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넘이 찾아오기 전까지 전 작은 의자에 파묻힌 난쟁이 똥자루에 불과했죠. 90cm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나 같은 사람도 이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 그런데 어때요. 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말하고 있어요.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고, 내게 장군 칭호를 주고 용기를 심어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바넘이에요!”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공연된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이하 바넘)에서 90cm 저신장을 가진 퍼포머, ‘톰 썸 장군’의 대사이다. 톰 썸 장군은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도 작은 키로 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톰 썸 장군을 연기한 김유남 배우 역시 자신을 난쟁이라 소개하며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서고 있다. 132cm의 저신장, 그렇지만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도 빛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연기를 꿈꾸기까지
“안녕하세요. 난쟁이 배우, 김유남입니다”
명랑한 목소리로 스스로를 ‘난쟁이 배우’라 소개한 그는 132cm의 저신장이다.
“흔히 저신장 장애라고 말하죠. 정확한 병명은 연골무형성증이에요. 그래서 연골도 약하고 뼈도 잘 부러지고 그래요. 성장도 느리고요”
그의 학창시절은 누구보다도 밝고 씩씩했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기죽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다. 친구들이 많은, 사교적인 학생이었다.
“학창시절은 누구보다 밝고 명랑했어요. 선생님들과도 잘 지냈고 친구들도 많았죠. 주변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거의 학교 전체가 친구인 느낌이었죠”
그는 처음부터 배우를 꿈꿨던 것이 아니었다. 저신장 장애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제일 가까이에서 본 직업은 목사와 의사였고, 그래서 막연하게 목사와 의사를 꿈꿨다.
“처음부터 배우를 꿈꾼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목사나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치료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때 목사님이 같이 기도해주시고 병원도 같이 다녔거든요. 어머니도 저랑 똑같은 장애를 가지고 계신데, 어렸을 때 어머니를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의사가 되고 싶었고요.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같이 미술치료도 병행했을 때는 화가, 예술 쪽을 꿈꾸기도 했어요”
학창시절 선생님, 친구 모두와 잘 지내는 그를 지켜본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그에게 ‘개그맨’이라는 꿈을 추천했다. 그는 그때부터 연기를 하고자 마음먹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진로 상담 때 개그맨을 추천해주셨어요. ‘너는 선생님들께도 위트 있게 대하고 친구들도 많으니까 이 점을 살려서 개그맨 해보면 어떻겠니’라는 말에 확 꽂혔죠. 사실 제가 관심받는 것을 좋아해요. 아마 제 이러한 성향이 개그맨으로 꿈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됐고, 그 이후 입시학원에서 연기를 배웠죠. 대학은 예원예술대학 코미디학과에 입학했고요”
그는 개그맨을 꿈꾸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정작 현실은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 ‘너는 꼭 붙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면접에서 쓴 고배를 맛봤다.
“대학교 1학년, 2학년 때 개그맨 면접을 봤지만 잘 안됐어요. 선배들이 제 개인기가 정말 재밌다고, 그 정도면 붙을 만하다고 했는데 다 떨어졌죠. 친구랑 같이 팀을 짜서 콩트를 했는데 많이 부족했었어요”
계속된 탈락에 그는 지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잠시 학업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졸업을 앞둔 4학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연극 무대였다.
“사실 1학년 때 단편 영화에 출연했었어요. 제 데뷔작이지만, 사실 기억은 잘 안 나요. 그냥 즐겁게 촬영했다는 기억뿐이죠. 그런데 4학년 때 아는 선배가 연극 출연 제의를 하신 거죠. 제 첫 번째 연극이었어요”
무대가 설레는 천생 배우
대학교 4학년, 갑작스럽게 그의 다리에 적신호가 왔다. 그는 한쪽 다리가 망가져 수술하게 되면서 예정됐던 졸업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그는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정말 제 연기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연기에 대한 절실함에 매일 울었죠. 수술하고 완쾌가 될 때쯤에 선배가 자기 연극 무대에 출연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때 정말 감사했죠”
그의 학교 선배 중 그와 같이 저신장 장애를 가진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가 연극 쪽으로 활동을 하다 자신의 저신장 장애를 바탕으로 연극 대본을 썼다. 그 연극의 주인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저신장 장애를 가진 김유남 배우였다.
