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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채연
나의 취향이 오늘도 나를 나답게 만들 수 있게
제 957 호    발행일 : 2021.05.03 
김민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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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름 같지만 엄연히 여자. 카피 한 줄 못 외우지만 엄연히 카피라이터. 회의 시간의 치밀한 필기를 바탕으로 <우리 회의나 할까?>를 냈고, 평소의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책을, 틈틈이 떠난 여행에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모든 요일의 여행>을 썼다. 덕분에 종종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본업은 여전히 광고이며 일룸 ‘가구를 만듭니다’,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SK브로드 밴드 ‘See the Unseen’, T ‘생각대로 T’ 등의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것은 한 인터넷 서점에 게재된 김민철 작가 소개글이다. 솔직하면서도 모호한 ‘자신의 취향’을 통해 ‘자신’을 소개하는 김민철 작가의 작품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지금도 ‘낮과 밤’, 그 경계에서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는 김민철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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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대학원생에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가 되기까지

  “언제부터 글을 쓰고 싶었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고등학교 동창 중에 제가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고 증언하는 친구가 있긴 해요(웃음). 제 기억은 대학생 때부터였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블로그 같은 곳에 글을 쓰게 됐어요. 그렇게 막연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문장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자신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기까지. 김민철 작가의 인생은 ‘글’과 매우 밀접하다. 이젠 작가 혹은 카피라이터가 아닌 그를 상상하기 힘들지만, 사실 대학 시절엔 모범생, 이후엔 평범한 회사원이기도 했다.
  “학생 때 정말 모범생이었어요. 그래서 학과 공부도 열심히 했고, 자연스럽게 철학과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무심코 4학년이 돼서 이렇게 대학원을 가게 되면 나는 영영 회사원으로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4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어요. 당시엔 회사원 경험 몇 년 하다가 대학원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네요(웃음)”
  하지만 현재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라기엔 국내 유명 광고회사인 ‘TBWA’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함으로 일하고 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실패와 좌절도 겪었다.
  “4학년 여름방학은 ‘그래, 이제 취직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난 뭘 잘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으로 끝났던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예술 분야, 특히 매체에 빨리 적응하고 반응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책도 많이 읽었고 글, 음악, 미술, 영상 분야에도 다 조금씩 감각이 있다고 생각해 이 모든 특징을 다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가지자고 생각했죠. 결론은 카피라이터였어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카피라이터를 뽑는 회사가 정말 없어요. 광고회사에 취직할 순 있어도 카피라이터는 따로 뽑지 않는 직종이죠. 수십 군데 떨어지고 결국 광고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TBWA’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그에게 광고란

  “광고는 문제 해결이에요. 복잡한 수학 문제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누군가의 풀이 식이라 말할 수도 있고요. 광고에서 문제는 항상 달라요. 상품의 매출 동결이 문제일 수도 있고 물건은 잘 팔리지만 브랜드 이미지가 없는 것이 문제일 수 있어요. 문제가 항상 다르니까 풀이도 달라지는 거죠. 다만 ‘얼마나 예술적인가’나 ‘얼마나 감동적인가’보단, ‘이 문제를 얼마나 독창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 거죠”
  항상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고 독창적인 해법을 고안해야 하는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지 17년이 됐다. 오랜 기간 카피를 쓰고 있는 그는 아직도 카피를 쓰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정말 매번, 시간이 지나도 어려운 건 똑같아요. 설득해야 하는 상대가 계속 달라지니까, 어떤 공식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수학에서도 확률과 통계나 미적분처럼 닥친 문제가 다를 때마다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틈틈이 아이디어 근육이 굳지 않도록 책을 읽고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제가 쓴 카피 중에 ‘진심이 짓는다’라고 있어요. 그 한 문장을 쓰는 데에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진심’이라는 단어에 도착하기까지는 2달이 걸렸죠. 2달 동안 한 회사를 공부했어요. 카피를 작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쉬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그는 아직 광고회사에 남아있다. 매번 다른 문제를 직면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광고회사에서 17년간 일하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사람이 어떻게 항상 최상의 결과만 낼 수 있겠어요. 어려운 만큼 슬럼프도 매번 와요. 글이 안 써지는 것도 쓰면서 해결해요. 그때의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하는 거죠. 마감이 있고 옆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이 있으니까요. 광고 일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많은 자극과 위안을 받아요. 동료와 함께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부터 견고한 건물까지 세운 후 누군가가 사줬을 때, 이것이 우리 생각대로 정말 세상에 나왔을 때, 그리고 대중들에게 반응이 오고 효과가 있었을 때, 그 성취감은 정말 대단해요”

