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혹은 놀이터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아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넓은 의미에서 ‘샌드아트’를 경험한 셈이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모래놀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면 샌드아트가 된다. 이번 사람이슈의 주인공인 신미리 작가는 손으로 모래를 흩트리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샌드아티스트다. ‘신미리 샌드아트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대중에게 샌드아트를 알리고 있는 그녀를 만나 샌드아티스트에 대해 들어봤다.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
지난 10일, 기자는 신미리 작가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신미리 샌드아트 아카데미’를 찾았다. 미소로 기자를 맞이한 그녀는 “오는데 힘들지 않았어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사무실 책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무엇이든 척척 잘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재활용품만 보면 뭘 만들까 고민했고, 그걸로 뭔가를 만들어 책상을 장식하곤 했어요. 그림 그리기와 손으로 만드는 창작 활동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해왔죠”
자연스레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수채화 작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샌드아트를 시작하며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팝과 오페라를 접목한 ‘팝페라’라는 예술 분야가 있어요. 그 팝페라를 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공연에 이벤트를 넣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저에게 샌드아트 공연을 의뢰했어요. 저는 그 당시만 해도 샌드아트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했는데,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샌드아트 공연 제의를 받았죠. 결국 15일 만에 독학으로 샌드아트 공연을 했어요”
이처럼 우연한 계기로 샌드아티스트가 된 그녀에게 그동안 쌓았던 수채화 작가로서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샌드아트와 수채화는 재료만 다를 뿐,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수채화를 그릴 때 공부했던 형태와 구도를 잡는 법 등이 크게 도움이 됐어요. 다년간 미술을 하면서 다졌던 기본기가 있어서인지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크게 낯설지는 않았어요”
모래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신미리 작가는 우리나라 1세대 샌드아티스트다. 그녀가 샌드아트를 시작할 때는 국내에 샌드아트에 대한 교재도, 전문가도 없었다. 이 때문에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샌드아트를 배웠다.
“샌드아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니 국내에는 배울 곳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유튜브 영상으로 외국 작가들의 작업 모습을 보며 모래 뿌리는 기법을 배웠죠. 그러면서 모래마다 촉감도, 성격도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당시는 샌드아트용 모래가 출시되기 전이라 모래를 직접 수집해야만 했다. 공사장 모래, 바닷가 모래, 사막 모래 등 온갖 모래를 다 모으며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았다.
“가는 모래, 굵은 모래 등 모래마다 각각 장점이 있고, 모래의 튕김도 달라요. 그래서 저에게 맞는 모래를 찾기 위해 계속 구하고, 갈고, 섞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공연할 때 스크린에 비치는 모래가 좀 더 따뜻했으면 싶어서 붉은 모래와 흰 모래를 섞기도 했어요. 막막한 과정이었지만 그러면서 점점 제가 사용하는 모래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었어요”
샌드아트를 시작한 2007년부터 10여 년간 그녀는 부지런히 샌드아트 작품 활동을 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키워온 그녀의 샌드아트 실력은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특히, ‘세월호 추모 샌드아트 영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작품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영상은 그녀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세월호 참사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픈 사건이에요. 제가 이런 마음인데 남겨진 유족들의 심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팠을 거예요. 샌드아트로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이게 너무 민감한 문제니까 오히려 유족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을까 하고 고민이 들었죠”
그래서 영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에 그녀의 고민이 담겨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하면서 하나하나 정성을 쏟아 탄생한 작품이 세월호 추모 샌드아트 영상이다. 그 덕분인지 동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격려를 보냈다.
“2014년에 올린 동영상이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보고 있는 동영상이에요. 하루에 댓글도 몇십 개씩 달리고요. 이 영상을 보고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죠. 더러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를 향해 욕을 하는 분들도 있으시고요.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행사에서 샌드아트를 요청하면 무료로 영상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10년의 관록답게 현재 신미리 작가는 쇄도하는 공연요청으로 누구보다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현재 드라마, 예능 등 방송 쪽에서도 요청이 들어오고 있고, 공연 요청도 빈번하죠. 과거의 샌드아트가 호텔, 아트홀 등에서만 볼 수 있었던 고퀄리티 공연이었다면, 현재는 학교, 교육청 등 교육기관에서도 강사 요청이 많아요. 샌드아트가 점점 대중화되고, 새로운 콘텐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증거죠”
이러한 샌드아트의 발전에는 그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한몫했다. 그녀는 한국샌드아트협회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샌드아트 자격증 과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과연 이게 대중화가 될까 싶었어요. 사람들에게 샌드아트를 가르치면 다들 신기해하고, 긍정적으로 보셨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배울 수 있게 샌드아트 교육과정과 체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2015년에 한국샌드아트협회와 아카데미를 설립했어요”
샌드아트 자격증 과정은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곳에서 샌드아트를 가르치며 터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교육 과정은 건물, 탈 것, 동물 등 익숙한 사물을 그리는 법을 배우고, 어느정도 역량이 쌓이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도록 했다.
“제가 국내 1세대 샌드아트 작가이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정리한 것은 아니에요. 그동안 있었던 공연과 강연을 차근차근 정리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난 거죠. 그 덕분에 미술에 소질이 없는 분들도 쉽게 따라올 수 있는 자격증 과정을 만들 수 있었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려면
샌드아트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창작 과정’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는 샌드아트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필수 고민이다. 그녀 역시 창작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행사마다, 동영상마다 늘 다른 스토리를 연구하고, 한 번 사용한 스토리는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창작의 고통은 늘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창작의 고통이 너무 클 때는 머리에서 쥐가 나는 느낌이에요. 요즘 같은 경우는 공연이 많아 더 그렇고요. 그렇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편이라서 끝까지 부딪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죠”
그녀는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 ‘엄마와 딸’의 일생을 담은 샌드아트 작품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엄마가 딸을 돌보지만 딸이 성장하면서 딸이 엄마를 돌보는, 그런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하지만, 꼭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녀는 현재의 대학생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을 남겼다.
“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을 숙제처럼 해야 하면 하기 싫잖아요. 반면에 자신에게 재미있는 일은 주위에서 아무리 말려도 하고 싶은 법이잖아요? 저는 그런 재밌는 일을 꼭 자신의 직업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일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본인이 계속 도전하게 되거든요. 앞으로 대학생 여러분의 미래 직업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기를 바라요”
김노을 기자
doce26@cbnu.ac.kr








김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