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에 옥수수 판매 글을 올렸는데 주문이 쏟아졌어요. 3시간 만에 4,000개가 완판됐죠. 이 정도면 SNS도 농사의 일부로 봐야겠죠” SNS에 하루 한 건씩 ‘청춘 송농부의 전원일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작물 재배 과정을 알리는 젊은 농부가 있다.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너래안(너와 내가 안심하는 농산물)’의 대표이자 청년 농부인 송주희 씨가 그 주인공이다. 스마트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젊은 농부 송주희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부터 농부가 제 꿈은 아니었어요
25살에 농사를 시작해 8년 동안 ‘너래안’의 대표로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오고 있는 송주희 대표도 처음부터 농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요즘도 많은 청년이 취업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데요. 저 역시 그 당시 하루하루 취업할 수 있을까. 뭐하면서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취업준비생이었어요. 내 꿈이 무엇인지도 놓치고 살았고, 자존감도 한없이 낮아진 상태로 막연히 경찰공무원 준비를 했었어요. 그렇게 공부를 하던 중에 어머니가 사고로 다치시면서 간호를 하기 위해 강원도 화천으로 내려왔고, 시골에서 지내다 보니 농업 현실의 문제점과 해결 방법, 또 한편으로는 비전이 보이더라고요. 사실은 공부가 하기 싫어서 관심을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기회에 도피성으로 자연스럽게 농촌, 농업, 창업에 관심이 생겨 농사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젊은 농부가 된 송주희 대표. 그러나 25살의 나이에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 모두에게 낯설어서였을까, 그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주변의 반응이 아주 극명하게 갈렸어요. 젊은 나이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지 힘든 일에 발 담그는 이유가 뭐냐는 말도 많이 듣기도 했지만, 20대가 농사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멋지다’라고 칭찬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이런 칭찬들이 지금의 ‘너래안’을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저 스스로도 잠수를 탔어요. 농부라는 직업을 가진 것에 스스로가 주변의 반응을 의식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뜻 농사를 짓는다고 말을 못하겠어서 1년 가까이 조용히 일만 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친구들이 알고 나니 다들 깜짝 놀랐지만 대부분 응원해줬어요”
농사를 짓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가장 크고 두꺼운 벽이었던 그였다. 그러나 농사에 대한 그의 결심은 굳건했고 오히려 ‘편견’에 맞서자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제가 올해로 농부가 된 지 8년 차가 됐는데요. 지금이야 청년 농부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당시에는 젊은 청년이 시골에 들어와 있다, 게다가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은 취업에 실패해서, 본인의 능력이 부족해서 농부가 됐다는 식의 편견이 너무 컸어요. 특히 저는 여자다 보니 ‘무슨 여자애가 농사를 지어?’, ‘얼마나 힘든 것인 줄은 알고 하겠다는 거냐?’, ‘시집이나 가라’ 등등이 저만 보면 하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자극을 받으니까 더 맞서게 되고, 성공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고 보세요, 제가 농부로서 무언가 일을 해낼 거예요’라고 몇 번이나 각오하는 계기가 됐죠”
농업회사법인 ‘너래안’의 대표가 되기까지
어머니의 사고로 시골에 오래 머무르게 된 송주희 대표는 농사를 가까이서 지켜보게 됐고, 이 과정에서 창업 아이템을 발견했다. 그것은 농사를 짓는 20대인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가 농촌에서 비전을 발견했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사는 동네는 20~30대 청년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어요. 있다 해도 영농에 종사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어르신이 농사를 지으셨어요. 그래서 판로가 도매시장으로 출하하는 방법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도매시장에서는 경매를 통해 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생산자분들이 아무리 열심히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내도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질 좋은 농산물을 소비자와 직거래하면 어떨까. 생산자는 직거래를 통해 도매시장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는 밥상에 올라가는 농산물을 누가 어떻게 키웠는지 알 수 있으니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모두에게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가 생산자이면서 판매자를 하면 어떨까 더 나아가서 가공 상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창업을 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송주희 대표는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가 운영하는 ‘너래안’은 어떤 곳일까.
