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이라면 축구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볼 것이다. 직접 경기장에 찾아가 경기를 보는 팬들도 있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팬들의 경우에는 TV중계를 통해 경기를 시청한다. TV중계를 시청하는 팬이 경기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함께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태륭 축구해설위원(이하 김태륭 위원)이다. 해외축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주말 밤 그의 목소리를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태륭 위원이 말하는 자신의 축구인생과 그가 청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축구인생을 말하다
지난달 13일 기자는 서울월드컵경기장 내의 ‘풋볼 팬타지움’ 옆 카페에서 김태륭 위원을 만났다. 그는 웃으면서 기자와 악수를 한 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현재 KBS와 SPOTV의 축구해설위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기자였다. 7살 때 그는 프랑스 특파원으로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갔다. 너무 어려 알파벳도 몰랐던 그는 현지 학교에 입학해 왕따를 당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축구를 하게 됐는데, 그것에서 재능을 발견했다. 그는 축구를 하면서 프랑스어도 빨리 익혔고, 왕따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축구를 통해 프랑스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던 그였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5년의 프랑스 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축구를 계속해야 하는데 문화적인 차이가 너무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운동선수들 사이의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지금보다 심하다 보니 거기에 적응하기 힘들었죠. 또 유럽의 선진축구를 경험하고 오다 보니 훈련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결국 저만 자꾸 겉돌기 시작했고 많이 힘들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 실력은 별로면서 의식만 되게 높았던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축구를 했던 경험이 한국에 돌아와서 그에겐 독이 됐다. 한국에서 그는 소위 말하는 한국 축구의 엘리트 코스를 밟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이후 대학에 진학해서도 프로선수를 목표로 했던 그의 축구 인생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대학교 4학년 때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서 프로선수가 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다행히 고교시절부터 저를 눈여겨보았던 팀이 드래프트에서 저를 뽑아주시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힘들겠지만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다른 팀에서 저를 뽑은 거예요. 그렇게 프로팀에 들어갔는데, 부상 때문에 팀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고 개인 훈련을 했어요. 신인인데 그렇게 시작이 뒤처지다 보니 따라잡지 못했고, 적응에도 실패했어요. 저에게 있어 정말 힘든 시기였죠”
김태륭 위원은 프로선수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인 대학교 4학년을 부상으로 제대로 경기에 뛸 수 없었다. 어렵게 프로선수가 된 후에도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는 축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보내야 할 젊은 나이에 프로선수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그는 축구를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축구해설위원의 길로 들어서다
그는 프로선수를 은퇴한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다. 공익근무를 하면서도 그는 K3 아마추어 리그에서 축구를 하며 축구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축구 지도자 혹은 행정가로서의 길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K3 아마추어리그 부천이라는 팀에서 축구를 계속하고 있었어요. 부천 팀이 프로가 되기 전이니까 부담감 없이 축구를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팀 성적도 좋았어요. 그러다보니 두 개 정도 팀에서 프로 입단 제안이 오기도 했죠. 하지만 그때는 이미 프로선수로서는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히 두렵기도 했고요. 그래서 공익근무를 마치면 축구 지도자나 행정가를 준비하려 했어요. 축구 해설은 생각도 안 했어요”
비록 프로선수의 길은 내려놓았지만 그는 축구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공익근무를 하면서 내셔널리그에서 해설위원을 했어요. 그때는 보는 사람도 없고 피드백 주는 사람도 없다 보니 그냥 마음 편하게 재미로 했죠. 그러다가 11월에 공익근무가 끝나고, 내년 연초에 있을 모집공지를 기다리며 두세 달 정도 프랑스로 가 수습코치를 할 생각을 했어요. 그때 운 좋게도 모교인 고려대에서 코치제의가 왔어요. 그렇게 코치 생활을 막 시작했는데, SBS 스포츠 채널에서 해외축구해설위원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그래서 한 번 지원해 봤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붙어버린 거예요. 처음에는 학교 측에 양해를 구하고 코치와 해설위원을 병행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힘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코치를 그만두고 해설위원의 길로 들어섰어요. 해설위원을 하는 것은 제게 정말 큰 모험이었어요”
미래가 보장된 고려대 코치라는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모험을 선택한 김태륭 위원을 주위에선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들어선 축구해설의 길이,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그에게 성공을 안겨줬다.
축구해설, 축구와 관련된 일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김태륭 위원은 SNS를 통해 축구 해설을 준비하는 청춘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비선수 출신도 해설위원이 될 수 있나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축구 해설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위험해요. 그저 하나의 보조직업 정도로 생각 하는 게 맞다고 봐요. 방송사별로 축구해설위원을 공채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활동하는 해설위원 중에도 정식계약을 통해 정기적인 월급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또 시청자와 방송국은 선수 출신 해설위원을 선호해요”
그는 현재 축구해설위원이라는 직업의 현실을 잘 설명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청춘들에게 그는 아낌없는 조언을 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축구해설위원이 되고 싶다면 먼저 축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해보는 것이 좋아요. 사실 축구해설을 하는데 있어 선수 출신과 비선수 출신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각자 잘 할 수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장점을 찾고 그것을 전문화된 지식으로 특화하면 되니까요. 다만 하다못해 조기축구라도 해봤으면 해요. 조기축구에도 축구 전술이 있고, 주전과 비주전 사이의 경쟁이 있기 때문에 프로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해봐야 자신감을 갖고 설명할 수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축구 해설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 경험이라고 말한다. 직접 축구를 해봐야지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했다.
“우리나라 축구 산업은 현재 침체돼 있어요. 이 침체가 10년이 될지 50년이 될지 아무도 몰라요. 그 때문에 헛된 꿈을 갖고 이 길로 들어서면 크게 실망을 하게 될 거에요. 정말로 간절히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면 현실을 냉정히 보고, 현 상황을 견디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할 각오가 있어야 해요”
그는 실제로 축구 산업에 들어와 실망하고 그만두는 사람을 많이 봤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축구 산업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지치지 않고 일에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자신의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들에게 충고를 건냈다.
“처음 해설위원을 할 때 한 달에 중계를 4개 정도 했어요. 당시 중계 1개 당 10~15만 원 정도 받았는데,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부족한 돈이었죠. 그래서 도핑방지위원회에서도 일을 했어요. 도핑방지위원회 일을 하면서 스펙 좋고 능력 있는 신입사원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오래 일을 못하더라고요. 그들을 보면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야 일에 흥미를 갖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김태륭 위원도 계속 하고 싶은 축구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대학생들이 힘든 현재의 취업상황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자신의 길을 갔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김태륭 위원은 지난해 220개의 경기를 중계했다. 그는 이렇게 많은 경기를 중계한 사람은 전 세계에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진지하게 이 기록을 기네스에 올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이제 전 세계의 관심은 올해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으로 옮겨가고 있다. 김태륭 위원의 관심도 마찬가지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인만큼 올해 그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경기를 중계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랫동안 축구 해설을 하고 싶다는 김태륭 위원. 오늘도 그는 축구 경기를 시청하는 팬들을 위해 중계 준비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김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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