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소리는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필수적으로 보게 되는 부분 중 하나이고 나이가 들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음의 높낮이가 적당하고 발음이 거슬리지 않는 이에게 호감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그저 ‘목소리가 좋다’는 평가에만 그치지 않은 채 이를 통해 하나의 인격을 창조하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이가 있다. ▲<장금이의 꿈> ‘민정호’ ▲<사이퍼즈> ‘잭 더 리퍼’ ▲<쿠키런:킹덤> ‘민트초코맛 쿠키’ ▲<하이큐!!> ‘스가와라 코시’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캐릭터에 목소리로 숨을 불어넣은 ‘장막 뒤의 배우’, 류승곤 성우를 만나봤다.
이전에는 요즘처럼 ‘스타 성우’라는 말도 없었고, 그리 유망한 직업도 아니었을 텐데 ‘성우’라는 직업을 꿈꾸게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확실히 그 당시엔 성우라는 직업이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성우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지만, 이쪽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일반적으로는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직업이었죠. 저도 주변인의 추천이 있기 전까지는 전혀 이 분야를 알지 못했어요. 또 막상 공부를 시작하려니 아는 게 없었기에 당시에는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얻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성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일하는 재미가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뒤가 없는 사람처럼 여기에만 달라붙어 준비했었어요. 합격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4년 전속 성우가 되셨으니 성우의 길에 들어선 지 올해 19년이 되셨네요. 내년이면 20년이 되시는데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목소리로 일을 하며 지낸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 일에서 멀어지게 되신 분도 많이 있거든요. 처음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는 20년이란 경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까마득했는데, 지나고 보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제가 바라는 건 단지 바쁘지 않을 정도로 일을 유지하며, 가늘고 길게라도 성우로서 사는 겁니다. 저에게 너무나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사는 중입니다.
오랜 기간 성우로 활동하면서 느끼신, ‘성우’만이 가질 수 있는 기쁨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연기라는 분야에 흥미를 느낀다면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르의 특성상 단시간에 여러 캐릭터를 접해볼 수 있고 본인의 나이나 외모 등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내 연기를 만들어볼 수 있거든요. 다른 연기 장르는 그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데, 성우들이 하는 작업은 녹음으로 이뤄지기에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는 편입니다. 연기하고 싶은데 자신을 직접 드러내는 건 꺼리는 분께도 직업 특성상 성우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성우라서 느끼는 직업적 고충도 있으신가요?
위에서 말한 장점들은 생각을 바꾸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우리가 하는 연기는 신체 연기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표현 방법이 말(목소리)에 집중돼 있습니다. 더 많은 걸 표현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채 목소리만 들려드리다 보니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좀 더 뭔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분들은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장르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성우분이 해당 장르에서 활동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현재 저는 개인적으론 이런 점들에 아쉬움을 느끼진 않습니다. 그저 이 직업이 표현할 수 있는 장르와 방법 안에서 노는 것이 즐거워요.
캐릭터를 연기하실 때 가장 신경 쓰시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녹음할 캐릭터의 장르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게임이나 만화 같은 장르가 있고 그보다 좀 더 편한 말투를 가져야 할 오디오 드라마 장르도 있습니다. 실제 인물의 입 움직임에 대사를 맞춰야 하는 더빙 분야도 있고요. 요즘은 장르 소설이 오디오 드라마화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작 캐릭터의 분위기를 가져오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은 대체로 탄탄한 팬층이 있기 마련이므로 그 팬들이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를 잘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준비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힘든 점도 있지만, 녹음 콘텐츠의 반응이 좋으면 거기서 큰 만족을 느낍니다. 대본과 설정만 가지고 바로 캐릭터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사실 그게 가장 마음이 편합니다. 어느 정도 연출 의도를 받아들이면서 제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주로 게임 캐릭터 쪽 분야가 그렇습니다.
성우님께서는 평소 차분하고 조용한 캐릭터를 주로 맡으셨던 거로 알고 있는데요, 그와 반대되는 성향의 캐릭터를 맡을 때 힘들지 않으셨나요?