“제 첫 번째 연극의 배역 이름이 뭐였는지 아세요? ‘유남이’였어요. 바로 제 이름이죠. 제 이름을 걸고 한 배역이어서 소중하기도 하지만, 장애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어요. 사실 저는 장애인이라고 심각하게 놀림 받은 적은 없어요. 그런데 극 중의 유남이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겪었거든요. 유남이는 왜 그랬을까, 어떤 점이 힘들었을까, 유남이를 연기하면서 장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이 역할은 저에게 정말 소중하고 애정이 깊어요”
2015년, 처음 연극으로 데뷔를 한 후 꾸준하게 역할 제의가 들어왔다. 김유남 배우는 올해까지 총 8개의 작품을 했다. 연극뿐만 아니라 뮤지컬, 무용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활동했다.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꾸준히 출연 제의가 들어왔어요. 연극도 했고, 뮤지컬도 했고, 무용 공연도 했죠. 역할도 다양해요. 화가도 있었고, 극단 막내 역할도 있었고, 해결사 역할도 있었어요. 딱히 장애인 배우가 필요해서 그 역할을 맡은 게 아니라, 제가 그 역할로 들어가면서 그 역할이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게 되는 거죠”
바넘은 그가 지금까지 한 공연 중 가장 큰 규모의 공연이었다. 그는 이 뮤지컬에서 저신장 장애를 가진 ‘톰 썸 장군’ 역할을 맡았다.
“바넘도 캐스팅으로 맡게 됐어요. 원래 톰 썸 장군이 저신장 장애를 가진 캐릭터인데, 섭외가 쉽지 않았대요. 키 작은 배우를 섭외하자니 느낌이 안 살고, 그렇다고 저신장 장애인인 일반인을 찾자니 연기가 안 돼서 감독님도 톰 썸 장군 캐릭터를 없애야 하나 고민을 했대요. 그러다가 감독님이 제 공연을 보게 됐고 제가 눈에 딱 띈 거죠”
그는 단일 캐스팅으로 96회를 공연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있어도 결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즐겁게 연습했다.
“바넘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평가가 있어요. 친구가 저한테 공연 리뷰를 보내줬는데 거기에 ‘이 극에서 감동의 80%는 톰 썸 장군이 한다’고 쓰여 있었어요. 솔직히 관객들과 저는 외모도 다르잖아요. 다르면 공감을 하는 것이 어려운데, 제 연기에 공감하는 관객들이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김유남 배우는 무대 위에서 긴장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연기하면서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에게 연기는 일종의 체질이었다.
“무대 위에서 떨림, 긴장감을 느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무대에 서면 설레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연기를 하고, 그 결과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설렘이 가득해요. 저는 제가 천생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난쟁이어도, 뭐 어때
김유남 배우는 자신을 소개할 때 ‘난쟁이 배우’라고 소개한다. 사전에서 난쟁이의 뜻은 ‘기형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다. 그렇지만 그는 난쟁이라는 호칭이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그에게 난쟁이는 계속해서 쓰고 싶은 호칭이다.
“저는 장애인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를 바란 적은 없어요. 오히려 제가 다른 사람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대부분의 비장애인은 장애인들이 되려 불편할까 봐 어렵게 다가와요. 그런데 장애인들이 먼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면, 비장애인들도 좀 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저는 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무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키 작은 사람을 난쟁이라 부르니 스스로를 난쟁이라 말하는 것 뿐이고, 친해지면 ‘사실 난쟁이는 안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야’하고 설명을 해 주죠”
김유남 배우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해 긍정적이다. 오히려 그는 배우로서 ‘저신장’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배우는 독보적이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저신장은 최고의 장점이죠. 저 같은 배우는 찾기 드무니까요. 물론 로맨스 코미디의 남주인공은 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특정한 상황에서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신체를 갖고 있잖아요. 아직 저신장 장애를 가진 역할이 많이 없어서 그렇지, 제가 좀 더 유명해지면 독보적인 캐릭터를 가지지 않을까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
그는 배우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직업’이라 말한다.
“배우를 하면서 좋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꿈을 다 해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의사가 될 수도 있고, 화가가 될 수도 있죠. 배역을 맡으면 그 배역이 가진 직업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상식도 쌓이고요. 꿈을 정할 필요가 없어요. 다 할 수 있는 것이 배우의 장점이자 매력인 것 같아요”
김유남 배우가 가진 앞으로의 꿈은 ‘달나라에 자신의 엔터테인먼트를 차리는 것’이다. 그는 일부러 꿈을 허황되게 잡았다. 그래야 그 앞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잘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달나라에 엔터테인먼트를 차리기 위해서는 그 전에 지구에서도 엔터테인먼트를 차려야겠죠. 엔터테인먼트를 차리기 위해서는 유명하거나 돈이 있어야 할 테고, 그럼 제가 유명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 파생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워야 할 거예요. 허황된 목표는 분명 이루기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철저한 준비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면 분명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그는 대학생들에게도 ‘구체적인 목표’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제가 대학생 때 느꼈던 것은 목표로 하는 꿈에 ‘대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대학이 필요할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학생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하지만 먼저 그전에, 구체적인 목표가 전제돼야 해요.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어느 것이 필요하고 필요 없는지를 알아요. 자신을 믿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꿈을 이루는 첫 단계예요”
김노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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