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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민 CBT기자
계엄에 두려움 없이 맞서다
제 985 호    발행일 : 2025.03.10 
더불어민주당 안귀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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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겸 서울 도봉갑 지역위원장 안귀령입니다.


Q2.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떠셨나요?

  저는 그때 국회에서 멀지 않은 영등포시장역 쪽에 저희 당직자분들이랑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어요. 윤석열이 갑자기 대국민담화를 한다고 해서 ‘이 밤에?’ 싶었어요. 보통은 낮에 하잖아요. ‘오전 10시가 아니고 밤 10시가 맞아?’ 했는데 유튜브 링크가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이랑 다 같이 보는데 반국가 세력 뭐라 뭐라 예산 뭐라 뭐라 하더니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해서 너무 깜짝 놀랐어요. 황당했고요. 근데 우리 민주당에서 지난 총선이 끝나고 계속해서 계엄 선포할 수 있다는 예고를 했었거든요. 저도 어렴풋이 계엄이 선포되면 국회가 통제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국회로 가야 된다’라고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이 다 같이 생각했고, 국회로 왔죠. 근데 만약에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으면 저도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 같아요.


Q3. 계엄 직후 국회 앞에서 계엄군의 총을 잡고 저항하며 ‘부끄럽지도 않냐’고 외친 모습이 BBC의 ‘2024년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12장면’에 선정됐습니다. 그때의 상황과 심정을 듣고 싶습니다.

  계엄을 해제할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하는 거거든요. 계엄군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면 표결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계엄군이 안으로 못 들어가게 본청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본청 앞으로 가서 계엄군과 대치했죠. 대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고 팔을 붙잡혔고 팔을 뿌리치려고 하다 보니까 저도 막 밀치고 하다가 총도 붙잡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인데 무서웠죠. 국회에 있는데 막 헬기 소리가 들리고 계엄군이 타닥타닥 걸어가는 군홧발 소리가 들리고 하니까 너무 공포스럽더라고요. 본청 앞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는데 부모님 생각도 나고, 친구들 생각도 나고 막 예전에 내가 좋았던 일들 추억들 이런 게 막 생각나더라고요.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내일은 없겠다’, 그리고 ‘윤석열 진짜 미쳤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막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제 영상이 화제가 되지만, 현장에는 저보다 용감한 분이 더 많이 계셨어요.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내신 분들도 계시고, 넘어지고 다친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서 제가 주목받는 게 좀 송구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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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계엄군에게 저항한 모습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여러 외신과 인터뷰를 하셨는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미국, 영국, 싱가포르, 홍콩,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외신과 인터뷰했는데 외국에서 봐도 계엄은 황당했을 것 같아요. ‘윤석열이 왜 계엄을 선포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많이 물어봤고 그다음에 ‘한국이 다시 독재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민주화된 사회에서 자유를 누리고 살았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완성된 게 그렇게 오래된 게 아니잖아요. 저도 잊고 있었던 거죠. 깜빡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해외에서 봤을 때는 한국은 한 사람의 독주, 폭주로 인해서 쉽게 독재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준 게 아닌가. ‘우리나라 외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좀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답변을 ‘우리나라는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 곳이고 이번에도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 이번에도 시민들의 힘으로 반드시 민주주의를 되찾을 것이고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지켜봐 달라’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Q5.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고, 비상계엄은 6시간여 만에 해제되었습니다. 국회에서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하셨는데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일단은 계엄군과 밖에서 대치할 때 보좌진들, 당직자들은 ‘안에 몇 명 왔대?’, ‘안에 몇 명이야’하고 소리 지르면서 계속 국회의원 수를 확인했어요. 150명이 넘어야 가결이 되니까요. 저는 계엄군과 대치하다가 사람들이 막 손뼉 치고 소리 지르길래 ‘아 통과됐구나’ 했어요. 사람들이 막 소리 지르고 환호하며 계엄군한테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이제 돌아가고 했어요. 근데 윤석열이 계엄 해제 선포를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들 좀 불안해하셨어요. 또 누군가 ‘계엄군이 철수 안 하고 어디 모여 있다’라고 제보했다는 말이 돌았어요. ‘2차 계엄하는 거 아냐’ ‘국회의 해제 요구안을 무시하고 밀고 들어오는 거 아냐’ 온갖 이야기가 나와서 다들 웅성웅성하며 걱정했어요. 새벽 4시에 윤석열이 대국민담화로 ‘계엄을 해제할 텐데 국무회의 정족수가 안 돼서 기다려 달라’라고 해서 다들 ‘뭐야?’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국무위원들이 안 모여 있다는 것도 황당했고, 새벽 4시에 저렇게 발표해 놓고 의결 정족수가 안 된다는 핑계로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싶어서 계속 국회에서 대기했죠. 결국은 해제가 됐지만, 해제가 됐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우리나라에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줬고, 지금도 여전히 추종 세력의 내란과 내전이 진행 중이잖아요.


