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진이야? 그림이야?’ 정중원 화가의 그림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정중원 화가는 JTBC <말하는 대로>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하이퍼리얼리즘 화가로 유명해졌다. 그의 작품은 영국의 온라인 매체 <매일리데일>이 “처음 보면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놀라운 그림이다”라고 평가할 만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을,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를 만들어내는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정중원,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던 소년
지난 1일, 기자는 정중원 화가를 만나기 위해서 그가 미술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신촌역 부근의 한 카페를 찾았다. 강의를 막 마쳐 피곤할 텐데도 오히려 기자에게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지 않았냐며 인사를 건넸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너무 익숙해서인지 그는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영문학과 연극에 빠져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영문학을 즐겨 읽었으며, 연극부 활동에 열중하던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제가 미술대 말고 연극영화과에 갈 것 같았대요. 그만큼 연극에 관심이 많았었죠”
그는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교 2학년, 그는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싶었다. 관심이 있었던 영문학과 꾸준히 해오던 미술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아버지의 한마디는 큰 도움이 됐다.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미술 전공하는 사람이 영문학에 조예가 있는 것과 영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미술을 취미로 하는 것 중 뭐가 더 유리하겠느냐고요. 그때 진로를 정하고, 입시 미술을 준비해서 미술대까지 간 거죠”
대학에 진학한 후, 그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다양한 분야를 접했다. 연극영화에도 관심이 많던 그는 전공으로 회화 대신 시각디자인을 선택했다.
“시각디자인과에 가서 사진,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웠죠. 그래서 대학교 2학년 때까지 회화보다는 사진하고 영상 쪽을 더 많이 공부했어요”
그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영화와 관련된 활동도 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 일을 해보니 힘들었고, 자신의 적성에도 맞지 않았다. 그는 영화감독을 포기하고 군대에 갔다.
“군대를 다녀온 대학교 3학년 때, 회화를 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래서 대학원도 회화 전공으로 진학 했어요”
그가 미술 계열로 전공을 정한 것은 18살 때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23살 무렵이다. 그는 연극과 영화에 빠져 있다가 비로소 회화로 전공을 정했지만, 오히려 그 시간들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저는 그 시간 동안 사진 찍는 법, 조명, 디자인, 편집 등 많은 것을 배웠어요. 이게 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만약 제가 처음부터 그림만 몰두했다면 지금 오히려 다른 것을 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이퍼리얼리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다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거에요. ‘굳이 사진처럼 그릴 거면 사진으로 찍으면 되잖아’라는 말이요. 사진이 있으니까 사진처럼 그리는 거예요”
1970년대 팝아트의 영향으로 시작한 하이퍼리얼리즘은 하이퍼리얼리티라는 말에서 나왔다. 하이퍼리얼리티는 복제가 원본과 차이가 나지 않아 오히려 원본을 우선하는 가상(假像)들이 모여 만들어진 세계다. 그리고 이러한 하이퍼리얼리티가 예술적이고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이 하이퍼리얼리즘이다.
“SNS야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나는 하이퍼리얼리티에요. 우리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그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SNS에 올리기 위해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죠. ‘나’라는 원본의 일상보다는 ‘SNS’라는 복제의 일상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이제 원본과 복제 사이의 위계질서가 없어지고 있어요”
그는 회화로 전공을 선택하면서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해 공부했다. 미학책, 미술사, 사회학 관련 책들을 찾아보면서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해 큰 매력을 느꼈다.
