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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채연
마이크 앞에서 38년, 이제 청년들 앞에 서다
제 948 호    발행일 :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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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띠. 띠. 띵.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 이 슬로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38년을 이 슬로건과 함께하며 국민에게 정확하고 빠르게 소식을 전했던 사람이 있다. 1999년 12월 31일 저녁 9시, 새천년을 앞두고 3시간 중계방송을 진행하던 아나운서지만 지금은 정년 퇴임해 청년들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윤영미 아나운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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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아나운서가 꿈이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자기의 꿈을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께 무엇이 되면 좋겠냐고 물었고 교사보다 높은 것이 교수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교수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의 첫 꿈은 교수였어요”
  교수를 꿈꾸던 그의 학창시절은 여성이 전문직을 꿈꾸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의 전공을 결정할 때 교수가 될 가능성이 큰 신설학과를 지원했는데, 입학 후 보니 그와 같은 생각으로 입학한 친구들이 반 이상이었다.
  이처럼 교수를 꿈꿨던 그는 어떻게 아나운서에 지원해 정년퇴임까지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를 추억하며, 그때부터 아나운서의 계기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하는 조회에 사용할 방송 기자재가 학교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에는 그 귀한 방송 기자재가 놀고 있으니 학교가 생각해낸 것이 학생방송이었죠. 국어책을 잘 읽는다고 칭찬을 자주 들어 학생방송 아나운서에 지원해 운 좋게 제가 뽑혀서 매일 아침에 방송으로 동화를 읽어 주기 시작했어요”
  그는 당시 자신의 동화 방송을 듣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를 일찍 오게 됐다는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보람을 느꼈고, 중학교 진학 후에도 방송반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입학에 대한 부담 때문에 방송반으로 활동하지 못했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망설임 없이 방송 동아리에 가입했다.
  “대학교 방송 동아리는 중학교 방송반보다 규모나 장비의 수준이 확실히 달랐어요. 정말 재밌었고 그만큼 열심히 활동했어요. 그 덕분에 교수였던 저의 꿈이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싶은 욕구였다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방송이라는 것을 확신했어요”

신입 아나운서에서 여성 최초 KBS 인재개발원장으로

  아나운서라는 꿈을 가진 후, 그는 본격적으로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했다. 당시는 방송국이 KBS와 MBC뿐이었고, 방송사 시험은 일반 기업과 달리 정보가 많지 않았다. 필기시험 기출문제집도, 아나운서 학원도 없었고 조언을 구할만한 선배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로 있을 순 없었어요. 그래서 언론사 시험 경향을 알아보기 위해 신문사를 포함한 언론사 시험을 많이 보러 다녔었죠. 그런데 그때 시험에서 어디를 붙고 어디에 떨어졌는지는 몰라요(웃음). 방송사가 목표였기에 신문사 시험을 보러 갔지만, 합격 발표는 보지 않았거든요”
  부단한 노력 끝에 그는 1982년 KBS 아나운서 공채 10기로 입사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후 한동안은 ‘지금 시각은 00시 00분입니다. KBS’만 온종일 연습했다. 그러던 중 그는 입사 몇 달 만에 입사 동기 중 처음으로 라디오 뉴스를 하게 됐다. 그는 그때의 기억이 실수 그 이상이었다고 회상했다.
  “‘뚜-뚜-뚜-’하고 정시를 알리는 시보 직후, ‘온 에어(on-air)’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정확하게 3분 45초에 맞춰 끝내야 하는 생방송 뉴스는 고참들도 긴장하는 시간이에요. 빨간 불을 보고 시작해서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쿵덕거리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릴 정도였죠. 저는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저를 뉴스에 배당한 차장님은 신인을 너무 일찍 생방송 뉴스에 투입했다고 질책을 받았고, 제 뉴스를 들은 선배들은 그렇게 뉴스를 하다니 창피하다고 했죠. 그 뒤로 얼마간 신입사원 뉴스 배당 금지가 내려졌어요”
  그렇게 방송 신고식을 치른 후, 순탄하기만 할 것 같던 아나운서 생활은 입사 3년 차가 됐지만 순탄치 않았다. 연차가 차면 자기가 하고 싶은 방송만 골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입사 후 3년이 지나도 제가 하고 싶은 방송을 시켜주지 않았어요. 반면에 제가 하고 싶지도 않고 잘 모르는 분야의 방송이 맡겨졌죠. 이를테면 바둑판에 검은 돌, 흰 돌을 어떻게 올리는지도 모르던 제게 바둑대회 방송이 맡겨져서 사흘 동안 바둑책을 보고 바둑을 공부했었고, 갑자기 기상전문가가 하던 기상 코너를 맡아서 싫어하던 과학책에서 기상을 공부했어요. 정말 제 취향에 안 맞는,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방송을 몇 년 동안 해야 했었죠”
  그래도 그는 뭐든지 잘 해내고 싶다는 열정과 이왕 하는 일인데 몰랐던 것을 배우는 소득이라도 얻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당시 회사 도서실에서 책을 빌리면 책 뒷장에 빌렸던 사람 이름이 적힌 카드가 꽂혀 있는데 바둑, 기상, 해양 등의 관련 책 카드에 제 이름이 적힌 것을 본 사람들이 놀라곤 했어요. 그랬던 시절이 저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던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2009년 여성으로서는 KBS 역사상 처음으로 인재개발원장을 맡게 되었다.
  “KBS에는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여성 간부 숫자가 적었어요. 당시에 최초 여성 본부장이 임명되고, 여성 간부를 발굴하겠다는 의지로 인재개발원장에 여성인 저를 발탁한 것이죠. 그때까지 제가 아나운서실에서 교육업무를 많이 맡았던 것도 발탁 배경이 됐던 것 같아요”
  KBS 인재개발원은 방송국 내의 한 조직으로, 신입사원들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조직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법규와 제도 등을 익히는 곳이다. 또 프로듀서, 기자, 아나운서, 엔지니어 등 각 직군의 직원들이 입소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는 KBS 직원들이 받을 교육 과정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총괄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어요. 교육 과정을 만들고 강사를 선정하는 일이 제일 어렵지만, 연수생들의 반응이 좋으면 아주 뿌듯했어요. 좋은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자신이 배운 것을 방송 제작에 활용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방송을 보면 우리가 좋은 교육을 했다는 자긍심이 생겼어요”