제 기본 톤이 부드럽고 차분한 편인 데다 성격도 그렇게 활달한 편이 아닙니다. 성우가 된 지 얼마 안 됐던 초기에는 어느 정도 그런 생각에 스스로 묶여있었는데 어느 순간 혼자서 쓸데없는 틀을 만들어 놨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냥 사람들이 흔하게 가지고 있는 편견 같은 겁니다. 연기에 재미를 붙이고 표현하기 시작하면 성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성우가 아니었다면 해보지 못했을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외화 더빙이나 외국 애니메이션 더빙의 경우 원어가 있지만, 소설 원작, 혹은 게임 같은 경우에는 기반이 될 목소리가 없으니 연기하기 더 어려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앞서도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더빙은 입 길이와 호흡을 맞춰야 하기에 자신의 연기에 기술적인 부분까지 신경 써서 한계를 그어둘 수밖에 없는데 오디오 드라마나 게임은 그런 부분이 덜하니까요. 더빙할 때 배우나 캐릭터의 표정과 원어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 그 흐름을 따라가기만 해도 작업이 수월해진다는 점은 좋을 수 있겠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입을 맞추는 부분이 빠지는 게 연기하기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인터넷 커뮤니티 ‘인벤’과 하셨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사이퍼즈>의 ‘잭 더 리퍼’라고 하셨는데요, 현시점에서 성우님의 ‘최애’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최애 캐릭터를 말할 때는 항상 조심스럽네요. 아직은 여전히 잭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캐릭터를 좋아해 주시는 분이 상당히 많아서 제 이름이 크게 알려지게 됐다고 생각해요. 자주 하는 얘기지만 그렇게 많은 팬 앞에 서본 게 사이퍼즈 관련 행사 때가 처음이라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나요. 물론 그 전과 이후에 연기했던 다양한 캐릭터들도 애정이 갑니다.
요즘 ‘투잡’, ‘부캐’같은 제2의 직업이 많아지면서 노래 부르는 채널을 운영하거나 게임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성우분이 많은데요. 이에 대해 성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혹시 성우님도 유튜브나 팟캐스트 채널 등을 운영하실 계획은 없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많은 성우가 본인들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건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능을 가진 분이 많아서 그런 재능을 묻어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런 분들이 많이 드러나고 대중에게 사랑받을수록 성우들의 활동 분야가 점점 넓어지게 될 겁니다. 다만 저는 스스로가 드러나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앞으로도 그런 분야로 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유튜브는 거의 불가능하고 팟캐스트 정도는 생각해봤지만 역시 안 될 것 같아요. 콘텐츠를 창작한다는 건 부지런함과 열정이 갖춰졌을 때 더 수월하게 해나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무척 게으른 편입니다. (웃음) 한가한 생활을 하다가 일할 때만 집중하는 게 좋아요.
이미 큰 성공을 이루셨지만, 혹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제 기준에서의 성공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적당히 바쁘지 않게 살며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성우라는 직업이 이런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일로서 저에게 보람을 주는 부분까지 있다는 점에서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요즘 저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요. 앞으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의 생활을 오래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요즘 제 목표는 제게 새로운 흥미를 줄 수 있는 행위를 찾아내는 삶을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취미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들의 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 가짓수를 늘려나가며 삶에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보다 상위에 있는 목표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고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저와 가족들의 건강 유지입니다.
현직 선배로서 성우를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성우 연기에 관심이 있더라도 초반엔 성우들이 녹음한 콘텐츠보다는 가급적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에서 성우들이 만들어내는 캐릭터는 장르 특성상 많이 꾸며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후에 그런 콘텐츠를 봐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우는 뽑히는 인원이 적은 만큼 실력과 운이 따라야 합니다.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심적으로 초조해질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을 만들어 놓고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인생 선배로서 20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연기를 공부하는 20대 학생들을 자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는 그 이전 세대보다 뛰어나다는 걸 언제나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20대들이 여러 가지로 힘든 세대가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많은 분이 그렇겠지만 남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쫓기듯 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적어도 20대는, 어쩌면 그 이후의 나이라도, 훗날 뒤돌아보면 무언가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삶은 사소한 것 하나로도 급격히 바뀔 수 있으니까요.
끝으로 성우라는 직업이 예전과 비교해 많이 조명받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많은 콘텐츠의 뒤에서 보이지 않게 활동하고 있는 성우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소중한 20대 시기를 보내고 있을 여러분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배시혜 기자
bsh1210@chungbuk.ac.kr








배시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