“원래 제가 사실적인 것을 좋아해요. 제가 아무리 잘 그린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실존하지 않는 거짓이잖아요? 그런데 마치 진짜처럼 느껴져 그 부분에서 큰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하이퍼리얼리즘은 팝아트를 잇는 현대미술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예술은 독창적인 무언가를 창조해야 한다’며 하이퍼리얼리즘을 비판하고 있다. ‘기교적으로는 훌륭하나 예술적으로는 부족한 그림’, 현재 하이퍼리얼리즘이 받는 부정적인 평가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창조가 아닌, 완벽한 복제물을 만들고자 해요. 저는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우리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해봤으면 좋겠어요. 과연 내가 사는 삶이 나의 삶인지를 나 자신에게 물어봤으면 해요. 이렇게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하이퍼리얼리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요”
아무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것
정중원 화가의 작품은 장기간의 시간을 요구하는 작품이 많다. 대부분 몇 달씩 걸리는 작품이 많고, 일 년 가까이 걸리는 작품도 있다. 그의 키만 한 캔버스에 아이라이너만 한 붓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작업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대상의 얼굴이 사람의 키만큼 커졌을 때, 그래서 모공까지 묘사된 그림을 봤을 때 오는 충격이 있어요. 이것 때문에 힘들지만 캔버스의 크기를 키우는 거죠”
과거, 정중원 화가는 살아있는 모델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모델을 섭외해 여러 가지로 연출된 사진을 찍은 뒤, 맘에 드는 사진을 골라 캔버스에 그대로 옮기는 간단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해 알아갈수록 욕심이 커졌다.
“그 전까지는 모델이 살아있는 사람이었기에 원본이 있었다면, 이제는 실물을 확인할 수 없는 복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줄리앙이라는 조각상이 있어요. 미켈란젤로가 줄리앙이라는 모델을 보고 작품을 만들었죠. 미켈란젤로가 복제품을 만든 거예요. 나는 이 조각상을 그리기 위해 사진을 찍었어요. 그럼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복제가 된 거죠. 그런데 제가 이 복제의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면 총 삼중으로 복제한 복제품이죠. 제가 그린 그림은 삼중으로 복제한 복제품이지만 누구보다도 실물에 가까워요”
이렇게 그는 전설, 역사 속 인물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조각상이나 자화상에서 그릴 인물을 선정했다. 그 후, 그리고 싶은 인물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모델을 찾아다녔다. 모델을 찾으면 그리고 싶은 장면과 똑같은 각도와 조명으로 사진을 찍은 후, 그 사진을 기반으로 그림을 그렸다. 기본적인 형태는 조각상이나 그림에서 가지고 오지만 세부적으로 묘사를 하려면 상상력으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물의 피부 결, 주름 등 세부적인 묘사는 모델에게서 가져온다. 하지만 모델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모델을 찾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어요. ‘호메로스’를 그릴 때는 거의 절망적이었어요.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이태원 해방촌을 지나다가 완벽하게 호메로스를 닮은 백인 할아버지를 봤어요. 다짜고짜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모델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힘들게 모델을 섭외했는데 지금은 친구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전에 찍어 둔 모델 사진을 다시 활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호메로스’는 그가 처음 그린 전설 속의 인물이며, 처음으로 한 대형작업이었다. 동시에 그에게 가장 그리기 어려웠고, 진한 아쉬움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호메로스는 제가 처음으로 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서툴렀어요. 게다가 높이가 160cm나 되는 대형작업이라 더 많이 헤맸어요. 호메로스는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어요”
꿈이 없는 길의 행복
정중원 화가에게 그림은 언제나 일상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리기 시작한 그림을 이제는 직업으로 삼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그에게 슬럼프는 없었다.
“저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그림을 그렸어요. 저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워낙 익숙해요. 그래서 단 한 번도 그림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적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없다고 대답했다.
“저는 꿈도 목표도 없어요. 꿈이라는 것이 바꿔 말하면 지금의 현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제 그림은 계속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바뀌겠죠. 저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을 꾸준하게 해나갈 거예요. 제가 지금 행복한 것은 꿈이 없고 목표가 없기 때문이에요”
끝으로 그는 대학생에게 더는 남의 생각대로 끌려 다니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회가 나를 바라보는 것보다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해요. 나 자신의 가치를 나 스스로 만들어내길 바래요. 어떤 가치관이 주어졌을 때 반드시 내 방식대로 해석해보고 비판해야 해요. 그래야 사는 것이 훨씬 재밌을 거예요. 당연하다고 생각됐던 것을 낯설게 바라봤을 때 얻는 재미를 대학생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김노을 기자
doce26@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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