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동안 카레이서만을 꿈꾸며 카트뿐만 아니라 포뮬러(국제자동차연맹이 매년 발표하는 배기량·규격·타이어·차체 사이즈 등 경주용 차량의 규격) 경주까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강민재 카레이서, 그는 비록 천문학적인 연간출전비로 인해 유럽 진출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난해 중국 F4에서 우승하는 등 국내.외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내년 국내 무대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강민재 카레이서를 만나 그의 카레이싱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카레이서를 꿈꾼 소년, 카트에 입문하다
모터스포츠는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도 비인기 종목으로 꼽히지만, 강민재 카레이서는 카레이싱을 비교적 어릴 때부터 접했다. 그리고 그가 카레이싱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자동차를 좋아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잡지 등을 통해 카레이싱을 접했고, 관심을 두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과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 자동차 경기장에서 자동차 경기를 처음 봤는데, 그 경험이 저에겐 상당히 큰 충격이었어요. 그때까지 주로 TV를 통해 카레이싱을 접해서 저와는 거리가 먼 분야로 생각했는데, 실제 경기를 본 후 막연한 꿈에서 현실의 장래희망으로 다가온 거죠.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자동차 경기를 함께 보시던 아버지께서 ‘나도 카레이서 해볼까’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 말씀에 ‘누구나 카레이서가 될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제가 카레이서에 도전하는 자극제가 됐죠”
11살 때부터 막연히 카레이서를 꿈꾸던 그는 13살이던 어느 날 평소 즐겨보던 잡지에서 우리나라에 카트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카트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어도 운전할 수 있어 외국에서는 4~5살의 어린 나이에도 카트를 탄다. 카레이서가 되고팠던 그는 카트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다.
“저는 친척 형과 함께 우리나라에 카트를 들여왔던 회사에 찾아갔어요. 그 회사에서 클럽 가입을 권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기회를 놓쳤어요. 아쉬운 대로 저는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또 다른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 미대 입시를 준비하려 했지만, 제 마음 한편에는 항상 카트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부모님의 반대에도 카트에 대한 그의 열정은 변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그에게 학교 성적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카트를 탈 기회를 주겠다는 조건을 다셨다.
“15살 때 부모님이 학교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카트를 한 번 타게 해 주신다고 하셨고, 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어요. 카트를 타보고 나니 카트에 더 매료됐어요. 그렇게 중학교 때 카트를 총 2번 타고, 한동안 타지 못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카트 대회에 나갈 기회가 생겼어요. 당시 제가 즐겨 보던 <자동차 생활>이란 잡지에서 통권 200호 기념으로 구독자를 초대해 개최하는 대회였어요. 그 대회에서 저는 1등을 했고, 그 모습을 보신 부모님은 제가 본격적으로 카트에 입문하는 것을 허락해주셨어요. 그 후 부모님의 지원 아래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자동차 경주를 봤던 용인에 상주하고 있는 팀에 들어가 선수의 길을 걷게 됐죠”
카트에서 포뮬러까지, 그리고 해외 진출의 실패
본격적으로 카트에 입문한 그는 ▲2001년 에버랜드컵 카트 시리즈 PRD클래스 우승 ▲2002년 일본 소닉파크 시리즈 야마하클래스 우승 ▲2004년 카트빌 카트 챌린지 슈퍼A 클래스 시리즈 챔피언 등의 성적을 거두며 국내 카트 대회에서 잠재력과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어 그는 카트 레이스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큰 무대인 포뮬러에 도전했다. “2004년에는 일본 스즈카 서킷 레이싱스쿨 포뮬러 과정을 수료하고, 2006년에는 일본 포뮬러 도요타 레이싱스쿨을 수료하는 등 포뮬러를 배우기 위해 관련된 것을 찾아다녔어요. 우리나라는 외국보다 포뮬러 기반과 무대가 현저히 적어요. 그래서 저는 세계 포뮬러 무대에서 인정받는 일본에 가서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없는 것을 찾아다녔죠. 그때 어떤 선수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많이 했는데, 지금도 스스로 뿌듯함을 느껴요”
2005년에, 지금은 사라진 우리나라의 F4(포뮬러 4) 경기인 ‘태백컵 슈퍼레이스 포뮬러1800’에서 그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포뮬러 유망주로 떠오른 그는 해외 무대에 진출을 엿봤다. 하지만 다른 스포츠보다 훨씬 상업적인 요소가 강한 모터스포츠의 특성상 천문학적인 연간출전비가 필요했다.
