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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태은
되고 싶은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
제 926 호    발행일 : 2017.12.04 

텔레비전을 통해 접하게 되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이하 예능 프로)’은 대중의 재미와 웃음을 책임지며 지상파 방송 3사(KBS, MBC, SBS)에서만 일주일에 총 45개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하지만 수십 개의 프로그램 중 대중들이 보고, 즐기고, 칭찬하는 프로그램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여기 조금은 까다로울 수 있는 대중의 입맛을 위해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있다. MBC 예능 프로 <라디오스타>, <진짜 사나이>를 거쳐 현재 <세모방 : 세상의 모든 방송(이하 세모방)>의 연출을 맡고 있는 최민근 PD(Producer, 이하 피디)의 얘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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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정오, 기자는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 1층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최민근 피디를 만날 수 있었다. 이어 함께 <세모방> 회의실로 올라가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방송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만큼 텔레비전을 많이 봤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는 이것이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운동을 많이 해야 하죠.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전 방송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예능 프로를 거의 중독 수준으로 봤어요. 밤마다 부모님 몰래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죠. 그리고 무궁무진한 소재로 방송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예능 프로의 매력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 매력이 예능 프로를 ‘종합선물세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이와 같이 늘 방송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하고 싶던 방송에 빠져들었다.
  “당시 꼭 어디에 입사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사실 방송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잖아요. 방송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원하는 직장을 정하는 건 말이 안됐고 제 자신이 어떻게 될지는 더욱 몰랐죠”
  당시 그에게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있었다. 그는 피디가 ‘되고’ 싶기 보다는 ‘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장점이었다. 그는 피디가 ‘되고’ 싶어 공부에 열중하는 친구들과 달리, ‘하고’ 싶은 방송 제작 활동에 열중했다. 그는 친구들과 짧은 영상 작품도 만들어보고, 단편 영화까지 도전해 봤다.
  “제가 지원했을 때 예능 피디를 총 3명 뽑았는데, 약 1,500명이 지원했어요. 경쟁률이 500대 1이었죠. 저도 면접관을 해봤지만 1,500명 중 100명을 뽑는 건 쉬워요. 그리고 뽑힌 100명 중 다시 10명을 뽑는 건 조금 어렵습니다. 그럼 그 10명 중 3명을 뽑는 건 어떨까요? 사실 1,500명에서 선발된 10명은 어떤 친구가 합격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 안에서 갈리는 기준은, ‘하고 싶은 일을 해온 준비 과정’과 ‘운’이라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는 깊은 연관이 있어요.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어서 평소에도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온 친구라면,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운’이 찾아올 거라 생각해요”
  그는 ‘운’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해온 준비 과정만으로도 굉장히 가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피디가 아닌 방송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독립영화 작가 등 하고 싶던 일을 여전히 했을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첫 직장인 점도 있지만, 저는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겠어요. 제게 왔던 그 운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서죠. 회사 일은 제게 너무 행복하고 신나는 일이에요. 무려 무료로 좋은 카메라, 컴퓨터를 제공받으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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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디는 프로듀서(Producer)의 약자다. 말 그대로 제작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이다. 피디는 프로그램으로 표현되고, 또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프로그램, 콘텐츠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은 텔레비전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에요. 이젠 굳이 텔레비전을 보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충분히 정보와 뉴스를 접할 수 있죠. 플랫폼(Platform) 자체가 너무 다양해졌어요”
  방송 송출의 경우, 지상의 송신탑을 이용해 방송을 송출하는 ‘지상파 방송’, 케이블을 통해 방송을 송출하는 ‘케이블 방송’, 위성을 통해 방송을 송출하는 ‘위성 방송’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 지상파 방송은 전파의 범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선택된 방송 사업자만 방송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상파는 다른 방송에 비해 희소성을 가졌다. 하지만 ‘지상파의 희소성’은 이제 먼 옛날 얘기가 됐다.
