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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지구별 탐험가
제 939 호    발행일 :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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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허락한 자만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신의 처소’ 히말라야. 많은 산악인이 본인의 한계를 시험하며 그곳에 오른다. 그중에서도 박정헌 대장은 우리나라 산악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히말라야 거벽 등반가이다. 가장 어려운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추구하는 그는 비록 지금은 산을 떠나 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탐험을 시도하는 중이다. 산악인 박정헌 대장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지구별 탐험가로서 떠날 길을 함께 걸어보자.


자연과 자란 아이, 산을 마음에 품다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유년 시절에 보낸 환경이 자신을 산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와룡산 수정굴에선 수정을 주웠고, 바다에서는 낚시하며 놀았어요. 자연을 놀이터 삼아 놀던 저에게 암벽 등반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죠. 집 뒤에 있던 와룡산 상사바위는 당시 서부 경남에서 암벽 등반으로 가장 유명했던 장소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중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암벽 등반에 입문하게 됐죠”
  그는 고교시설부터 인수봉 연장등반(목표한 코스를 쉬지 않고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등반) 과 설악산 토왕폭을 완등하는 등 등산에 재능을 보여 경남의 무서운 십대라고 불리며 이름을 날렸고, 히말라야까지 도전하게 됐다. 처음 만난 히말라야는 당시 19세였던 그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1989년 저는 히말라야 산맥의 최고봉 중 하나인 초오유 등정에 도전했어요. 8,201m인 그곳에서 저는 고산 증세와 희박한 산소와 싸우며 매 순간 한계에 부딪혔죠. 설상가상으로 함께 산을 오르던 셰르파의 리더가 죽는 것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결국 등정에 실패했는데 함께 했던 동갑내기 친구는 그때의 충격으로 영원히 산을 떠났어요”
  그 후 박정헌 대장은 히말라야와 거벽 등반을 멀리하며 안전한 스포츠 클라이밍과 암벽 등반에 매진했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은 그를 다시 불러들였고, 1994년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에 성공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이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말한다.
  “12명의 대원 중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저 한 명이었어요. 저를 제외한 3명은 셰르파였죠. 아무리 정상에 올랐어도 셰르파가 이끄는 길을 따라갔으니 완전한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등로주의, 제일 어려운 길로 가다

  안나푸르나 등정의 아쉬움 이후 박정헌 대장은 본격적으로 등로주의를 추구한다. 등로주의는 여러 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길로 산을 오르고, 인공적인 장비와 대규모 원정대 등을 지양하는 등반 방식이다.
  “처음부터 등로주의를 추구한 건 아니에요. 등로주의를 추구한 것은 경제적인 영향이 컸죠. 등정주의 방식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워 등로주의 방식을 접하게 됐고, 등로주의 방식으로 등반하다 보니 이것이 저의 가치관과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저의 가치관과 원정대의 방식이 맞지 않아 원정 시작 전에 포기한 적도 있었어요. 2004년에 제가 히말라야 3대 난벽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로체 남벽을 오르러 히말라야로 갔을 때예요. 그때 함께 갔던 원정대는 대규모 인원과 많은 장비를 이용해 로체 남벽을 오르려 했죠. 하지만 저는 좀 더 깨끗하고 순수한 방식인 등로주의로 로체 남벽을 오르고 싶었어요. 인력과 자본으로 산을 오르는 등정주의로 산을 오를 바에는 차라리 오르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원정에서 철수해 한국으로 돌아왔죠”

기적적인 성공, 그곳에서 깨달은 교훈

  1995년, 그는 히말라야의 또 다른 난벽인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에 우리나라 최초로 성공한다. 준비단계에서 먼저 등정에 성공했던 일본 원정대를 찾아가 정보를 수집한 것이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정 출발 전에 먼저 등반에 성공했던 일본의 군마현 원정대를 만나 브리핑을 들으며 정보를 수집했어요. 군마현 원정대와 함께 간단하게 술을 마신 후에 노래방에 갔는데, 흥에 겨운 한 일본 원정대원이 저희에게 지나가듯이 ‘우리가 마지막 베이스캠프에 산소통 몇 개를 묻어놓고 왔는데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죠. 등반에 몰두하며 그 말을 잊고 있었는데 마지막 베이스캠프에 도달했을 때 문득 그 말이 떠올랐어요. 사실 마지막 베이스캠프는 고도가 높아 산소가 부족한데 저희는 소규모로 등반하다 보니 인력이 부족해 산소통을 운반하지 못했어요. 마지막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저를 비롯해 대원들 모두 산소 부족으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도 일본 원정대가 말한 위치를 파보니 산소통이 그대로 있었고, 그 산소를 이용해 등정할 수 있었죠. 산소통뿐만 아니라 일본 원정대가 해준 사소한 조언이 없었다면 아마 그 원정은 실패했을 거예요. 이 사건을 계기로 먼저 경험해본 사람의 조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느꼈어요. 이것이 제가 히말라야 원정을 떠나려는 친구들에게 최대한 조언을 많이 하려는 이유이기도 해요”

