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정의를 말하면 왕따 돼. 얼마나 사회가 썩었으면 청년들조차 눈앞의 이익밖에 모를까? 썩어도 이렇게 썩은 나라가 없다”, “옳은 걸 옳다고 말하려면 목숨을 거는 용기가 필요해.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려면 밥줄이 끊길 각오가 필요하지. 우리는 그 두려움 때문에 옳은 걸 옳다고,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대중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이현 대표는 2000년대 스타강사로 많은 명성을 쌓았지만, 2014년 돌연 사교육업계를 떠나 ‘우리교육연구소’를 설립했다. 강의에서 완전히 은퇴한 지 벌써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제는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길잡이가 되고자 연구소를 설립해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한국적 교육학의 토대 마련’을 목표로 하는 우리교육연구소 이현 대표를 만났다.
스타강사를 뒤로한 채 우리교육연구소를 설립한 이유
안녕하세요! 이현 대표님.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대표님을 스타강사로 기억하고 있는데 어떤 이유로 사교육을 접고 우리교육연구소를 설립하시게 된 건가요?
처음은 공립 중학교 선생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내 본뜻과 다르게 학교를 벗어나 학원강사로 오랫동안 있었죠. 내 마음속에 항상 공교육에 대한 부채 의식(빚)을 안고 살았기 때문에 학원강사로 또는 사교육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2014년, ㈜스카이에듀를 청산하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학교에 다시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요. 그리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리나라 공교육이 바로 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우리교육연구소를 설립하게 됐어요.
대한민국 교육 격차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사회는 점점 바뀌는데, 학생들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매년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며 결과를 공개해요. 중.고등학생의 수준을 ▲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 4등분을 나눠 평가하는데, 2017년 이후부터 기초 미달자 비율이 증가하고 있어요. 어디까지 올라가냐면 대개 3명 중 1명은 보통 학력 미만입니다. 심각한 문제죠.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하나 더 하자면, 학업성취도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몇 점 정도 받으면 기초미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40점? 50점?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매년 조사한 발표 자료에서 기초미달은 100점 만점에 20점 미만입니다. 20점에서 50점까지가 기초 수준이죠. 25점만 돼도 기초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단 20점을 못 넘는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통계를 받아쓰기 바빠서 기초미달이 몇 퍼센트냐에만 관심이 있지, 기초미달의 정의가 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학생들의 백그라운드를 봐야 해요. 이 학생들의 부모가 상류층일 가능성은 클까요? 부모가 돈이 많다면 자식에게 전폭적 지원을 해서 학력을 끌어올릴 테지만, 이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조차 못 받고 학창 시절 내내 소외당합니다. 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뭘 할 수 있을까요? 결국, 꾸역꾸역 수업을 들으면서 학교에 대한 나쁜 경험만 쌓은 채 졸업하게 되는 거죠. 이런 사회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막고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연구하는 것이 우리교육연구소의 일입니다.
언론과 대중의 역할
대표님의 ‘보도지침’ 유튜브 강의 영상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언론은 앞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본질에 대한 이해보다 자극적인 기사 내보내기에 급급합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언론과 대중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기사 하나 내기 위해 기자들은 치열해야 합니다. 기자는 기사가 사실에 근거하는지, 공익적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취재를 해야 해요. 때때로 그 과정에서 많은 걸 걸게 되죠. 삶을 걸어야 할 때도 있고, 밥줄이 끊길 각오로 맞서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나라 언론의 실태는 어떤가요? 심지어 언론사마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정파의 기관지 역할들을 수행하는데, 이것이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뉴스나 신문에서 기사를 접할 때 사람들이 첫 번째로 반응하는 것은 바로 뉴스 제목입니다. 독자들이 제목을 곱씹어서 본 적이 있을까요? 기사 제목은 짧으면서 기사 내용의 전체를 드러내는 문장으로 뽑아야 합니다. 때문에 언론사 편집국은 기사 제목을 뽑을 때 대중이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항상 자극적으로 뽑아요. 대부분 사람은 제목을 보는 순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죠. 그렇게 되면 언론에 의해 대중이 쉽게 조종될 우려가 생기는 겁니다.
물론 언론인의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가 기사를 읽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프로파일러를 다루거나 수사물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범인을 찾기 위해 그 사건을 통해 누가 이익을 보는지부터 생각하잖아요. 이처럼 기사 제목을 보고 ‘어떤 반응을 끌어내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비판적 생각을 가지고 기사를 읽는다면 쉽게 언론에 놀아나지 않고, 그들의 의도대로 춤추지 않게 될 겁니다. 한 발 떨어져 자기 판단을 객관화해서 기사를 보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기자님은 책을 많이 읽나요? 책은 많이 읽어야 해요. 많이 읽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모든 책을 많이 읽을 순 없겠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한 책은 최소 3번은 읽어야 해요. 영화도 두 번 본 적 있나요? 영화도 여러 번 보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두 번째 보면 보이지 않던 장면이 보이고, 세 번 보면 영화의 의미가 다르게 보여요. 책도 마찬가지죠.
