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한다. 흔히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의 사진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 그리고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추억이 되고, 기록이 되어 누군가의 역사가 된다. 기자가 만난 강위원 사진작가는 우리 사는 시대의 순간을 사진에 기록해 역사로 남기는 일을 한다. 진실을 담아 시대를 기록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연이 맺어준 사진과의 인연
그는 자신의 사진작가 인생에는 매우 많은 운이 따랐다고 회상했다.
“사진작가가 된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외삼촌이 베트남을 갔다 오시면서 카메라를 가져오셨어요. ‘미놀타 SRT 101’이라는 모델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상당한 고급 카메라였죠. 외삼촌과 한 집에 살던 탓에 자연히 그 카메라를 제 마음대로 쓰게 됐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다니던 중, 대학교 1학년 때 길을 가다가 월산예술학원을 우연히 보게 되었죠. 그곳에서 강의를 듣고 실습을 하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사진에 빠져들었어요.”
처음 등록한 학원의 3개월 과정이 끝나고, 그는 다시 강의를 신청해 계속 학원에 다녔다. 학원이 생긴 이후 연구반을 졸업한 것은 본인이 유일했다며 그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카메라와 그의 인연은 군대 시절에도 계속됐다.
“제가 운이 좋다고 말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군대 시절도 그중 하나예요. 전 베트남전에 청룡부대로 참전했습니다. 그때 인사 참모실에서 특기를 가진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 손을 들고 ‘한국에서 사진을 했었습니다’라고 말했죠. 사실 당시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제 말은 묻혔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사진 담당관이 제대날짜가 지났는데도 후임이 없어서 귀국을 못 하고 있었어요. 그런 우연으로 시험을 거쳐 제가 사진 담당관이 됐습니다.”
그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도 카메라에 주변의 모습을 담았다. 결국 19세부터 카메라를 잡았던 그는 자연히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카메라를 접하면서 생긴 흥미와 배움에 대한 열정이 그가 계속해 카메라를 잡게 된 원동력이었다.
시대를 찍는 사람
1960년대 후반부터 작업을 시작한 그는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왔다. 여태 찍어온 사진 중에서 인상 깊은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그는 기억을 되짚었다. 기자가 사전에 조사해본 바로, 그는 대구광역시(이하 대구)의 모습을 많이 찍은 사진작가였다. 그는 1949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고향 대구의 모습을 가장 많이 찍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 찍은 흑백 사진 중에서 서문시장을 찍은 ‘통닭센터’라는 사진이 있습니다. 저는 대구의 서문시장에서 태어난 사람이기에 그 사진이 의미가 남다르죠. 또 옛날 대구역 옆, 번개시장을 찍은 인간미 넘치는 사진이 있습니다. 옛날 대구에는 완행열차가 다녔는데, 그 당시 사람 대부분이 그 열차를 타고 학교와 직장을 다녔습니다. 아침 시간이면 농촌 사람들이 농사지은 걸 머리에 이고 장을 보러도 오는 겁니다. 그걸 팔아서 학용품도 사고, 부모님 약도 사고, 손자 과자도 사는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은 거죠.”
1979년 경북공업고등학교 야간부 화학 교사였던 그는 낮에는 사진을 찍고, 밤에는 교사로 근무하며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다. 학교에서 교련검열을 하는 모습, 교내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학생들, 학생들이 걸어가는 복도, 수업 중인 교실 등 아주 많은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학교와 학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와 사진은 많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제대로 찍고 원고로 정리해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흑백 사진들이 제일 정감이 갑니다. 초기작이라서 더 애착이 가는 것도 있죠.”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백두산, 조선족 등 우리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전 조선족이 뭔지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경북산업대, 지금의 경일대에서 교수로 있을 때 우연히 백두산에 가게 됐습니다. 그때 민족의 영산으로 끝없이 깊은 아름다움을 가진 백두산에 빠지게 됐습니다. 자연히 백두산에 대해 조사도 하고, 여러 번 방문도 했습니다. 백두산을 말하면서 조선족 이야기를 뗄 수는 없으니 조선족에게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에도 발해, 금나라, 청나라 등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역사를 담은 그의 사진은 지난 7일부터 오는 19일까지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개최되는 ‘백두에서 압록.두만까지’ 사진전에서 볼 수 있다.