K2 남남동릉에서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다

  2000년, 박정헌 대장은 자신이 추구하는 등로주의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 무산소 등정에 도전한다.
  “K2 남남동릉(이하 K2)은 높이가 8,611m인데 이곳을 무산소로 등정하는 것은 저에게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원정대에서 저만 유일하게 무산소 등정을 했는데 이 업적은 대원들이 없었으면 결코 이뤄낼 수 없었을 거예요. 선두에 서서 눈을 헤치고 나가면 체력이 엄청나게 소모되는데 같이 간 후배들이 선두에 서줘서 저는 체력을 아낄 수 있었어요. 이런 후배들의 도움 덕에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고 하루 동안은 성취감에 취해 제 몸 상태를 깨닫지 못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죽은 사람처럼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체내의 산소가 완전히 고갈돼 죽을 것처럼 힘들었고, 고산 증세까지 와서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K2처럼 험준한 산을 무산소로 등정했다는 성취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촐라체 사고, 산악인으로서의 삶을 빼앗다

  2005년, 그는 후배 한 명과 함께 촐라체 북벽 (이하 촐라체) 등정에 성공한다. 그러나 하산하다 당한 사고로 박정헌 대장의 인생은 180도 바뀐다.
  “촐라체 등정 후 하산하는 도중에 후배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셔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추락해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저는 추락한 후배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 과정에서 5번 척추의 3분의 2가 함몰됐을 뿐만 아니라 왼쪽 갈비뼈 2개가 부러지고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입었어요. 추락한 후배는 살기 위해 두 팔만을 이용해 벽을 기어올랐고 저는 위에서 필사적으로 당겼죠. 사람들은 ‘왜 자신의 생사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동료와 연결된 줄을 끊지 않았느냐’고 물어요. 저는 ‘산악인의 생각은 비산악인의 생각과 다르다’고 답하죠. 산악인에게 동료는 한 줄로 연결될 때부터 한 몸이에요. 그래서 저는 동료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살리려고 온 힘을 다했고 크레바스에서 탈출한 우리는 평소 3시간이 걸릴 하산을 12시간 동안 했어요. 그 과정에서 심각한 동상을 입었고, 후유증으로 양쪽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모든 손가락의 마디를 절단해야 했죠”
  산을 오르며 수직적인 인생을 살던 박정헌 대장은 사고 후 산에서 내려와 수평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 더 긴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34년 간 함께 해온 손가락이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상처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상처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지나도 아물 수 없는 상처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아픔에 적응하며 익숙해지는 것이죠. 사고 이후 2년의 슬럼프는 저에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암흑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죠. 이것이 촐라체 사고를 통해 배운 값진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 인생, 그의 끊임없는 도전

  촐라체 사고 다음 해인 2006년,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자 3개월 동안 톈진부터 고비사막까지 횡단하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함을 한 번 더 확인했어요.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과의 경쟁은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제가 페달을 멈추면 저라는 존재는 도태될 거고요. 자전거 여행을 통해 여기서 멈추지 말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히말라야로 돌아가야겠구나’라는 확신을 얻었어요”
  다시 돌아간 히말라야에서 그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사고 전 도전이 히말라야 봉우리를 등정하는 것이었다면 사고 후에는 히말라야 봉우리 위를 날고자 했다.
  “어떤 도전을 할까 고민하다가 두 외국인이 히말라야의 하늘을 패러글라이딩으로 나는 영상을 봤어요. ‘산 아래에서 봐도 아름다운 히말라야를 하늘을 날며 보면 얼마나 환상적일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히말라야의 모든 봉우리를 패러글라이딩으로 횡단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그 모습을 KBS 대기획 ‘이카로스의 꿈’ 다큐멘터리에 담았어요. 그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2,400km를 패러글라이딩으로 횡단하는 데 성공했죠. 하늘에서 본 세상은 차원이 달라요. 땅에서 보는 세상이 2D라면 하늘에서 보는 세상은 3D라고 할 수 있죠. 아무리 영상으로 담아도 실제로 경험하며 직접 보는 것만 못할 거예요”
  패러글라이딩 이외에도 박정헌 대장은 카약과 유튜브 방송 등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 중이다.
  “카약은 제가 도전한 일 중 가장 아마추어적인 분야였어요. 네팔에서 580km의 급류 카약을 타다가 소용돌이에 갇혀서 죽을 뻔한 적도 있어요. 다행히 같이 갔던 친구가 카약 전문가여서 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죠. 또 제가 하는 탐험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최근 유튜브 방송도 시작했어요. ‘지구별 탐험가’라는 이름으로 채널을 운영 중인데, 2년 후에 떠날 10년 간의 지구별 탐험을 전하기 위해 미리 시작했죠. 2년 후에 러시아 바이칼호,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 알프스 산맥 등으로 가서 카약과 스키로 그곳을 탐사할 계획이에요. 제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아름다운 곳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청춘에게 전하는 한마디

  “저는 정말 열정적인 20대를 보냈어요. 안나푸르나를 등정해 꿈을 이뤘을 때가 24살이었고, 29살에는 K2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어요. 저는 20대에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일출을 보면서 운동했는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제가 살아있음이 매 순간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제가 찬란한 20대를 살았듯 여러분 인생의 20대도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20대는 열정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시기니까요.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20대를 회상했을 때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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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완 기자
kimchaewan@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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