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종, 성별, 국적, 거주지, 나이 등 분류 기준은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분류 기준 중에는 차별을 떠올리게 하는 기준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장애와 재산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여러 면에서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차별이 존재한다. 이번 호에서 만난 ‘김형수’ 인권운동가는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으로 활동하며 차별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힘쓰고 있다. 자신도 목발을 사용해야 하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그는 1995년 특수교육 대상자 특별 전형 1호로 대학에 진학해 지금도 대학과 연을 맺고 아픈 청춘들을 지원하고 있다.
1.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현재 활동하고 계신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와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는 대학 진학을 희망하거나 이미 다니고 있는 장애 학생들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사실은 장애와 비장애 학생들을 구별하지 않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진학 혹은 취업 고민부터 연인한테 차였다는 사소한 고민까지 저희가 지원, 상담, 격려해 드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학 생활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인데, 대학 시절 이미 방황을 경험했던 선배들을 위로와 격려, 도움이 필요한 청춘들에게 연결해주는 일을 해요. 또한,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인권 교육도 하고, 영화나 연극, 광고 등의 미디어에서 장애인분들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잘 묘사하고 있는지를 리터러시하는 일도 합니다.
2. 인권 강의와 인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시작이 거창했던 건 아닙니다. 제 문제였으니까요.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장애인 화장실이 딱 한 군데여서 사실은, 우스갯소리로 오줌통을 안고 다니고 싶은 욕망까지 들었어요. 또 보행 여건이 좋지 못해 항상 수업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늦었어요.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저도 다른 학생처럼 제대로 대학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비장애인들이 왜 장애인 인권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느냐고 비판하며 싸웠어요. 그러다가 인권을 침해받는 것이 장애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인권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나름 공부를 했고, 이를 계기로 인권 활동을 시작했어요. 결국에는 사회 여러 가지 인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애인의 인권보장도 없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 차별과 혐오를 받고 있다면 언제든지 나도 그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3. 인권에 대한 강의에서 인권이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는 것 내지는 싫어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씀하셨는데 인권에 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굳이 잘못됐다기보다는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장애인 인권을 해방하기 위해서 장애인을 사랑해 주겠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예요. 사랑하면 연애를 해야죠. 사랑한다는 말속에 ‘나는 잘났고 너는 못났다’라는 생각이 들어 있어서 불편한 것 같아요. 그 말은 우리의 감정과 우월감을 감추는 언어 표현이기 때문에 인권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겁니다. 차라리 장애인을 제대로 미워하고, 제대로 싫어하는 게 인권이에요. 적어도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거잖아요. 다시 말해 인권은 사랑으로 포장된 동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예요. 그러니 동정해서가 아니라 미워해도 지켜야 하는 겁니다.
4.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서로의 인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궁금해요.
장애 인권에 대해 ‘아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걸 지식으로서 이해한다고 생각하시면 좀 딜레마에 빠집니다. 공부하고 아는 건 인권과 전혀 관계가 없어요. 인권은 예체능 과목 같아요. 실천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인권의 문제를 ‘인식 개선’, ‘지식’ 같은 단어로 대신하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차별하는 방법도 많이 알게 되거든요. 그리고 장애를 공부하면 장애가 좋아질까요. ‘될 수 있으면 장애인 되지 말아야지’ 이런 마음이 들까요. 당연히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인권의 문제를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경험과 접촉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약 하이힐을 신은 비장애인을 만나는데 전동 휠체어 점검을 못 했어요. 그래도 저는 비장애인에게 밀어달라고 할 수가 없어요. 하이힐 신고 걷는 게 너무 아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걸어본 적이 없는 장애인은 비장애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걷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라요. 서로 가진 몸이 다르고, 경험이 달라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문제죠.
이런 문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만 생기지 않아요. 장애인 사이에서도 같은 문제가 생겨요. 비장애인였다가 중도에 장애인이 되신 분과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는 분은 사람에 대한 이해도와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또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서로의 필요가 다르죠. 예를 들어 저처럼 보행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타시는 분은 계단이나 턱이 장애물이죠. 하지만 시각장애인한테는 반드시 점자블록이 있는 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내 인권이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나? 나를 위한 조건들이 다른 사람을 위한 조건에 어긋나지 않나?’ 늘 살피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답을 추구하는 건 아니고요. 반성을 한번 해보자는 거예요. 그게 존중의 가장 첫 번째 태도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이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모두 편하게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5. 현재 대학 내 장애 인권은 잘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라면 대학 내 장애 인권이 더 잘 보장받게 하기 위한 장치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리적 측면이나 인프라 측면에서는 과거에 비해 훨씬 나아진 측면이 있죠. 그런데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경사로도 만들어지고, 관련법도 강화됐고, 지원 인력도 많고, 지원센터도 많아졌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어울려 살고 있 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쉬워요. 또 장애인에 대한 시설 개선이 보여주기식으로 이뤄지고 영속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예요. 궁극적으로는 장애 학생을 위한 지원을 투자가 아닌 복지 서비스 정도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제도적인 인권보장이 중요하다는 강의를 많이 하셨는데,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제도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안전망이라는 거죠. 비장애 학생들이 내가 장애인이 되어도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신뢰요. 이러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비굴해지지 않아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도라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육아 휴직을 사용하려면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한 사회였다면 지금은 당연히 이뤄지잖아요. 그렇기에 합리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7. 장애인 인권에 대한 강의와 인권 운동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제 장애에 대한 지지를 받은 경험이 가장 뜻깊고 소중한 것 같아요. 하루는 제 동기가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가는 저를 앞지르지 않고 함께 지각하는 거예요. 수업에 늦어도 뛰지 않고 훌쩍거리며 제 뒤를 걷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제가 너무 힘들어 보이고 지각한 게 너무 안타까워서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이 장애에 대해 마음 아파하죠. 그렇지만 그 동기의 마음과 안타까움은 제가 장애인이어서 안타까운 게 아니었어요. 자신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동기인데 왜 저 친구는 자신보다 힘들게 강의실을 가고, 자기 잘못이 아닌데 왜 지각했는가에 대해 분노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보통 제 차별에 대해 함께 분노하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8.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한 사회 운동을 거름 삼아 정치인이 돼 사회를 변화시킨다거나 권력을 갖는다거나 하는 큰 꿈도 의미 있지만, 저는 함께 밥 먹는 식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어요. 제 조카가 7살인데 처음에는 ‘삼촌하고 안 놀래’, ‘장애인 싫어’ 막 이런 분위기였어요. 그래도 제가 끓여주는 라면은 잘 먹더라고요. 그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차별받지 않는구나. 일단 뭔가를 장애인들한테 얻어 먹어본 경험을 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유치원 원아들은 어리기 때문에 장애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잘 몰라요. 설명 대신 맛있는 음식을 해줬더니 오히려 효과가 좋았어요. ‘장애인 선생님이 맛있는 떡볶이를 해주는데 우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장애인 선생님이 못 오잖아. 그럼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야겠다’ 이렇게 생각이 이어진 거죠.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차별은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마음속에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시각으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우리도 자신의 권리가 타인의 자리를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때다. 물론 어려운 시도겠지만, 언제까지나 동정의 말로 차별을 포장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와 생각을 지킬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장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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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