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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수
붓을 잡은 연기자, 이상현 캘리그라퍼를 만나다
제 942 호    발행일 :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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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로고타이틀을 만나게 된다. 수많은 로고타이틀 중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타짜>, 드라마<해를 품은 달>, 교촌치킨의 로고타이틀은 캘리그라피로 되어 있다. 캘리그라피는 ‘손으로 그린 문자’라는 뜻으로 서예의 영어식 표현이지만, 지금은 ‘글씨에 감성을 입히는 디자인 작업’이란 새로운 뜻이 더해졌다. 이처럼 캘리그라피에 새로운 뜻을 더하고, 캘리그라피를 한국 디자인 시장에 선보인 이가 있다. 대중들에게 묵향을 맡게 해주고 싶었던 이상현 캘리그라퍼, 한국 캘리그라피 시장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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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그라피’를 한국에 정착시키다

  “초등학교 때 저는 장난기 많은 까불이여서 부모님이 강제로 서예학원을 보냈어요. 그렇게 강제로 시작한 서예가 지금의 캘리그라퍼가 됐어요”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통문화예술을 전공한 그는 젊은 서예가로 활동을 이어가던 중 문득 ‘서예를 대중예술로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예술은 그것을 계승하고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이야깃거리가 되지, 대중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예를 대중 예술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대중적인 디자인에 우리 묵향이나 글씨가 배어들게 하려고 노력했다.
  “패키지 디자인(소비자에게 상품을 알려 구매 의욕을 증가시키고, 상품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운반할 수 있게 하는 일체의 포장 디자인)에는 로고타이틀이라는 영역이 있어요. 공산품을 비롯한 영화, 드라마의 로고타이틀을 글씨를 활용해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그 시장을 두들기게 됐고, 이를 통해 서예가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길 바랐어요”
  하지만 디자인 시장에는 ‘서예’라는 말에 대한 선입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예’를 영어로 번역한 ‘캘리그라피’라는 말을 사용했다. 타이포그라피(활자 또는 활판에 의한 인쇄술을 가리키는 말로 오늘날에는 주로 글자와 관련한 디자인을 뜻함)라는 단어에 익숙했던 디자이너들은 캘리그라피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그는 캘리그라피를 글씨에 감성의 옷을 입히는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글꼴은 표정을 갖고 있어요. 즐거운 것은 정말 즐겁게, 또 그리운 것은 그립게 그리는 감성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캘리그라피라고 소개했죠. 그랬더니 디자인 시장에서 관심을 가지고 문을 열어주더라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지금의 캘리그라피가 1999년부터 시작된 겁니다”

어려움을 딛고 자신을 믿게 되다

  “우리나라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 장르를 정착시켰다고 생각을 했지만, 디자인 시장의 문은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 5년 동안은 정말 밑바닥 인생으로 살았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회사는 모두 찾아다녔어요. 주소만 들고 무작정 찾아가 ‘캘리그라피를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왔다’고 했죠”
  그러나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당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갔다.
  “제일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홍익대 근처에 있는 출판사예요. 처음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 말을 거는데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아요. 나가라고 하지도 않고 완전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더라고요. 그런데 누가 인터폰을 했는지 잠시 후 경비아저씨가 와서 끌어내더라고요. 화도 나고 오기도 생겨 다음날 또 갔어요. 당연히 또 쫓겨났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는데 끌려나가는 내 모습이 참 비참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은 쫓겨나더라도 멋있게 쫓겨나자고 다짐하고, 끌려나가며 큰소리로 외쳤어요. ‘당신들 내 얼굴 똑바로 봐. 나 이상현인데 언젠가는 당신들이 날 찾을 날이 올 테니깐 내 얼굴 기억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랬더니 사무실 사람들이 모두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그렇게 건물 밖으로 끌려 나왔는데 너무 억울하고 창피하고 길거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그렇게 대낮에 길거리에 앉아 실컷 울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저들한테 더 부끄러운 사람이 된다.’ 그래서 다시 딛고 일어섰어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그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차츰 그에게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출판사에서 그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출판사를 찾은 그는 깜짝 놀랐다. 바로 홍익대 근처의 그 출판사였기 때문이다.
  “출판사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어요. 그때 그 출판사가 맞았어요. 저는 그들에게 당당하게 난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죠. 결국은 그분들 덕분에 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죠. 그때 길거리에서 울면서 했던 생각이 틀리지 않았고, 나 자신을 믿고 흔들림 없이 한 길만 걸어오길 잘했다고 느꼈어요”

