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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슈> ‘탄핵 플래시’ 열풍의 주인공, 97년생 박민주 활동가
제 985 호    발행일 : 2025.03.10 
지난해 12·3 내란으로 시작된 윤석열 탄핵 집회는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집회 문화와 분위기를 만들었다.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결연한 민중가요 대신 신나는 K-pop을 열창하는 집회 현장은 흡사 축제장 같았다. 이런 탄핵 집회에서 센스 있는 선곡과 멘트로 집회 분위기를 주도해 주목받은 사회자로 젊어진 집회 문화의 중심에 선 박민주 활동가를 만났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97년생 박민주라고 합니다.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 평화연대(구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Q. 이태원 참사 때 유가족분들과 함께 행진하시면서 처음 마이크를 잡으셨다고 들었어요. 그 이전엔 어떤 일상을 사셨나요? 그리고 거리로 나오신 계기가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원래는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어요. 저희를 세월호 참사 세대라고 하잖아요. 그런 참사들을 겪으면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졌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죠. 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지 않는지, 왜 자식을 잃은 부모가 공격을 받는지, 왜 국가는 책임을 회피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오히려 이 갈등을 부추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학내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분향소를 운영하거나 추모 공연을 했어요. 소위 말하는 학생운동을 했죠. 광주의 5.18 민주화 항쟁을 기억하기 위해서 학생끼리 광주 기행을 가거나, 사적지, 묘역 탐방을 하는 활동도 했어요. 학과에서 부조리가 있으면 맞서 싸우기도 하고요. 그런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활동가로 살게 된 거 같아요.
  처음엔 앞에 나서는 보직은 아니었어요. 기자회견 같은 걸 한다고 하면, 뒤에서 가위질하고 풀칠하고 그런 걸 했어요. 작더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죠. 그 다음엔 성명서나 기자회견문을 쓰기도 하고 홍보 활동 같은 것들도 했어요. 이태원 참사 때는 정치적인 문제, 구조적인 문제로 피해 본 당사자들을 만나 회의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만들자’, ‘이태원 참사 진상을 규명하라’, ‘대통령은 왜 유가족들을 만나지 않는가?’ 이런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전국을 행진했죠. 그러면서 유가족분들과 함께 마이크를 잡게 됐어요. 이야기하기 위해서, 호소하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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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Q. 탄핵 집회 사회자로서 매번 많은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오르실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을 준비하시는지, 또 무대에 오를 때의 마음가짐도 궁금합니다.
  집회 전부터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해요. 어떤 일이 발생했으며 어떻게 분석해야 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사람들은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요. 저 혼자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봐요. 제 주변 사람한테도 물어보고, 뉴스도 많이 찾아봐요. 이런 식으로 여러 이야기를 듣고, 논의하고, 고민해 정리하는 것들이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를 때는 걱정과 고민이 커요. 저는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잖아요. 저 말고도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마이크를 잡은 제가 잘못하면 이 집회를 준비한 그 사람들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이 있어요. 또 집회에 참여한 이 많은 사람의 요구를 어떤 문장으로 함축해 대변할지 정말 고민이 많아요. 수만 명의 사람이 참여하는데 마이크는 몇 개 없잖아요.
  막상 집회가 시작되면 생각보다 힘들진 않아요. 철저히 준비돼 있으니까요. 현장이 생각과는 다른 분위기면 조금 당황스럽긴 하죠. 그러면 현장 분위기를 보면서 진행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Q.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Next Level>인 헌법재판소로 갑시다”와 같은 센스 있는 멘트와 선곡이 큰 화제가 됐어요. 혹시 앞으로 집회에서 사용하고 싶은 다른 노래도 있나요?
  국회 앞에서 만들어졌던 분위기는 제가 준비한 것도 있긴 하지만, 음향 팀에서 잘 준비해 주셨고 서로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Next Level>도 사실은 무대 감독하시는 분이 가결되면 <Next Level> 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노래를 어울리는 멘트로 시민들에게 전달했을 뿐이에요.
  선곡을 항상 많이 고민해요. 일단, 안 들어본 노래가 없어요. 모든 세대의 곡을 다 들었어요. 집회에 20.30 여성이 많기는 하지만 세대 통합의 느낌으로 가고 싶더라고요. 586세대와 연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젊은 층에서 민중가요에 대한 요구도 있었어요. 중장년층이 ‘다시 만난 세계’를 공부해서 오시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앞으로 어떤 민중가요를 선곡할지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엔 ‘한 주에 한 곡씩 배워보자’하고 사회자 팀끼리 행진 차에서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해요.