Q6. 지금 우리 사회는 내란과 탄핵 정국 속에서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과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무도한 폭력, 몰상식에 정의롭게 맞서는 시민들을 보면서 ‘아, 결국은 정의와 상식이 승리하는구나!’, 다시 한번 민중의 힘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한 힘이 결국은 세상을 지킨다, 세상을 바꾼다는 그런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 같아요. 근데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로 지금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양극화돼서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진영 갈등이 심해지고 있어요. 어쨌든 정치가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아 저도 정치권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느껴요. 하루빨리 내란을 종식하고 이 갈등을 봉합시켜 어떻게 우리 사회를 화합시킬지 깊은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봐요.


Q7. 12.3 내란부터 지금까지의 여러 정치적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란 이후 잠 못 자는 날이 많았어요. 아직 내란이 종식되지 않았잖아요.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은 거짓말로 일관하며 변명하는 모습을 보였고, 탄핵이 인용된 후에도 내란 수사는 계속될 텐데 얼마나 거짓말과 궤변으로 지지층을 선동하며 분열을 조장하겠어요. 그래서 좀 걱정이 되고 악몽도 꿔요.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저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아직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된 게 아니구나’,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인권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게 됐어요.

  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면 국민의 힘이나 극우 세력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 그들의 소용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그 자리를 남은 정치인들이 잘 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2030 특히 20대의 활약이, 눈 부신 빛의 혁명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그들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30대로서 그 친구들과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고민해요. 이들의 정치적인 참여가 단순히 윤석열이 파면됐다고 ‘아 우리 이제 할 일은 끝났다’하고 멈출 것 같지는 않거든요. 효용감을 느꼈을 거예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부터 윤석열 체포 구속까지 그들의 정치 참여가 이룬 성과에 효용감을 느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걸 직접 사회에 관철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들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 해야 정치권이 수용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Q8. 언론인으로 활동하시다가 2022년 초 정치에 입문하셨습니다.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대학 졸업전부터 방송사 아나운서 시험을 계속 준비하면서 시험을 많이 봤어요. 근데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쯤부터 KBS, MBC, SBS 이런 지상파를 제외하고는 아나운서를 거의 다 프리랜서 비정규직으로 뽑는 거예요. 그때는 비정규직을 감수하고 도전했는데 막상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보니 회사 내에서 겪는 부조리와 차별이 있는 거예요. 특히 여성 아나운서는 정규직이 아니면 출산 휴가나 육아휴직이 보장되지 않아서 선배들을 보니까 임신이 곧 해고로 이어지더라고요. 그래도 20대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는데 30대가 되니 ‘선배들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누군가는 이런 부조리를 알려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정치권에 뛰어들게 됐어요. 지금도 그때의 결심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Q9. 앞으로 정치 인생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국회에 입성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정치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생각하면 우선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고 싶어요. 대학생 대부분이 취업 고민이 많을 텐데 모두가 대기업 정규직이 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있고, 특히나 청년들은 더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MBC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문제(직장 내 괴롭힘)처럼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아래 청년들이 일을 하면서 차별이나 괴롭힘에 내몰리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겠다. 특히나 비정규직을 포함해서 모든 노동자가 법률상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안전, 복지를 챙겨주는 입법도 하고 싶고요. 또 지역구 활동을 하다 보니까 소상공인, 특히 청년 소상공인에 관심이 생겼어요. 청년 주거 문제에도 관심이 있고요.


Q10. 젊은 정치인으로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정치’라고 하면 혐오, 무관심, 외면 뭐 이런 말들이 떠오르잖아요. 그럴수록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게 기득권들이 원하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정치를 모르고 싫어할수록 그들만의 정치로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확대할 겁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두고 감시하고 참여해야 우리를 위한 정책이 나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요. 요즘은 윤석열 파면이 늦어진다고 답답하다고 힘들어하는 분이 많을 것 같아요. 좀 더뎌도 이게 민주주의 절차라고 생각하시고 정치에 계속 관심을 두시면 좋겠습니다. 정치는 우리 모두의 삶, 일상과 연관된 우리 모두의 것이에요. 진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려면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가 꼭 있어야 해요.


Q11. 대학 생활을 먼저 한 선배로서 대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돌이켜 보면 대학 다닐 때 늘 불안했던 것 같아요. 뭔가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던 것 같아요. 근데 돌아보면 느리지만 그래도 발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아나운서가 된 것도 되게 작은 방송사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이직의 이직을 거듭해서 결국은 원하던 회사 중의 한 곳인 YTN에 들어갔거든요. 물론 비정규직이었지만. 근데 그런 작은 단계 단계별로 겪었던 작은 성취가 저를 좀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이 질문을 받고 이런 생각 했어요. ‘대학 시절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오늘의 성취가 오늘의 기쁨이 되게 작아 보여도 그게 나중에 너를 더 단단하고 크게 만들어 줄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네요. 혹시라도 지금 걱정이 많고 불안하다면 그러지 마세요. 작은 성취와 작은 기쁨을 누릴 줄 알면 어느 순간 성장해 있을 겁니다.


Q12. 마지막으로 못하신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국회까지 와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대학 때 기자님처럼 못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노느라 아니면 취업 준비하느라 우리 사회에 우리 정치에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못했어요. 다시 한번 관심 가져주시고 이야기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수민 CBT기자

psm0129@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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