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개월을 해야 겨우 끝낼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단순 반복 업무를 받는다면 어떨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현실에 순응해 그 지루한 일을 참고 견디며 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 반복적이고 지루한 업무에 매달리지 않고, 개선 방법을 고민해 직접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6개월 걸리던 일을 단 30분 만에 끝낸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을 바꾼 카이스트 공익’, ‘코딩하는 공익’이라고 불리며 화제를 모은 반병현 씨가 그 주인공이다. 대한민국을 바꾼 공익으로 유명세를 치르던 그는 현재 스타트업 기업인 ‘상상텃밭’의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재직하며 농업 분야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나와 내 일에 진심인 사람
그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진학해 바이오 및 뇌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그지만, 처음부터 이과를 지망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그의 목표는 ‘경북대 영어교육과’였다.
“원래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해서, 경북대 영어교육과를 지망했었어요. 그런데 고1 여름방학 때 문득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 이과로 전향하게 됐고, 기존에 다니던 학원도 다 그만뒀죠. 그러다 고1 겨울방학 때, 마침 카이스트에 대해 알게 됐고, 그곳에서 온라인 영재교육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온라인 영재교육을 받으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는데, 당시 영재교육에 참여했던 카이스트 조교님들 대부분이 일반고를 조기 졸업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 번 도전해봤는데 합격한 거예요”
아직 20대 후반인 그에게 굴곡진 삶은 없었지만, 남들보다 열심히 사는 치열함은 있었다.
“인생의 방향이 갑작스럽게 달라지는 사건, 흔히 ‘터닝포인트’라고 하는 일을 겪은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오며 쌓아 올린 것들이 어느 순간 긍정적인 시너지로 작용해서 폭발적인 화학작용을 일으켜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가진 모든 재능을 알아내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내가 어느 분야의 일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해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또 그 한계를 뛰어넘는 데 소진했어요. 그래서 제 인생의 모토는 ‘낭비 없는 삶’이에요. 제가 가진 재능과 시간을 단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고 오롯이 저를 위해 사용하는 데에 큰 행복을 느껴요. 나를 위한 투자는 마치 적금처럼 이자가 따라붙습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일찍, 조금이라도 더 많이 노력하고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피곤한 성격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쉴 때는 또 열심히 쉬는 편이에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그에게도 인생 롤모델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인생 롤모델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굳이 말하자면 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 제가 바라는 미래의 제 모습이 제 롤모델이라 할 수 있겠네요”
대한민국을 바꾼 공익
‘반병현’이란 이름이 가장 화제가 되었던 때는 지난 2018년, 그가 고용노동부 안동지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그는 상사로부터 3,900개가 넘는 등기우편의 13자리 등기번호를 우체국 홈페이지에 하나하나 입력한 뒤 전부 인쇄하라는 단순 반복 업무, 속칭 ‘노가다’ 업무를 지시받는다. 그가 아니었다면 6개월은 족히 걸릴 업무량이었다.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AI)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였기에, 그는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단 30분 만에 지시된 일을 해냈다. 그리고 그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크롤러를 이용해 우체국 등기우편을 자동으로 정리해 보자’라는 제목으로 올렸는데, 이것이 온라인에 퍼져나가면서, 그는 삽시간에 ‘대한민국을 바꾼 카이스트 대학원생 공익’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유명인이 됐다.
“공익 근무를 하며 너무 심심해서 복무 기간 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렸는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유명해졌어요. 유명인으로서 공익 근무를 하다 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일개 사회복무요원이 국가 전산망의 허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는 게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므로 저를 징계하겠다는 병무청의 전화를 받기도 했어요. 덕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삭제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제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높은 분들이 불러 자문하기도 하고, 4급 공무원 수백 명 앞에서 공무원을 비판하는 강의를 하고 박수를 받기도 했어요. 특히 행정안전부와 관련된 일에 협조를 많이 했었는데, 전역 무렵에 행정안전부 장관님이 표창장을 주셨어요. 그나마 말년은 주차장 관리하는 평범한 공익으로 보냈어요. 돌아보니 재밌게 국방 의무를 수행했네요”
공익근무요원 소집 해제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당시 사건이 회자된다. 그도 그럴 것이 공익근무요원 한 명이 던진 충격이 대한민국 행정안전부의 업무 자동화 시스템 도입이라는 나비효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농업의 접목, 상상텃밭
현재 그는 스타트업 기업인 ‘상상텃밭’의 CTO로 일하고 있다. ‘상상텃밭’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한 첨단 기술을 적용해 농업 분야의 오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가장 진보한 기술로 가장 오래된 산업에 혁신을 일으키자는 취지로 만든 기업이다. 그는 ‘상상텃밭’에 참여한 이유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율주행 같은 다른 인공지능(AI) 분야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구와 사업을 병행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뜻이지요. 반면 농업 분야는 현재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국내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농업 분야를 택한 이유입니다. 사람이 농업을 제대로 배우려면 수십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인공지능(AI)은 다릅니다. 인공지능(AI)은 농부가 수십 년 동안 익힌 노하우를 채 5분도 안돼 익힐 수 있습니다. 우리 ‘상상텃밭’은 인간이 더욱 가치 있는 곳에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시간과 기회를 절약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반병현 CTO의 역량 때문인지 ‘상상텃밭’의 주요 특허 분야는 다른 스마트팜 기업들과는 다르다. 스마트팜 분야의 특허 대부분이 농기계나 하드웨어 분야인 데에 반해, ‘상상텃밭’의 특허는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 기술 분야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차이는 ‘상상텃밭’과 다른 스마트팜 기업이 바라보는 농업의 미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스마트팜을 활용해 의료용 대마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추후 제약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하기 위한 준비 단계죠. 단기적으로는 식물 유래 천연 케미컬을 추출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 원료 생산을 위한 파이프라인 구축도 준비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작물 선정이었는데요. 재배 작물로 대마를 택한 이유는 인삼 같은 작물은 이미 기존 연구가 많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대마는 마약류로 규제하다 보니 그렇지 않거든요. 단순히 케미컬의 유용성이나 경제적 효용성을 떠나서, 국내에서 연구가 많이 되지 않은 작물에 먼저 진입해 전문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향후 목표가 있다면, 제가 개발한 기술을 통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대학생에게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실 여력이 된다면 반드시 컴퓨터공학이나 전자공학을 추천합니다. IT분야가 다른 많은 분야의 기회를 잡아먹으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전문분야 대부분은 그 분야를 직접 전공하는 것보다 IT분야 기술을 갖고 진입하는 편이 오히려 더 높은 성취를 할 것입니다. IT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의 예시를 들어보자면, 웨딩플래닝을 전공한 학생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학생 중 누가 세운 웨딩플래닝 회사가 더욱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웨딩플래너를 매칭해주는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이나, 인공지능(AI)과 VR기술을 접목한 가상세계에서의 웨딩 시뮬레이션 서비스를 쉽게 떠올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게 지금 전 세계의 대기업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데이터 기업으로 전환을 꾀하는 이유고요.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란 뜻으로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의 등장으로 오프라인의 자산마저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지만, IT기술의 숙련도에 따라 인간의 신분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남들에게 기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유연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자신을 투자해야 합니다”
김유영 기자
dbdud2087@chungbuk.ac.kr








김유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