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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에 삶을 바치다 ‘임인호 금속활자장’
제 917 호    발행일 : 2017.03.20 
임인호 금속활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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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거리를 걷다 보면 도로와 인도 사이의 안전펜스에 ‘직지’라는 문구와 그림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청주 흥덕사에서 발간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복사기와 프린터로 쉽게 인쇄할 수 있지만, 여전히 옛것을 보존하고 전수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임인호 금속활자장이다.
기자는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3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위치한 ‘금속활자주조전수관(이하 금속활자전수관)’을 방문했다. 그가 국가무형문화재로 등극하기까지 지나온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서각(書閣)에서 금속활자로 활동 무대를 바꾸다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금속활자전수관 주변은 고요함과 잔잔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도 잠시, 금속활자전수관 내부에서는 제작 도구를 닦는 소리, 놋물을 붓는 소리, 그리고 금속활자를 두드려 완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자가 방문한 오후 3시는 ‘공개 시연’의 마지막 시간이었지만, 금속활자의 주조과정을 보기 위해 약 15명 내외의 단체 관람객이 찾아올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무형문화재’라고 하면 ‘깐깐함’, ‘어려움’ 등의 단어가 먼저 떠올라 걱정됐지만, 실제 만난 임인호 금속활자장은 친근하면서도 친절했다.
  그는 1984년 이전까지 특정한 직업도 없었고, 어떠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것을 보며 ‘저거 재미있겠다’ 싶은 마음에 나무에 글을 새기는 서각(書閣)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고향인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에 ‘무설조각실’이라는 작은 공방을 차렸다. 하지만, 서각작업에 대한 그의 흥미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96년에 TV에서 금속활자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봤어요.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것이 재미가 없어서 글씨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던 때였죠”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스승이 된 故 오국진 선생이 우연히 그의 공방을 찾아와 명함을 건넸다. 금속활자의 아름다움에 빠진 그는 그간 해온 모든 일을 접고, 故 오국진 선생을 찾아가 금속활자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금속활자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갖고, 먹고 사는 것도 포기하고, 가정조차도 등한시했어요. 당시 제 아내가 분식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죠. 제가 보기엔 보이지 않는 팔자, 운명 같은 것이 이 길로 가도록 정해놓지 않았나 싶어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팔자와 운명 때문인지, 그는 우연히 스승을 만나 ‘금속활자 주조’의 길로 접어들었다. 금속활자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스승 밑에서 주조기술을 배웠다. 그 과정은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어렵게 익힌 금속활자 주조기술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금속활자를 사 가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수입이 적었고, 그래서 경제적 측면에서 힘들었어요. 공급자는 충분히 준비가 돼 있는데 수요자가 없었어요”
  이후 고인쇄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에서 금속활자를 전시하게 되면서 수요가 늘어났다. 몇 해 전에는 고인쇄박물관에서 직지 등의 금속활자를 복원.전시하기도 했다.
  “금속활자라는 것이 천연재료로 제작되는 것이다 보니 제작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고 힘들어요. 재료의 비율이 서로 맞지 않거나, 안팎의 습도와 거푸집의 습기가 맞지 않으면 갈라지기 십상이죠”
  그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전통 제작방식을 그대로 고집한다.
  “금속활자는 ‘글자본 선정’, ‘자본 붙이기’, ‘어미자 새기기’, ‘가지쇠 붙이기’, ‘주형틀 만들기’, ‘쇳물 붓기’, ‘조판하기’ 그리고 ‘인쇄’의 작업으로 이뤄져요. 듣기만 해도 상당히 복잡하죠? 글씨를 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속활자의 틀이 되는 거푸집을 만드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거푸집을 만들 때의 배합비율은 6:4:1 혹은 7:3 같이 산술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그 적합한 배합비율은 본인이 깨우쳐야 해요”
  이처럼, 금속활자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만드는 것도 힘들뿐더러 그 비율을 터득하는 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야말로 장인정신과 자부심이 없다면 힘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다.
  “스승님께서 이루지 못한 ‘대량주조’를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100개 정도의 틀을 만들었는데, 초가을 저녁에 0도로 떨어져 틀에 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온도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틀에 있던 습기가 얼며 팽창하고 부피가 커져 버린 것이죠. 그래서 100개의 틀 모두 무용지물이 돼버렸고, 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역경 끝에 빛나는 결실을 맺다

  ‘금속활자장’이라고 하면 탁월한 재능으로 뭐든 쉽고 능숙하게 해낼 줄 알았는데, 그 속에는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었다.
  “직지 복원을 했을 때는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죠. 식사 후 잠깐 의자에 앉아 자거나, 쪽잠을 잤어요. 과로로 인해 죽을 뻔한 적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죽진 않았죠. 집에 가도 밤새도록 글씨 새기고, 낮엔 작업하는 것을 반복하며 5년 넘게 지냈어요”
  마치 우아한 백조가 물속에서 발을 재빠르게 젓듯, 아름다운 금속활자 뒤엔 모든 것을 바친 그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마침내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2005년에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금속활자 주조 시연을 하고, 추대패를 제작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문화재청장 표창을 받았고, ‘대명숭정구년세차병자대통력’, ‘풍고집’, ‘능화판’, ‘동국정운’ 등의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200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으로 지정됐다.

금속활자를 보존.전수하려는 그의 노력

  “금속활자는 구매해 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입원이 일정치 않아요. 그래서 금속활자는 지금도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죠. 현대 사회에서 쓰이지 않아 맥이 끊어질 위험에 처해 있죠. 스승님과 저를 이어 3대 금속활자장이 나오려면, 무엇보다도 경제적 측면이 해결돼 지자체나 국가의 도움 없이도 경제적 자립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해요”
  금속활자 주조과정동안 많은 먼지를 마신 그였지만, 지친 내색 하나 없이 누구보다 진지하게 말하며 금속활자장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기초적 문화는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맥이 끊어집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세계의 문화’라는 마음으로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아껴주시길 부탁드려요”
  그는 국민들에게 문화를 향한 진심어린 당부의 말을 남긴 채, 금속활자 주조 작업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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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상 기자
ethicsedu16@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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