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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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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송희
예술적 감각으로 스포츠를 바라보다
제 921 호    발행일 : 2017.09.01 
최정윤 피겨스케이팅 국제심판

세 번의 도전 끝에 이뤄낸 평창 동계올림픽이 6개월 정도 남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인 만큼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선수와 운영진 모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선수들은 많은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기를 평가하는 역할을 하는 심판의 경우 중요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는다. 심판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기자는 지난 18일 심판 중에서도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 스케이팅의 최정윤 국제심판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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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버텼다

  최정윤 국제심판은 피겨 스케이팅 중 페어 국가대표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국제심판을 역임하고 있다. 페어는 남녀 혼성으로 구성된 경기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으로 이뤄진다. 한 가지 기술을 남녀가 같이 하기도 하며, 드로우 점프(남자가 여자를 점프할 수 있도록 던지는 것), 리프트(다양한 잡기와 자세로 남자가 여자를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 페어 스핀(두 선수가 공통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동작), 데스 스파이럴(남자가 축이 되고 여자가 주위를 도는 것) 등은 페어 종목에서만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는 8살 때부터 피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이 약해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피겨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정식으로 선수가 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선수들이 많이 힘들 거예요. 그런데 제가 피겨를 할 때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는 것도,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었어요. 매우 춥거나 물이 된 얼음 위, 정리되지 않은 경기장에서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죠.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운동 환경이었어요”
  그는 1982년부터 1993년까지 피겨 페어 부문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선수 생활 당시 운동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학부모들끼리 정보 공유를 하거나 발품을 팔아서 운동할 곳을 찾아야 했다. 또한 부상을 대비하거나 처치할 수 있는 환경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물론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장비도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런 생활을 못 견디고 다른 길을 찾아나간 친구들도 많죠. 그런데 저는 그걸 버텼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까지 피겨 선수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제 고생담을 이야기하다 보면 저보다 선배들이 했을 고생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요”
  그가 이야기해준 한 일화를 통해 당시 열악했던 운동 환경에 대해 생생히 알 수 있었다.
  “요즘에는 다 실내스케이트장에서 경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저때는 야외에서 피겨 경기를 했어요. 얼음이 있어야 돼서 겨울에 했는데, 바람이 엄청 부니까 스핀이 제대로 안 돼요. 바람이 너무 세서 몸이 휘청거리는데도 코치들이나 심판들이 그냥 하라고 하죠. 얼음 위도 매끄럽지 못하고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 붙어 있어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미 코치들이나 심판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감안을 하죠. 엄마들이 선수가 추워서 덜덜 떨고 있으면 겨드랑이이나 몸속에 손을 녹여 주다가, 이름이 호명되면 나가고 했어요.”
  그는 이런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의 후배들이 좀 더 편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당시에는 피겨를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가 거의 없었을 뿐더러, 그들 자체도 경험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와 지도자 모두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치를 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피겨하는 아이들이 실내경기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춥다고 하면, ‘너네 영하 10도에서 스케이트 타봤냐’고 얘기해요. 호수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진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다 깜짝 놀라요. ‘이런 데서 어떻게 피겨를 해요?’라면서요”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가 피겨를 계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피겨가 정말 좋았어요. 꼬리뼈가 다치고 찢어져도. 그리고 저는 국제대회나 세계선수권대회에 가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도 내 인생에서 저건 꼭 해야겠다는, 어떻게 보면 무식한 의지죠”

