이접기와 같은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없었다. 이때 그는 종이접기 교육과정을 국내 어린이 교육기관에 보급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보니 우리나라는 종이접기 황무지였어요. 아이들 교육용 종이접기 커리큘럼이 아예 없었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사명감에 종이접기를 시작했어요”
김영만 원장은 딱 1년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아이들 교육용 종이접기 커리큘럼을 만들어 보급해보고, 안 되면 전업을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종이접기를 시작한 1년 사이에 많은 호응을 얻었어요. 내가 만든 창작품을 아이들이 쉽게 접을 수 있었고요. 그러다가 초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럼 밥벌이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초등학교에서 6년 정도 근무했을 무렵, 그는 종이접기로 업계에서 유명인이 됐다. 소문을 들은 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에서 그에게 출연 제의를 보냈다. 그는 처음에 프로그램에 누를 끼칠까 거절했지만, 제작진의 끈질긴 요청으로 결국 출연을 결정했다.
“그렇게 방송을 시작한 게 지금까지 30년을 한 거죠.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도 맞지만, 제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줘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2015년 마리텔 출연으로 확 떠버렸고 어느새 ‘김영만’이라는 이름은 종이접기 브랜드가 돼버렸죠”
그는 현재까지도 쉼 없이 종이접기를 하며 코딱지(김영만 원장이 아이들을 부르는 애칭)들과 소통 중이다.
“전국을 다니면서 종이접기 강의를 하거나 특강을 하는 것이 본래 제 일이에요. 지금 저는 마산대의 초빙교수로 있고, 수원여대 아동미술과에도 출강하고 있어요. 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 이후에도 어린이 프로그램은 아직도 출연 중이고요. 마리텔에 출연했을 때 선생님 어디가 계셨냐는 채팅 메시지를 참 많이 받았었는데, 사실 저는 방송을 쉰 적이 없어요. 우리 코딱지들이 이만큼 커갈 동안 저는 계속 꾸준하게 방송출연을 해왔죠”
예능출연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다
오랜 방송출연으로 카메라 앞에서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그에게도 떨리는 순간이 있었다. MBC 예능프로그램인 마리텔에 출연하던 날이었다.
“보통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면 교양국에서 전화가 오죠.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예능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저는 무슨 소품이 필요한가 싶어 물어봤더니 우선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했죠. 예능국에서 저를 섭외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그가 출연한 마리텔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인터넷 생방송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앞에 놓인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채팅창 메시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최종 접속자가 가장 많은 출연자가 우승하는 방식의 1인 방송 대결 구도이다. 순위를 경쟁하는 프로그램 방식에 부담을 느낀 그는 처음에 출연을 고사했다.
“그래도 내가 대학교수고 나름대로 점잖은 사람인데 예능프로그램을 나간다는 것이 용기가 안 났죠. 심지어 순위 경쟁을 한다니, 꼴찌하면 이게 무슨 망신인가 싶고요. 오랫동안 고민하다 결국 출연을 거절했더니 프로그램 작가가 살려달라며 뛰어왔죠. 그래서 한 번만 출연하기로 하고 승낙했어요. 방송 출연을 오래해서 웬만하면 긴장하지 않는 편인데도 마리텔 출연 전날에는 한숨도 못 잤어요. 한 여름에 녹화를 하는 데다 긴장까지 하니 등에 땀이 비처럼 흐르더라고요”
그가 마리텔에 모습을 드러내자 미디어의 반응은 뜨거웠다.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가 그의 이름으로 도배됐다. 종이접기가 콘텐츠가 되겠냐는 주위의 걱정이 눈 녹듯 사그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를 보고 자란 이들은 추억에 응답했고 그의 소통은 따뜻한 위로를 줬다. 현장에 있는 제작진들도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다.
“제가 마리텔에서 호응을 받은 이유에는 추억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나를 보고 자란 코딱지들이 저를 보며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거예요.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많은 2030세대들이 저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들과 짧지만 깊은 교감을 나눈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예쁘게 자라준 우리 친구들에게 고맙고, 친구들에게 따뜻한 향수를 줬다는 것만으로도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그가 꾸는 꿈
천안의 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아트오뜨’ 미술관은 김영만 원장이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어린이 미술 체험 공간이다. 천안에 아무런 연고가 없던 그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그의 꿈 때문이었다.
“조그만 어린이미술관 하나 짓는 것이 제 꿈이었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폐교를 알아봤었는데 생각보다 임대료가 비싸더라고요. 그럴 바에야 땅을 사서 집을 짓자는 생각을 했죠. 이곳에는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 등을 할 수 있는 5개의 체험 방이 있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잔디밭이 있어요. 사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아이들 미술 체험 공간에 가깝죠”
현재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제 큰 욕심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종이접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종이접기를 원하는 곳이 있다면 흔쾌히 가야죠. 재능기부라는 것은 내가 시간이 날 때 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가야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청년에게 종이접기로 전하는 이야기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김영만 원장에게도 힘든 순간은 분명히 있었다.
“처음 방송을 시작한 초기에는 병원에 다닐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오늘이 당장 녹화인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았죠. 웃음으로 나를 감추고 다녔지만, 뒤돌아서면 그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그 땐 종이접기가 제게 즐거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는 2~3년간 우울증을 겪고 난 후부터는 ‘경지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비로소 종이접기가 즐거웠고 방송 대본만 봐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가 초기의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종이접기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는 많은 청.장년들에게 해주고 싶어요. 우리 청.장년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젊은이들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힘들다고 멈추지 않았으면 해요. 기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도전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지영 기자
jy905@cbnu.ac,kr








이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