청년 멘토로 제2의 인생 시작

  공채 10기 신입사원에서 아나운서실 팀장과 인재개발원장을 거치는 동안 3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2020년 1월 그는 정년퇴임을 했다. 그는 회사를 나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지난해를 안식년으로 보내며 개인적인 교육을 받고 준비를 해왔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런 윤영미 아나운서가 정년퇴임 이후 택한 일은 멘토링 자선사업이다. 그는 방법과 형식은 다르지만, KBS에서 재직할 당시부터 멘토링을 많이 했다.
  “KBS에서는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방송 진로를 알려주고 체험하게 하는 과정을 기획하고 진행했었어요. 저는 ‘대학 방송캠프’를 담당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제가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때 참여한 멘티를 한국장학재단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때 제 조언을 듣고 정확한 방향을 잡을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말해줬어요. 이 말이 제가 멘토링을 시작한 계기가 됐죠”
  퇴임 전에도 다양한 멘티를 만나고, 퇴임 후에도 멘토링 자선사업을 하는 윤영미 아나운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멘토는 무엇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동료’라고 답했다.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누군가의 실력과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사람이 코치라면, 멘토링에서 멘토는 지도나 지시가 아닌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풀어가는 동료여야 한다는 것이다.
  “멘티에게 멘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멘티 개개인에게 맞는 방향과 방법을 같이 논의하며 풀어나가려고 했어요. 이런 멘토링을 단기간에 하기는 어려우므로 멘토링으로 맺은 관계를 지속하며 서로 의지하는 동료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무실도 구한 거예요”
  윤영미 아나운서는 마지막으로 멘토링에 참여하고 싶거나 자신만의 꿈을 가진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한다.
  “혹시나 이 인터뷰 기사를 읽고 멘토링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멘티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조언하고 싶어요. 보통 멘토링에 참여하는 이유는 꿈꾸는 분야의 전문가이자 선배인 멘토에게 많은 것을 얻고자 함일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멘토의 것을 받아들일 마음과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청년들에게는 항상 플랜 B를 계획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멘토링 하면서 느꼈는데 많은 학생이 자신이 꿈꾸는 직업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한 목표에 경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머니가 커야 많이 받아들일 수 있고, 주머니가 큰 사람이 많이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박채연 기자
patty990303@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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