처음이라는 설렘이 지금까지 이어지다

  그와 정식으로 캘리그라피를 함께 한 첫 회사는 농심이었다. 농심의 한 이사는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보였고, 그에게 농심이 선보일 라면 신제품 프로젝트를 맡겼다. ‘봄춘’에 ‘면면’, 바로 ‘춘면’이었다. 그는 열정에 가득 차 여러 캘리그라피를 만들었지만, 농심에서는 가독성을 문제 삼아 번번이 퇴짜를 놓으며 대중이 좋아할 만한 글씨를 요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한층 발전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가 쓴 글씨는 ‘춘면’을 통해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제 글씨가 TV, 신문, 잡지에 광고로 나오는데 어디 가든 눈에 띄어서 정말 설렜어요. 그래서 큰 배낭에 춘면을 넣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씩 줬어요. 그때의 설렘이 아직도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또 그는 소설가 이병주의 장편 <바람과 구름과 비>의 표지타이틀도 작업했는데,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그의 캘리그라피는 점점 명성을 얻게 되었고 출판, 음반, 영화, 드라마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갔다. 특히 그는 여러 드라마의 타이틀 작업을 했는데, 그중 <해를 품은 달>을 가장 어려웠던 작업으로 꼽았다.
  “전통 사극은 전통을 살리면 되고 현대물은 젊은 감각으로 작업하면 되는데, 퓨전 사극은 사극도 현대물도 아니라 글씨의 방향을 잡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화선지, 붓, 먹이라는 전통적인 도구로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한 글씨를 쓰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그리고 ‘달’자의 ‘ㄹ’를 둥그러지게 해 한 나라의 훌륭한 임금을 만들기 위한 왕비의 모습을 형상화했어요. 달이 해를 떠받쳐주는 느낌으로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ㄹ에서의 마지막 획으로 만들었어요”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구글 로고를 뽑았다. 2015년 구글에서는 한글날을 축하하기 위해 24시간 동안 검색창 영문 로고를 한글 로고로 바꾼 적이 있다. 이때 선보인 구글 한글 로고는 한국의 대표 작가로 선정된 그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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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로 묵향을 전하다

  그는 일반인도 생활 속에서 묵향을 맡으며 캘리그라피를 즐기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대중 앞에서 글씨를 쓰는 드로잉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그는 보다 원활한 관객과의 교감을 위해 음악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음악도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그는 관객에 따라 그에 맞는 음악을 선택한다. 그리고 선택한 음악에 맞는 춤의 선을 연구해 드로잉 동작으로 연출한다. 지금도 그는 다양한 음악에 맞는 드로잉 동작을 연구 중이다.
  “많은 사람에게 묵향을 맡게 해주고 글 쓰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고 싶었어요. 드로잉 퍼포먼스를 하면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곳이 어딜까를 생각하다가 우연히 TV에서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봤어요. ‘바로 저기다’라는 생각이 들어 타임스퀘어의 메인 광장에서의 퍼포먼스를 추진했어요. 결국 2014년 타임스퀘어 메인 광장에서 한글로 ‘아리랑’을 쓰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어요”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 장소로 시드니 달링하버를 뽑았다. 그곳에서 그는 ‘Welcome To Dokdo in East Sea’라는 문구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퍼포먼스를 하는데 일본인들이 상당히 불편해했어요. 공연 중간에 막 중단하라고 외쳤죠. 그때 한국 교민들께서 서로 팔짱을 끼고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저를 보호하며, 끝까지 하라고 외쳐주셨어요. 그분들 덕분에 끝까지 퍼포먼스를 마칠 수 있었는데 그때 정말 많이 감동했어요”

캘리그라퍼를 꿈꾼다면

  그는 캘리그라퍼를 꿈꾸는 이에게 4가지를 당부했다.
  “첫 번째는 솔직한 작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내 것은 내 것이라 말해도, 남의 것은 남의 것이라 인정할 수 있는 솔직함이요. 정말 좋은 글씨를 보면 내 글씨와 닮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도 그 글씨는 내 글씨가 아니고, 그 작가의 글씨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 캘리그라퍼를 꿈꾼다면 자신의 간절함이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글씨를 아끼는 마음과 평생 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필요해요. 세 번째로 예술이라는 것은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도전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바심 내면 안 돼요. 실력을 쌓고 키우며 작가의 자질을 갖추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예술가는 절대 배고프지 않아요. 젊은이들은 얼마든지 알바로 생계를 꾸리면서 캘리그라퍼에 도전할 수 있어요. 제 경우는 알바 수입으로 생활비부터 작품 활동에 필요한 준비물 구입까지 가능했어요. 충분히 즐기면서 도전한다면 반드시 성공적인 캘리그라퍼가 될 수 있어요”

  그는 지금의 대학생에게 ‘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를 고민하라고 조언한다.
  “요즘 20대에게 직장은 굉장히 민감하고 가장 큰 관심사가 돼 버렸어요. 그런데 저는 직장 말고 직업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대학생들이 좀 더 먼 미래를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직장보다는 직업을 가지라는 거예요. 내가 잘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 거기에 맞는 직장은 내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거잖아요. 어떤 직장에 취업할까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조희수 기자
heesoo9803@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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