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5일을 마지막으로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17일간의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지난달 9일부터 18일까지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해준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개최됐다. 이번 사람이슈의 주인공인 이주승 선수는 동계 스포츠 종목 파라 아이스하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다. 빙판 위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이주승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애인 아이스하키 종목의 정식명칭은 ‘파라 아이스하키(Para Ice Hockey)’이다. 파라 아이스하키는 비장애인 아이스하키와 마찬가지로 빙상에서 경기가 진행되며 팀마다 골키퍼를 포함해 총 6명의 선수가 경기에 참여한다. 파라 아이스하키 선수는 비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와 달리 경기장에서 스케이트 대신 퍽이 통과할 수 있는 썰매를 타고 두 개의 스틱을 사용한다. 스틱의 한쪽 끝에는 썰매 추진을 위한 픽이, 다른 한쪽에는 퍽을 칠 수 있는 블레이드가 달려있다.
빙판 위 기적의 시작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이주승 선수는 선천성 척수염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스포츠를 즐기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선천성 척수염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태어났고, 지금까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고 있어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했지만, 또래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평소 운동을 좋아해서 대학교에 다니면서 취미로 휠체어 럭비와 휠체어 육상을 즐겼어요”
우리 학교 경영정보학과 학생으로서 평범한 대학 시절을 보내던 그가 본격적으로 파라 아이스하키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2012년이었다.
“전국체전에서 휠체어 럭비 종목 우승을 차지했어요. 우승자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만났고, 이후 그 선수들과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가 됐어요. 그러던 중 파라 아이스하키 종목의 입문을 제안받았어요. 경험해보지 못한 ‘동계종목’에 호기심을 느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어요.
현재 그는 썰매를 타고 자유롭게 빙상장을 누비지만, 처음 마주한 아이스하키는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반신이 불편한 선수들의 발이 돼주는 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저 같은 경우에도 썰매에 적응하는 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처음 썰매를 타고 난 다음날에는 몸 여기저기가 아팠어요. 오로지 두 팔의 힘만으로 썰매도 타고 퍽도 다뤄야하기 때문에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은 제가 다가가기 어려운 종목으로 느껴졌죠. 그때는 ‘내가 정말 아이스하키 선수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져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아이스하키는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에서 메달 획득을 목표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했어요.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다시 힘내서 운동했어요. 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썰매 조작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아이스하키만이 가지고 있는 속도감과 격렬함은 그동안의 힘듦을 잊게 해줬어요. 운동이 너무 좋아 휴학을 결심했고, 운동에만 전념했어요”
그러나 이후 계속해서 학업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다.
“4학년 1학기에는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지만 아이스하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실업팀에 입단하는 시점에는 도저히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없었어요. 결국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상태에서 저는 운동을 택했어요. 부모님의 만류도 있었고, 스스로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순간 국가대표로 뽑히게 됐고,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어요”
운동을 시작하고 만 1년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는 그만큼 치열하게 운동했다고 말한다. 2014 소치 패럴림픽 참가를 시작으로 국가대표 생활 5년차인 그는 언제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라는 자긍심을 갖고 운동에 임하고 있다.
잊지 못할 평창
그의 평창 동계패럴림픽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의 연속이었다.
“패럴림픽 개회식 때 선수대표로 선서했던 순간, 체코전에서 생애 첫 패럴림픽 골을 기록했던 순간을 비롯해서 모든 일들이 선명하게 기억나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이기고 동메달이 확정된 순간이에요. 마지막 종료 휘슬이 울린 순간, 그동안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훈련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경기가 끝나고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께서 모든 선수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셨어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대표 선수로서 다시 한 번 자부심을 느끼게 됐어요”
대한민국 파라 아이스하키팀은 2012년 하마르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 획득과 평창 동계패럴림픽 동메달 획득이라는 성과로 현재 세계랭킹 3위에 랭크돼있다. 하지만 이러한 쾌거를 이루는 과정에서 선수들에게는 남모를 애로사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스하키라는 동계종목은 비인기 종목에 속해요. 그래서 다른 동계종목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관심이나 정부의 지원이 적은 편이에요. 파라 아이스하키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훈련을 위한 전용 링크장도 없고, 국내 실업팀이 강원도청 한 팀 뿐이어서 마땅한 연습상대도 없어요. 이번 동계패럴림픽 준비 기간 동안 연습상대가 없어 북미,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전지훈련과 시합을 병행했어요. 1년 가까운 시간동안 합숙훈련을 진행하면서 선수들이 많이 지치기도 했어요. 실제로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서 그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체계적인 훈련, 선수 육성 등 아이스하키 인프라가 잘 정착돼있다고 느껴져요. 많은 것들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어떤 이는 이렇듯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해온 대한민국 파라 아이스하키 팀의 메달 획득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많은 땀을 흘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경기장에서 국민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됐어요. 대회 기간 동안 강릉 하키센터에 7,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매 경기마다 경기장을 찾아 응원해주셨어요. 아직 아이스하키 경기를 직접 본 경험이 없으시다면, 꼭 한 번 경기를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직접 경기를 보시면 분명히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지게 될 거예요”
청춘에게 건네는 말
그에게 아이스하키는 청춘이다.
“저의 20대 시절, 청춘을 아이스하키와 함께 보냈어요. 운동을 시작하고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서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학업을 비롯해서 포기해야 하는 일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포기해야 했던 일들보다 값진 경험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그 결과 아이스하키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게 됐어요”
그는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고, 열정을 쏟아 도전했던 아이스하키가 자신을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춘에게 조언을 전했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주어진 환경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다 보면 스스로가 열정을 쏟고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 그 일에 꼭 도전해보세요. 결과와 관계없이 그 순간들이 인생에서 뜻 깊은 순간이 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아이스하키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상상해본적도 없고, 대학교 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저처럼 말이에요”
이주승 선수도 자신이 도전했던 일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청춘들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갔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주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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