낮과 밤의 경계에 서기까지

  “작가로서의 성취감은 카피라이터로서 얻는 성취감과는 달라요. 작가가 되고 회사원이 아닌 김민철의 목소리를 가지게 돼서 좋았어요. 그리고 내가 계속해서 쓰던 글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구나,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걸 느꼈죠. 무엇보다 작가로서 내가 쓴 노력을 누군가 좋아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됐어요”
  광고 카피는 작가 개인의 영역이 아니지만, 집필을 위한 글쓰기는 오롯이 그의 만족을 위한, 그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됐다.
  “작문과 카피라이팅은 완전히 다른 일이에요. 광고는 ‘예술’이 아니라 광고주가 현재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인 일’이잖아요. 그래서 카피를 쓸 때는 철저하게 나의 취향을 배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결국, 광고에서의 글쓰기는 제 자아와는 상관없이 잘 해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낮에도 밤에도 그는 공감에 가까운 글들을 자주 내놓는다. 그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먼저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을 겪거나 마음에 변화가 생겼을 때 ‘이걸 글로 표현하면 뭐가 되는 거지’라는 생각에 기록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쓰는 게 아니라 그때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까지 써요. 그리고 계속 나한테 되물어 보면서 기록하죠. 일기는 누군가가 보지 않음을 전제하잖아요. 그렇게 솔직한 내 마음을 대면해요. 그 글이 나중에 책으로 나올 때 내가 무슨 생각을 말하고 싶었는지 명확해지니까, 남들도 공감했던 것 같아요. 이는 결국 노하우라기보단 꾸준히 해온 결과라 생각해요”
  그에게 광고 카피와 집필은 낮과 밤, ‘하루’였다.
  “가끔 하는 말이 있어요. 광고회사에 다니며 카피라이터로서 쓰는 글은 낮의 글이고, 작가로서 쓰는 글은 밤의 글이라고요. 그렇다고 작가로서 쓰는 글이 어둡거나 서정적이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카피라이터로서 쓰는 글보단 좀 더 모호하고, ‘나’라는 사람에 더 맞닿아 있어요. 광고에서 카피는 그 카피를 통해 원하는 결과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징하니까요. 아무래도 낮의 세계에 오래 있다 보니 밤의 세계가 그리워서 계속 글을 썼고, 덕분에 그 글들이 책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내 취향을 기준점으로 삼아 하루를 꾸려나가기 위해

  카피라이터라는 본업을 유지한 채 벌써 8권의 책을 낸 그는 어떤 선배이자 작가가 되고 싶을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은 딱히 없어요. 제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상적이었던 선배도 없었어요. 어떤 사람이든 다 완벽하지만은 않으니까요.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저의 꿈은 잘 늙어가는 거였어요. 여전히 그 꿈은 변함이 없지만, 따로 잘 늙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잘 사는 것 말고는.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쌓여서 나란 사람을 만드는 거니까요. 그래서 좋은 사람이 돼서 잘 늙어가기 위해 계속 이것저것 해보고 글을 쓰고 있어요”
  ‘나에겐 그 취향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유행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 취향을 기준점으로 삼아 하루를 꾸려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식량으로 삼아 나의 취향은 오늘도 나를 나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TBWA의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인 김민철 작가의 작품인 <하루의 취향> 속 한 구절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취향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 그리고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확신하는 것이 힘들다. 나의 취향을 지키고자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시선, 그리고 불안감이 따라온다. 이에 대해 김민철 작가는 취향이란 그런 게 아니라고 답했다.
  “이 질문의 본질을 잘 들여다보면 나라는 사람은 없잖아요. ‘남들이 이건 아니라던데?’, ‘남들이 나한테 묻던데?’, 하지만 취향은 그런 게 아니에요. 시간과 실패, 성공과 고민이 쌓여서 얻어지는 것이 취향이에요. ‘아 나는 이런 걸 좋아하네, 나는 이런 게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런 경험이 쌓이고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게 좋다는 확신이 생기는 게 취향이에요. 그러니까 20대엔 모르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고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고등학생 땐 이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성인이 되고 여러 일을 하면서 찾아가는 것이 취향인 거죠”

  마지막으로, 김민철 작가는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고 있는 불안한 20대의 ‘우리’에게 응원의 말을 남겼다.
  “사실 저는 20대로 돌아가라면 너무 싫어요. 날마다 울고, 하루하루가 힘들고, 뭘 해야 할지 모를 불안한 기간이 꽤 길었거든요. 나도 열심히 살았지만, 근사한 자격증이나 인턴 같은 게 아니면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오랜 시간 좌절했어요. 그래서 20대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러나 20대의 실패와 좌절 후에 깨달은 것은, 그런데도 내가 그 시간을 잘 보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점이에요. 그래서 저는 ‘내가 나를 믿어주자’라고 결심했어요. 내가 열심히 산 것을 지켜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럼 나라도 믿어주자고 생각하면서 힘을 냈어요. 그 이후 작은 회사에 다녔을 때도 야근하면서 나는 여기가 끝이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 버텼죠. 그래서 여러분께 우선 자신을 먼저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물론 본인을 믿기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변화도 없겠죠. 그래도 끝없이 뭐라도 하면서 본인은 뭘 잘하는 사람인지 찾아봐야 알 수 있어요. 해보고, 믿어보고 이 시기를 해쳐 나가보자고 전하고 싶어요”


박채연 기자
patty990303@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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