  “기술의 발전은 지상파의 희소성을 사라지게 만들었죠. 이젠 케이블 방송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해야 해요. 방송사 선호도에서 케이블 방송이 앞서기도 하죠. 이런 상황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콘텐츠’에요. 많은 선택을 받은 콘텐츠, 그리고 그 콘텐츠를 제작한 피디가 중요해진 거죠”
  피디들은 높은 시청률, 구매력을 가진 젊은 대중의 선호, 그리고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화제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그래서 그들은 트렌드를 분석하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트렌드와 관련해 항상 명심하는 말이 있어요. ‘한발 앞서나가면 망한다. 반발만 앞서가라.’ 늘 철칙처럼 여기고 있죠. 트렌드에 대한 판단이 생명이에요.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주목받지 못하고 그저 그런 프로그램이 돼요. 한편으론 너무 앞서나가도 주목 받지 못하죠. 그래서 시기와 맞아 떨어지는 트렌드와 시청자의 선호도를 잘 잡아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어떤 책에선 피디를 ‘시청자를 창조해내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기도 해요”
  ‘시청자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시청자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이다.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시청자가 선호하고 선택한 콘텐츠. 그것을 만들어내는 피디. 이것이 피디와 콘텐츠의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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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많은 사람에게 피디라는 직업은 특별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수많은 연예인을 상대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은 로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피디는 정말로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된 직업이다.
  “제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에서 오래 일했었어요. 그 중 <진짜 사나이>와 <아빠! 어디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일밤>은 침체기였죠. 단 한번도 <1박 2일>이나 <런닝맨>을 이겨본 적이 없었어요. 50여 개의 프로그램이 폐지됐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죠. <진짜 사나이>를 할 때, 일요일 오후 촬영 테이프를 넘기고 방송이 시작되는 일요일 저녁부터 자정까지가 저의 유일한 휴식시간이었어요. 바로 다음 촬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고,  그렇게 4년을 보냈어요. 다른 프로그램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죠. 한 7~8년은 회사에서만 살았어요”
  치열한 프로그램 경쟁과 복잡해지는 촬영, 그리고 편집이라는 빡빡한 일정은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만 생각만큼 많은 인력이 지원되지 않는다.
  “적은 사람이 많은 일을 해내다 보니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죠. 아픈 사람도 많고, 쓰러진 사람도 많아요. 밤샘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또한 예능 프로는 작은 실수에도 시청자의 악플과 비난 그리고 논란이 쏟아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죠”
  그동안 겪어볼 수 있는 모든 논란과 들을 수 있는 모든 비난을 다 경험했다는 최민근 피디. 하지만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의 근원도 방송에 있다며 웃음을 짓는다.
  “<진짜 사나이>의 경우 전성기를 겪었지만 방송 활동의 휴식기가 긴 연예인이나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연예인을 주로 섭외했어요. 그런 친구들이 제가 연출한 프로그램을 통해 재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굉장히 뿌듯해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제작 과정이나 일하는 건 너무나도 재밌어요”
  그는 지난 5월, <세모방>이라는 새로운 예능 프로를 선보였다.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볼 수 있는 전 세계의 모든 프로그램을 찾아봤다는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었다.
  “현재 콘텐츠는 진정성, 사실이 생명이에요. 방송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분위기도 그렇죠. ‘진짜’에 대한 갈망 속에서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사실 리얼(Real)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는 거의 다 등장했어요. 군대, 정글에 이어 이젠 감옥 예능이 나온다는 말도 있어요. 이처럼 ‘관찰 예능’이 넘치는 시점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고 싶었어요”
  300여 개가 넘는 우리나라 방송 중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독특하면서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방송과 그것을 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획기적인 콘텐츠를 살림과 동시에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들의 방송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방송을 기획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그들 또한 저와 같은 피디잖아요. 자신의 콘텐츠에 대한 그 열망이 얼마나 크겠어요. 다만 재정이 부족하고 유명한 연예인의 섭외가 불가능할 뿐이죠. 그래서 저희가 연출권을 내려놓고, 그들에게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목적이었죠. 그 과정을 사실 그대로 담아낸다면 그 또한 관찰 예능이니까요. 상생과 협업을 시작한거죠”
  국내 최초 방송사 간의 벽을 허문 방송 상생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모방>. 색다른 모습과 체제를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큰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다는 최민근 피디는 더욱 색다른 콘텐츠로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진정성과 시도해보지 않은 소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싶다는 그는 아직 콘텐츠로 제작해보지 못한 기획안만 100개가 넘는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이어 며칠 밤을 새고 겨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식당이나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쌓인 피로가 풀린다고 전했다. 피디가 되고 싶지 않았고, 피디가 하고 싶었던 그는 오늘도 시청자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있다.


엄태은 기자
ii06@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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