“2010년에 매니지먼트사를 만나서 한 시즌 동안 국내 대회 레이스를 함께 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아서 최고 2등의 쾌거를 이뤘죠. 그때 제가 매니지먼트사에 ‘국내에 안주하지 말고 해외 F3로 진출해서 F1까지 가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강하게 어필했어요. 그래서 해외 진출 프로젝트가 추진됐고, 마침 조니 워커 Keep Walking Fund(각자의 꿈을 홍보해 가장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은 5명에게 1억 원씩 지원을 하는 프로젝트)에서 최종 5인에 선정돼 1억 원의 상금을 받았죠. 그 돈을 밑천으로 2011년 10월 진행된 독일 뮈케 모터스포츠 팀의 F3 테스트 주행에서 합격점을 받고, 유럽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큰 문제가 발생했어요. 시트를 배정받아 F3 유로시리즈에 참가하기 위해서 10억 원의 연간출전비가 필요하고, 팀 차원에서 2억 원은 후원이 되니 개인적으로 8억 원을 마련해 오라는 뮈케 모터스포츠 팀의 통보였어요. 스폰서가 없는 저로서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어요.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듯 제안서를 들고 스폰서를 찾아다녔고, 그런 생활이 3년 정도 계속됐지만 결국 8억 원을 구하지 못해 독일 F3 진출은 좌절됐어요. 언젠가 8억 원을 모아 유럽 진출을 할수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고, 그게 미련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돈 때문에 해외 진출이 좌절된 후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로 복귀한 그는 지난해 중국 F4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5년부터 다시 국내 팀들과 교류하며 프로 복귀를 위해 노력했어요. 그렇게 한 해에 한두 번 정도 자비와 일부 받은 후원으로 국내 경기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더니 과거 저를 알던 사람들이 다시 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느껴졌어요. 지난해 중국 F4에 나간 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선수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어요. 그 선수가 저에게 계속해서 ‘너를 사람들에게 알릴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투자를 통해 한 방을 보여주지 못하면 결국 기회는 오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게 자극이 돼서 중국 F4에 나가게 됐죠. 중국 F4도 한 경기 출전비가 2,000만 원이라 꾸준히 출전할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출전한 경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저의 잠재력과 재능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지금도 내년에 더 좋은 조건으로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여러 팀과 교류하고 있어요”
선수 생활이 그에게 준 교훈
약 20년 간의 선수 생활. 그 과정에서 그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과거엔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려고 노력했어요. 모터스포츠도 다른 스포츠처럼 경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단축이 정말 중요해요.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카트를 시작하고 2년 동안 시간 단축은커녕 정체되는 느낌이 들어서 원인을 찾기 위해 상당히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도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1년 동안 카트를 잠시 쉬고, 대학교 1학년 때 다시 카트를 타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차를 어떻게 타야 빠른지 그제야 감이 오더라고요. 그때 ‘아무리 고민해도 해답이 보이지 않던 것을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구나’하고 깨달았어요”
그는 모터스포츠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성격이 변했다고 말한다.
“어릴 적 저는 정말 내성적이어서 낯도 많이 가리고,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도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카레이싱을 하면서 스스로 홍보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 필요에 의해 스스로 성격을 변화시키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어디서 누굴 만나든 저의 인간 관계를 넓힌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강민재 카레이서가 전하는 말
강민재 카레이서는 과거 F1 진출을 꿈꿨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F1 진출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릴 적에는 F1을 최종 목표로 생각하며 달렸어요. 그런데 해외 진출이 좌절되고 금전적인 문제에 많이 부딪히다 보니 F1을 좀 더 현실적으로 볼 수 있게 됐죠. 사실 F1은 실력보다 선택받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리그라고 생각해요. 해외에서조차 이런 생각이 만연한데, 모터스포츠가 비인기 종목인 우리나라에선 F1 진출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죠. 독일이나 영국 등 유럽에서도 유명 자동차 회사들은 유망주를 아주 어릴 때부터 키워요. 그리고 그런 선수들이 미래에 F1에 출전하는 거죠. 따라서 우리나라 선수가 F1에 진출하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라고 생각해요. F1이라는 최고의 무대를 꿈꾸며 달리는 것도 좋지만,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이 오히려 카레이서로서 성공 가능성을 키운다고 생각해요”
강민재 카레이서는 카레이서를 꿈꾸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떻게 목표를 잡느냐에 따라 과정이 다 다를 거예요. 근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다는 것을 특히 유념했으면 좋겠어요. 목표를 잡는 과정에서 무조건 이상만 좇기보단 냉정하게 바라보고, 과도한 열정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우리나라도 무조건 F1 진출만 인정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형편에 맞게 선택지가 다양하므로 본인의 현실에 맞춰서 재밌게 모터스포츠를 즐기면 좋겠어요. 나아가 카레이싱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길 바랍니다”
김채완 기자
kimchaewan@cbnu.ac.kr








김채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