특히 무게가 나가는 책들은 한 번 읽는 정도로는 내 살과 피로 소화되기 어려워요. 마치 절지동물처럼 뭘 먹긴 했는데 영양분으로 내 몸에 채워지는 건 적고 쭉 빠져나가는 것과 같죠. 책을 두 번째 읽을 때는 꼼꼼하게 필기하면서 읽어야 해요. 정리하면서, 그렇게 읽으면 책이 훨씬 더 깊게 보여요. 두 번째 읽을 때는 특히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를 위한 질문. ‘이게 무슨 소리지?’라는 질문 말입니다. 그리고 ‘아 이런 소리야?’라고 스스로 답을 찾는거죠. 세 번 읽게 되면 또 다른 질문을 해야 해요. 비판을 위한 질문, ‘이거는 이렇게 봐야 하나?’, ‘이렇게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런 측면은 없나? 라는 질문요. 그러면 책이 점점 나한테 소화가 되기 시작해요. 비판적 질문에서 더 나아가 내가 비판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까지 만들어 낸다면 내 생각이 한 걸음 더 올라가게 됩니다.
근데 많은 학생이 책 한번 후루룩 읽고 말아요. 책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채, 그러고 마는 거죠. 만약 책을 세 번 읽고 이해를 위한 질문, 비판을 위한 질문이 쌓여간다면 공부하기 재밌어져요. 교양서적뿐만 아니라 전공서적을 공부할 때도 이 방법이 좋아요. 교수님들도 그런 걸 원할 겁니다.
또 수업에서는 도전적 질문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에 대해서 교수님께 ‘그걸 왜 그렇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거는 이렇게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해요. 교수님들도 그런 질문을 허용하고, 안되면 유도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학생들도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 굉장히 긴장감 넘치는 강의실이 될 겁니다. 교수님들도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해오겠죠. 나는 그것이 진정한 대학의 강의실이라고 생각해요.
비판적 시각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하는 토론을 보면 대개 뻔합니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비판이 별로 없어요. 데이터를 배제한 채 상식적인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니 비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죠. 주제와 관련된 데이터를 찾아서 근거로 삼아야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고, 상대방을 비판할 수도 있는 겁니다. 두 번째는 논리도 별로 없어요. 아는 게 별로 없으니 토론해 봐야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하고, 발전적인 대안도 나오지 않아요. 의미 있는 토론이 되려면 모두가 지식을 축적해야 하고,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책들에 모두가 열광해요. 지난해 11월 발간한 <교육비평> 제48호에 실린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과 능력주의 그리고 불평등 문제”라는 서평에서 나는 그 샌델의 주장을 비판했어요. 샌델은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 결국 돈 있는 자들을 위해 대학입학 정원을 판매할 수도 있다고 말해요. 그가 정말, 속으로 꿈꾸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 것일까요? 도대체 이런 황당한 주장과 논리에 열광하는 한국의 지식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은 사람의 내적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도덕적 딜레마를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어요. 그중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사례를 살펴보면, 2005년 미 해군 특수부대 소속 군인 네 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합니다.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인데, 지도자가 은신한 곳으로 추정되는 마을을 찾았지만, 이들은 예측 못 한 상황에 맞닥뜨려요. 민간인 염소치기 일행을 우연히 만난 거죠. 그들이 미군의 위치를 탈레반에게 고할 수도 있었기에 군인들은 죽이느냐, 살리느냐 선택의 기로에 놓여요. 고민 끝에 결국 그들을 풀어주고 1시간 뒤, 100여 명이 넘는 탈레반에게 포위돼 대원 세 명은 사망했고,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급파된 헬기마저 격추돼 모두 숨집니다. 그중 한 명은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고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이유가 뭘까? 미국은 ‘무한(無限)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으로 명명된 이 전쟁을 치르며 아프가니스탄을 파괴했어요. 20년 동안의 전쟁으로 죽고 다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은 대부분 비전투원으로, 단지 모여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미군의 오폭에 무고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적지 않아요.
이러한 상황에서 후방에 투입된 병사들이 민간인을 맞닥뜨려 생각할 수 있는 한계는 어떤 것일까요? 앞선 맥락들을 배제한 채 단순히 딜레마의 상황만 제시하고, 염소치기 일행을 죽이는 게 정의인지, 안 죽이는 게 정의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정의의 문제를 지나치게 협소화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적 시각을 통해 현상을 탐구하고, 놓인 상황에 의문을 품는 것이 학생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에게
앞으로 저는 ‘좋은 배움터’로서의 학교를 육성하고, 더욱 나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민주 시민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 모두 건강한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의무를 다합시다.
이성현 기자
jcn03226@chungbuk.ac.kr








이성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