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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채연
세상의 모든 결핍들에 대하여
제 951 호    발행일 :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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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뿐만이 아니라 연극, 영화, 만화에서도… 아니 현실에서도, 결핍이 없는 인간이라는 게 있을까요?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히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분명 있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정말로 그렇다면, 그건 인간이 맞을까요? 다른 무언가가 인간인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저마다의 사연과 결핍을 가진 인물을 앞으로 내세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완전한 정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며 그의 작품은 끝이 난다. 지금도 독자들에게 ‘해답지가 없는 질문’을 던지며 꾸준히 소통하고 있는 구병모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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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잔에 담가둔 수건 끝자락처럼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꿈꾸게 되는 데에 있어서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있는 이들도 있지만, 제 경우에는 물잔에 끝자락을 담가둔 수건처럼 꿈이 조금씩 스며들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소설가를 꿈꿨다. 그가 처음 소설을 창작했던 것은 열두 살 때였고 인생 최초로 단편소설 공모전에 도전해본 것은 열네 살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를 꿈꾸며 걸어오는 동안 어려움은 없었을까? 지금은 여러 독립 출판 유통과 방식이 발달했지만, 당시는 등단만이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2009년 그의 데뷔작인 <위저드 베이커리>가 나오기 전까지, 15년 이상을 각종 공모전에 응모와 탈락을 반복했던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전했다.
  “15년 이상 아무런 희망이나 약속도 없이 각종 공모전에 탈락하면서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이번에도 안 되면 그만둘 거라고 매번 반복하면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 절망감은 버틴다고 버텨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가정은 가정대로 돌봐야 할 의무가 있고,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세월은 세월대로 흘렀을 뿐입니다. 이는 ‘세월이 약이다’ 같은 소리와는 다릅니다. 분명히 고통스러운 상태 그대로 시간이 제 몸을 통과해 지나갔습니다. 때문에 어떻게 부서지지 않고 통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그 시간을 복기하기가 지금도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지나간 일은 가능한 한 돌아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힘든 시간을 보내고 등단한 구병모 작가는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총 14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이러한 결과의 시작점엔 그의 데뷔작인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다. 그에게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저는 신화·전설·민담에서 모티프를 얻는 것을 즐깁니다. 헨젤과 그레텔이 방문한 과자로 만든 집이 이 소설의 주요 모티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소설에 극적인 창작 동기가 따로 있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데뷔해 사랑받은 게 아니라 그전에 오랫동안 공모전 실패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서사와 소재와 주제로 여러 가지 쓰기를 실험해 보는 중에 나온 스토리 가운데 한 편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소설은 해답지가 딸려 있지 않은 질문

  이렇게 응모와 탈락을 반복하던 그에게 ‘등단’과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갖게 해준 대표작인 <위저드 베이커리>는 2020년 기준 40만 부가 팔렸다. 그렇다면 이후 글을 쓰며 슬럼프가 온 적은 없었을까? 그는 슬럼프란 극복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쓰기와 무관하게 평소 성격이 좋았던 일들을 되새기고 만족스러워하는 것보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거나 나쁜 일들에 집착합니다. 또한, 슬럼프는 극복되는 것이 아니고 불안과 의심과 지연과 미정, 끝없는 유예 속에서 끝까지 안고 가야 하므로 현재도 공존 중입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상처를 가진 소설의 주인공 ‘나’가 계모로부터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아버지한테도 외면당하며 살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동네 빵집으로 도망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아 성폭행이 등장하는 데다 현실을 너무 잔혹하게 묘사해 청소년소설로는 맞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성인 독자층에게 인기가 많고 기존 청소년문학의 틀을 깬 색다른 형식이라는 찬사를 함께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평가가 결국 편견이라고 말한다.
  “청소년문학이지만 성인도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청소년문학에 대한 편견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각자 개인의 경험이 다르더라도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성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으며, 청소년은 성인 문학을 본 경험과 독서 이력의 차이로 인해 별반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청소년을 이미 살아냈기 때문에 당연히 언제든지 기회가 닿고 마음이 열려 있으면 청소년문학의 정서에 공감 또는 이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작가로서의 신념과 이상향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세월에 따라 바뀌기도 하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 손바닥처럼 뒤집히는 수도 있으니, 알고 보면 신념이란 것 자체가 그렇게 전 인생에 걸쳐져 있는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 대부분 사람은 자기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현재의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이상적인 표상을 상정해두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제게는 약간 초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처럼 그는 사실 편견일지 모르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지는 통념을 부순다. 기자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엔딩이 두 개인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기자는 그 답변이 결국 그가 생각하는 소설에 대한 정의라고 생각했다.
  “엔딩이 두 개라는 것은 ‘Y의 경우’와 ‘N의 경우’로 표기돼있고 그래서 두 개라고 믿는, 이른바 확증 편향적 사고에 따른 착각일 수 있습니다. 엔딩이 정말 두 개일까요? 사실은 둘이면서 하나이거나, 하나이면서 둘이거나, 그 어느 쪽도 아니거나 아니면 하나도 없거나. 그렇지 않을까요? 불교의 공안(公案)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엔딩이 두 개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독자님들에게 질문을 남겨둔 것입니다. 해답지가 딸려 있지 않은 질문을”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2009년 이후 <아가미>, <피그말리온 아이들> 등 작품에서 그는 어둡고 답답하고 잔혹한 세상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뿌리는 주변에 있다고 말한다.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있는 소설을 각별히 선호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독자님들이 물어보실 적에 영감이란 무언가 특별하고 남다른 저 멀리 어딘가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엇을’ 쓰는가보다는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영감을 얻는 장소나 조건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 순간에 자신이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리거나, 필요에 의해 작성한 설계도를 따라가거나 파편적인 메모들을 엮거나 합니다. 장편소설 <파과>는 냉장고 속 과일 칸에 방치되어 있던 유통기한이 지난 복숭아 한 개에서 시작됐습니다”
  이처럼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현실과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섞여 있는 게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품의 소재는 의도하고 쓴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런 내용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지 독자들에게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소설에서 메시지를 찾아내려 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제가 신문, 잡지나 혹은 청중 앞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10년 이상 반복해서 말해온 것이 있다면, 소설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이것이 소설의 메시지다’라고 생각된 무언가를 발견하셨더라도 그것을 작가에게 확인받는 것은 결코 권장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려는 순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져 버립니다. 작가가 직접 말한 말 한마디가 따로 떼어져서 경전처럼 퍼져나가고, 그게 정답인 것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나는 작품이 많다. 이에 구병모 작가는 특별한 의도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각 소설의 최선인 결말을 부여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고, 책을 덮어도 ‘우리’는 계속 이 ‘현실’을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인생에서 한 번도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나요?”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거야.”
-<위저드 베이커리> 中

  마지막으로 구병모 작가는 자신만의 꿈을 가졌지만 현실에 지쳐 있는 청춘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막막하고 고민이 많은 상태에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몇 마디 듣기 좋은 덕담을 보태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가를 준비했을 때 ‘초조해하지 말고 마음을 편안히 먹어라’ 같은 충고들이 분명 좋은 마음으로 해주는 얘기지만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이 같은 고민은 자기 안에서 심지가 다 타버릴 때까지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꿈을 이루는 것, 그것이 뭐가 됐든 생활을 할 수 있는 수단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한때는 자신의 생활과 건강을 돌보지 않고 꿈에만 올인하는 것이 순수한 열정이자 바람직한 자세인 것처럼 인식되던 날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딜 수 있더라도 그 꿈을 향해 오래 걸을 수 있는 균형을 잘 잡아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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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연 기자
patty990303@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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