“방송국과 작업을 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통일 문제로 이야기 중이니 한반도 평화통일 사진전을 해 보는 게 어떠냐’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우리 민족의 모태지인 백두산에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넣으면 이것이 우리 민족의 이야기가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모였죠. 그러면서 ‘중국 쪽에서 찍은 백두산만 사진전을 할 것이 아니라 북한 쪽에서 찍은 사진도 넣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조선족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백두산을 찍는 류재학 씨와 함께 작업하게 됐습니다. 그분은 북한에서 본 백두산의 아름다운 풍경, 북한 사람들의 생활 등을 사진으로 찍었고 저는 민족의 영산으로서의 백두산, 그러니까 의인화된 역사적 흔적을 주로 찍었습니다.”
카메라와 걸어온 길
오랜 시간 여러 작업을 해온 그는 사진을 찍으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중국에서 사진을 찍을 때, 중국 탱크와 군인들에게 포위당한 적이 있습니다. <두만강>이라는 책을 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야생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두만강의 발원지인 적봉을 탐사하러 갔습니다. 한참 사진을 찍은 후에 안내하던 기사분과 도시락을 먹으려던 차에 탱크가 오고 총을 든 군인들이 저희를 둘러싸는 겁니다. 그러더니 제 사진기를 달라고 해 확인하는 겁니다. 아무리 확인해도 전부 야생화 사진밖에 없으니, 강 쪽으로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가더군요.”
이렇게 신변의 위협을 느껴 기억에 남은 날도 있었지만, 황홀한 자연에 매료돼 정신없이 셔터를 누른 날도 기억에 남아 있다.
“저는 백두산을 십 년 가까이 찍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찍은 사진 중 절반 가량을 한 번의 작업으로 찍었어요. 그날 새벽, 하늘을 보니 온 하늘에 은하수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거다’라는 생각에 자고 있던 팀원들을 깨워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오전 11시 30분이 되어 기진맥진할 때까지 약 80통의 필름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찍은 백두산 명작 시리즈 40장을 고르라면 그때 찍은 사진이 20장 정도 될 겁니다.”
사진작가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한순간도 없다고 말했다. 한 시간 반 정도 기자와 인터뷰하며 사진에 대해 말하는 그의 모습은 열정과 즐거움으로 가득해 보였다.
“사진작가라는 직업은 장점이 아주 많아요. 첫 번째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풍경을 찍기 가장 좋은 시간이 해뜨기 직전부터 해 뜨고 난 후 한 시간까지입니다. 이슬과 안개가 있는, 겨울에는 성에가 있는 그런 뿌연 느낌이 참 좋습니다. 그런 걸 보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해요. 자연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밖에 없겠죠? 두 번째로 젊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마음이 젊습니다. 젊은이들과 만날 수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세 번째로 보람이 있습니다. 1960~1970년대에 사진을 찍을 때는 그것이 그렇게 소중한 건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 아주 귀중한 유물입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을 기록했다는 자부심이 생겨요. 진심을 담아 문화와 시대를 기록했고, 지금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보람찹니다.”
젊은 청춘에게 고하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과 관련 없는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그 후 대학원에서 사진과 관련된 전공을 깊이 공부하긴 했지만, 대학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택한 인생 선배로서 지금의 대학생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나이, 그러니까 10대의 끝자락에서 결심하고 선택한 게 100% 옳다고 보기는 어렵죠.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끄는 직종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를 보면 지금 종사하는 분야와 관련된 전공을 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현재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 보세요.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와서 꽂히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때 그 일을 하세요. 운명처럼 사랑이 다가오듯 운명처럼 좋아하는 일이 다가오면 그걸 붙잡으면 됩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현재의 일에 충실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나는 게으르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운명이 다가올 때 그 운명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말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참 중요합니다. 저는 절대 낙담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뭔가 잘못되면 ‘내가 뭔가 잘못했겠지’하고 반성합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또, 조금 잘못되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제 가치관이죠.”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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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