은퇴하게 된 이유, 넓은 세상에서의 충격

  그는 1993년, 고등학생 때까지 피겨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기 전 국가대표를 그만뒀다. 이후 피겨 대신 호주 유학행을 선택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피겨를 그만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제가 마지막으로 나갔던 세계선수권 대회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에서 있었던 ISU(국제빙상연맹) 개최 대회였어요. 1992년에 열렸던 대회인데, 이 때가 ISU 100주년 기념이었어요. 그래서 준비도 많이 하고 화려했어요. 그런데 이 대회에서 한국의 운동 환경에 대해 돌아보게 됐고, 얼마나 좋지 않은 환경인지 깨닫게 됐어요”
  처음에는 한국에서만 피겨를 하다가 각종 국제대회와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가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점점 보는 세계가 넓어질수록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외국 선수들에 비해 안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면서 그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지만, 그들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피겨 선수들을 보면 운동할 때 표정이 정말 행복해보였어요. 보면서 ‘나는 그 동안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스케이트 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살다가는 여태껏 노력에 비해 내 인생이 잘못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는 그간 우리나라에서 피겨를 하면서 느꼈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박스 안에 있던 환상이라고 생각했고, 이 박스를 깨고 나가야 발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1994년에 호주 유학길에 올랐다.
  “좀 더 노력해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더 클 수 없겠더라고요. 호주에 유학을 갔을 때는 돈도 없고 영어도 안 되고, 성격도 소심해 친화력 있는 스타일도 아니었어요. 살도 많이 빼서 건강도 안 좋았죠. 말 그대로 모든 게 최악이었죠. 그런데 시험을 빨리 통과하면 졸업을 빨리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엄청 노력했어요. 그 결과 대학교 부설 언어교육원에서 최단기로 졸업했어요”
  그가 피겨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다. 11년 동안 했던 피겨인데,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머니랑 6개월 동안 이야기를 안 했어요. 결국 제 고집이 이겼죠. 유학은 좋은 계기가 됐어요. 성격도 활발해지고 영어도 잘하게 됐거든요”
  호주 유학에서 기른 영어실력은 국제심판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국제심판이 되기로 결심하다

  그는 호주의 한 대학에서 언어교육원을 졸업한 후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 있는 호텔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2002년 회사를 그만뒀다. 피겨 심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회사를 그만두고 피겨 꿈나무들을 가르치면서였다.
  “피겨 선수로 활동할 때 알던 후배가 제가 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가르치는 애들이 있는데 와서 좀 도와달라’고 했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피겨가 싫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후배를 통해 우리나라의 피겨가 아직까지 발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
  사실 그는 국제심판이 되기 전에 피겨 코치 제안을 먼저 받았다. 하지만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선수의 인생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 스스로 피겨 선수로서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코치를 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올바른 판정을 할 수 있는 심판이 되면 피겨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했어요”

국제심판이 되려면

  피겨 국제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예비심판 과정을 거쳐 2급 심판이 된 후 경기와 관련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는 매년 7월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사전에 홈페이지 공지사항 확인 후 신청서를 제출하면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다. 세미나에 참석해 이틀 간 교육을 받으면, 이후 2~3년 간 예비심판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연맹에서 실시하는 기본교육을 이수한 후, 다양한 대회의 심판으로 참여해 직접적인 경험을 하며 심판으로서의 실력을 쌓는다. 이때는 공식 심판석 뒤에 마련된 예비심판석에서 실습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을 본다고 해서 점수가 반영되지는 않는다. 예비심판 과정이 마무리 되면 이론시험과 면접을 거쳐 2급 심판이 된다.
  “선수 출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피겨 심판이 될 수 있어요. 피겨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도 비선수 출신 심판이 많아요. 예비심판 과정을 성실히 수행하면 심판 자격을 얻을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심판으로 참여한 경험이죠. 어떻게 심판을 봐야 하는지 아는 것이 관건이죠”
  피겨는 다른 종목과 달리 상대와 직접 승패를 가리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피겨와 관련된 언어가 대부분 영어이기 때문에 필수는 아니지만 영어 능력과 적극적인 성격도 필요하다. 또 피겨는 다양한 음악적 소양도 필요하다. 힙합, 왈츠, 탱고 등 경기에서 선수들이 선택한 음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그 선수의 경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사실 예비심판들은 명예직이라서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해야 돼요. 경제적인 도움이 거의 되지 않거든요. 직업군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보람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피겨 국제심판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그는 국제심판 자격으로 올해만 6번 해외에 나갔다. 나갈 때마다 평균 5일을 머물게 되는데 힘든 점도 많지만, 보람 있는 순간이 더 많다.
“국제심판으로 해외에 나가면 대한민국의 대표라는 책임감을 느껴요. 저로 인해 각국 선수들이 대한민국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제 평가가 어떤 선수의 발전 계기가 됐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보람 있어요”
  심판을 하려면 환경적응능력도 중요하지만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길게는 10시간씩 심판을 봐야하는데 집중력이 지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활용해서 심판을 봐야하는데,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특히 국제심판은 나라를 대표하는 심판이기 때문에 매너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피겨스케이팅 국제심판을 꿈꾸는 학생이 있다면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국제심판이 되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가 걸려요.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죠. 그래도 도전하고 싶다면 단순한 스포츠 활동이 아니라 예술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피겨 국제심판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얻게 될 보람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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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shinypin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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