“저는 명확히 제 직업을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멀티 플레이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농사를 짓다가, 공장에 출근해서 가공 상품을 만들어요. 고객 응대도 대표인 제가 직접하고 있어요. 또 요즘은 농업고등학교에서 강의도 해요. 이런 저의 일상을 나누는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고, 지역 청년들과 네트워크 모임도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저를 ‘너래안’의 대표라고 불러요. ‘너래안’은 우리 지역인 강원도 화천군의 옛 골짜기 이름에서 따왔는데요, 여기에 ‘너와 내가 안심하는 우리 농산물’이라는 의미를 붙여 브랜딩을 하게 됐어요. 제가 직접 농사지은 상품들뿐만 아니라 화천 관내에 있는 농부님들이 재배한 들깨, 참깨, 콩 종류들을 수매해 가공 판매하고 있어요”
시작은 다른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송주희 농부에게 풍년만큼이나 기쁨을 주는 것이 지금의 ‘너래안’이다.
“창업하면서 뜻깊었던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게 가장 뿌듯한 것 같아요. 나비효과라는 걸 몸소 느끼게 해줬죠. 주변에 농사 짓는 친구들이 ‘누나 덕분에 청년 농업인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과거에 비하면 농업인에 대한 인식 역시 많이 바뀐 것 같아요’라고들 말해주더라고요. 그럴 때 되게 뿌듯해요. 그리고 제가 처음 농사를 시작하면서 사회적인 편견에 마주할 때마다 자극을 받고 ‘두고 보세요’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잖아요. 이제는 사업도 많이 확장했고 마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다 보니 관내에 계신 어르신들이 저를 인정해주세요. 처음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목표를 하나하나 이뤄가는 저의 모습에 스스로 자부심도 느껴요. 농부로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에요”
1차 산업인 ‘농업’과 3차 산업 ‘SNS’를 결합하다
송주희 대표는 고향으로 귀농한 후 줄곧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과 농작물 재배 정보를 공유해 왔다. 들깨 파종과 수확, 기름을 짜고 포장하는 전 과정을 수개월에 걸쳐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이를 지켜본 고객들은 그가 재배한 농산물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이러한 믿음은 곧 판매로 이어졌다. 직접 짠 들기름과 참기름에 ‘너래안’이란 브랜드 이름까지 붙인 그는 귀농 3년 차인 2016년에 8억 원의 연 매출을 올렸고, 지금은 농업 벤처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SNS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농사를 시작한 2014년도만 해도 SNS에서 청년 농부를 찾아보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저는 당시 시골에 와서 생활하며 가장 힘들었던 게 ‘외로움’이었고 소통의 창구가 필요했어요. 속을 터놓을 또래가 없다 보니 영농일기를 쓴다고 생각하고 블로그랑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영농일기는 제가 나태해지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죠. 농사라는 일이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성과가 바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니 게을러질 수 있거든요. 이 기록이 쌓이게 되니 저만의 농사 노하우 같은 것들도 생겨난 것 같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점점 좋은 반응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어르신들은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한다’라며 응원해주셨고, 젊은 친구들도 ‘또래 같은데 농사를 짓네’하고 신기해하는 분이 많았고요. 그렇게 청년 농부라는 키워드를 알리게 됐고, 자연스레 농사와 SNS를 접목하게 됐죠. 덕분에 제가 재배하는 농작물에 대한 홍보도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송주희 대표는 농사, SNS 운용, 농산물 가공.판매를 모두 직접 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여기에 농사의 일상을 담은 ‘농사일기’ 콘텐츠를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 ‘화천부부’를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그 누구보다도 알차게 채워나가고 있는 그의 다음 목표가 궁금해졌다.
“제가 처음 ‘너래안’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이곳을 ‘어르신들을 위한 소일거리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어르신들은 국가가 마련한 훌륭한 복지 혜택을 받으시고, 모든 일은 청년들이 해나가자는 것으로요. 젊은 세대가 시골에 남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일자리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곳에서만큼은 젊은 사람들이 와서 자유롭게 일하고 정당한 급여를 받고, 여기서 온전히 정착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훗날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들이 독립해서 또 다른 농장이나 농업 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멘토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귀농을 생각하는 새내기 농부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했다.
“언론을 통해 귀농.귀촌에 관해 접한 후,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언론에 나오는 좋은 점만 생각하고 섣불리 귀농을 결정하는 건 위험해요. 두루뭉술하게 ‘귀농할래’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어떤 사업을 꾸려나갈지 장기 계획을 세우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해요. 저는 처음 창업을 시작하면서 3~4년간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네트워크 모임에 참여해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면서 여러 멘토와 동료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귀촌, 귀농 사례, 성공한 사례뿐만 아니라 실패한 사례도 많이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또한, 농사란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기도 하고, 본인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연이 도와줘야 하는 일이잖아요. 1년간은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에 초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긴 호흡을 갖고 장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배은영 기자
baeobabe@chungbuk.ac.kr








배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