Q. 에스파의 <Whiplash> 선곡이 큰 화제가 됐죠. 어떻게 K-pop을 선곡하게 되셨나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집회를 만들고, 집회의 메시지를 공유하면서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노래들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집회에 제 또래인 20.30세대가 접근하기 좀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많이 했어요. 그런 이유로 K-pop 같은 대중가요를 도입했고, 그렇게 한지 좀 됐어요. 제가 처음 활동가로 나갔을 때도 사용했으니까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Whiplash>는 저도 왜 그때 그 노래를 선곡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좀 의아해요. 계엄 전에도 <Whiplash>를 거부권 거부 집회, 퇴진 집회에서 사용하긴 했었어요. ‘거부, 거부, 윤석열 거부’, ‘특검, 특검, 김건희 특검’ 이런 구호를 넣어서 썼죠. 근데 그때는 젊은 세대가 별로 없어서 다들 이 노래를 몰랐던 거예요. 자원봉사 온 20대 봉사자만 ‘이거 <Whiplash> 아니에요?’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는 대중가요를 틀어도 아무도 모르니까 별로 화제가 안 됐어요. 그런데 12.3 내란 이후에는 아무래도 청년층이 집회에 많이 참석하다 보니 노래도 다들 따라 부르고 주목받게 된 것 같아요.
  노래 선곡 과정은 <아모르파티> 같은 건 이전에도 플레이리스트에 있었고요. 국회 앞에서 집회할 때는 좀 더 준비했어요. 토요일마다 표결을 올렸으니까 <토요일 밤에>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소원을 말해봐>도 준비했죠. ‘소원을 말해봐, 윤석열 탄핵!’ 이렇게요.

Q.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선고기일에 틀고 싶은 노래가 있나요?
  사실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그런데 고민이 있어요. 윤석열 체포 이후 집회 사회를 보는데 분위기가 조금 묘했어요. 체포돼서 기쁜 분위기도 있었지만, 조금 풀어진 느낌도 있었어요. 체포가 됐어도 우리는 파면까지 가야 하고, 국민의힘을 향한 투쟁도 해야 하는데 마냥 신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로 자꾸만 ‘이렇게 마냥 즐겁게만 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구호를 외치고 기세를 높이는 것도 좋지만, 이런 흐름과 이야기를 담을 노래도 필요한 것 같아요.

Q. 작년 12월부터 많은 집회에서 사회를 보셨어요. 그 많은 집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있나요?
  늘 1열을 사수하는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원래 1열에는 시민단체 인사들이 많이 앉는데, 이번 탄핵 집회에서는 일반 참가자들에게 1열을 양보해 주셨어요. 저도 그렇지만 1열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무대랑 가장 가깝고 호응이 맞아야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 수 있죠. 근데 1열을 사수하는 그분들의 기세가 정말 좋아요. 나오는 노래마다 춤을 추시고, 목소리도 제일 크세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집회를 하는 몇 시간 동안 계속 마주 보고 있다 보니 그분들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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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윤석열즉가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Q. 토요일마다 열리는 집회도 벌써 2달이 지나가고 있어요. 민주 님은 매번 큰 목청으로 구호를 선창하고 계시는데, 지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나요?
  그냥 그 시민들의 기세가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들, 서로 연대하고 있잖아요. 각자 모르는 영역이 있다면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고, 질문도 하면서 서로를 배워가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달려가 주면서요. 그런 부분이 힘이 돼요. 이런 따뜻함이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Q. 12.3 내란 사태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요즘, 초기의 집회 분위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윤석열 체포 이후 조금 묘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에도 그랬지만, ‘이제 끝났다’하는 느낌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다들 지치신 것도 있죠. 너무 오랫동안 거리에서 싸우다 보니 피로도 쌓였을 것 같아요. ‘이제 헌법재판소에 맡길 수밖에 없나?’ 싶은 생각도 있을 거고요. 그래도 많은 분이 집회에 나오셨고, 나오고 계세요. 그런데 체포 이후에는 뭔가 혼란스러운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이야기가 있어요. 이후의 대선에선 ‘어차피 민주당이 되겠지?’라던가, 헌법재판소 변론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증거들도 많이 나왔는데 파면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긴장 놓으면 안 되나?’ 이런 생각들이요. 그래서 저희도 그렇고, 참가자들도 그렇고, 집회를 준비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지금까지 정말 앞장서면서 열심히 하는 분이 많이 계세요.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요.

Q.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그 이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국민의힘도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탄핵 집회 이전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촛불집회 이후 광장이 멈춰있었잖아요. 앞으로는 광장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싶어요. 이번을 계기로 시민들 연대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해요. 그러려면 광장에서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을 자꾸 외쳐야 해요. 이들이 정치를 이끌어가야 하고요. 정치인들은 이런 광장이 펼쳐지는 것이 얼마나 싫겠어요. 연대를 외치며 본인들과 자본가들을 곤란하게 하잖아요. 정권을 잡은 사람들과 정권에 편승하려는 사람들은 자꾸만 서로 손잡으려 해요.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거리에 나와서 계속 외쳐야 하는 거죠. 이런 활동을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Q. 아직도 굳건히 싸우고 있는 수많은 집회 참가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우리가 지금 광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 문화야말로 우리가 나아가고 싶은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편견 없이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들이요. 권력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꾸만 ‘갈라치기’를 해요. 서로의 갈등을 부추기죠.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을 흐리게 만들고, 약자끼리 싸우게 만들어요. 이걸 우리가 깨닫고 그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혐오 감정과 폭력적인 문화에 빠져드는 건 너무 쉬워요. 그걸 고도로 이용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오랫동안 집권해 왔고, 약자들을 탄압하며 기득권을 유지해 왔어요. 사실 정말 고도화된 문제이고, 그래서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우리는 중심을 잘 잡고 약자에 대한 탄압이 멈출 때까지 지치지 않았으면 해요.

이시호 기자
2021020009@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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