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이번 ‘충북인’에서는 솔직한 다섯 학생이 직접 겪은 ‘지우고 싶은 흑역사’를 들어봤다.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흑역사’인 만큼 이번 충북인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했다. 익명의 힘을 빌려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부끄럽지만 유쾌하고, 때로는 아찔했던 그들의 흑역사를 들여다보자.
어? 왜 푹신하지? #달콤하기도 했던
ㅈ(국어교육과·25) 학생
2025년을 맞이해 생긴 흑역사입니다. 길고 긴 수험기간을 마치고 첫 사회생활로 키즈카페 알바를 했어요. 지난 1월 26일,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날은 알바 중인 키즈카페의 점장님 생일이라 회식이 예정돼 있었죠. 회식이 시작되자 점장님과 직원들은 함께 소주를 마셨고, 분위기는 무르익었어요. 다른 직원들이 점장님 얼굴이 그려진 커스텀 생일 케이크를 들고 축하하며 회식은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고, 흥이 난 점장님은 “신입 알바생은 나와서 노래와 춤을 춰야 하지 않겠냐”라고 했고, ‘신입 알바생’인 저는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로 분위기를 띄우고, 에스파의 <위플래쉬>를 추며 재미를 챙겼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곡에서 과하게 흥이 오른 탓이었을까요. 춤을 추며 비틀거리다 그만 점장님 얼굴이 그려진 생일 케이크를 깔아뭉개는 사고를 쳤어요. 얼어붙은 점장님이 눈앞에 보였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저는 취기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퇴사를 선언했습니다. 다행히 점장님은 쿨하게 넘어갔고, 이후에도 함께 일하면서 별말 없이 잘 챙겨주셨죠. 대학 입학을 앞둔 2월에 알바를 그만두며 점장님께 진심 어린 편지를 드렸고, 방학 때 가게로 놀러 오라는 말을 들었어요. 여름방학 때 사죄 케이크를 들고 가려고 합니다. 제가 일했던 카페는 시크릿 쥬쥬가 테마인 키즈카페인데 전 콩순이 탈 알바를 했던지라, 콩순이를 그린 사죄 케이크를 드리고 싶네요.

▲ 당시 알바 중 콩순이 탈을 쓴 ㅈ학생.
신주쿠 역에서 노숙자를 면하다 #강제송환 당할 뻔한
ㄱ(사범대·21) 학생
국제교류본부로부터 연락이 올까봐 학과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하나의 공동 거실에 각자 방을 쓰는 형태의 기숙사에서 총 6명이 함께 지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친구가 일본으로 놀러 왔어요. 기숙사는 외부인 출입 금지가 원칙이지만, 같이 지내는 다른 사람들도 가끔 외부 손님을 방에서 하루 정도 몰래 재우는 경우가 있어서 저도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친구를 하루 재우기로 했어요.
친구의 짐을 먼저 방에 옮겨둔 뒤, 저는 후드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빠르게 로비를 지나 친구를 방으로 데려왔어요. 기숙사를 오기 전에 가볍게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숙사 애플리케이션으로 메시지가 도착했고, 곧이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당황한 친구는 침대 밑에 숨었고 저는 최대한 침착하게 문을 열었죠. 하지만 관리인 얼굴을 보니 이미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어요. 결국 저는 솔직하게 말했고, 관리인은 “기숙사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퇴소나 징계를 받을 수 있다”라며 나가라고 단호하게 경고했어요. 그 순간 술이 깨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어요. 침대 밑으로 들어간 친구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새벽동안 기숙사 로비에 있다가 첫차를 타고 돌아갔어요. 저는 혹시 퇴소 조처가 내려질까 봐 불안감에 눈물까지 흘렸어요. 다행히 퇴소하지 않고 사건은 무사히 마무리됐어요. 저는 일본인 룸메이트에게 도움을 받아 공손하고 정중하게 높임말로 사과문을 작성해 기숙사 관리인과 경비원을 찾아뵙고 진심을 담아 사과했어요. 그 덕분인지 이후 별문제 없이 교환학생 생활을 마쳤어요.
교환학생으로 갔던 학교가 신주쿠역에서 엄청 가깝습니다. 그곳을 가면 노숙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저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니냐며 동생이 엄청 놀렸습니다. 그런데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친구를 기숙사로 데려올 것 같아요. 다만, 술은 마시지 않고 경비원의 순찰 시간을 사전에 파악해 조금 더 조심할 것 같아요.

그때 같은 공간에서 시험 보셨던 분들 #죄송합니다
ㄴ(고고미술사학과·23) 학생
제가 지우고 싶은 흑역사는 대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시험 지각 사건입니다. 당시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보니 다음 날 아침 알람을 못 듣고 늦잠을 자버렸어요.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시험이 시작된 지 30분이나 지난 시각이었죠. 너무 당황해서 렌즈도 끼지 못한 채, 급하게 몸만 챙겨 시험장으로 달렸어요. 시험 종료 30분 전에 간신히 강의실에 도착했는데, 시험 문제는 스크린에 띄워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저는 중간쯤 되는 자리에 앉았지만, 문제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어요. 결국 시험 도중에 앞자리로 이동해 시험을 치렀는데, 그 과정에서 조금 소란을 일으켜서 함께 시험을 보던 이들을 불편하게 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 일은 저에게 ‘시험에 지각하지 말자’라는 교훈을 남겼어요.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겁니다. 시험 준비가 중요하지만, 저에게는 밤을 새우는 방식의 공부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일로 알게 됐어요. 지금은 그때 지각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늦게까지 무리해서 공부하지 않고 미리미리 시험을 준비해서 일찍 잘 겁니다. 그리고 만약 이미 지각한 상황이라면, 조금 더 차분하게 렌즈나 안경처럼 꼭 필요한 준비물은 챙겨서 나갈 겁니다. 그날 시험장으로 향하던 저 자신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일어나서 꼭 렌즈 끼고 가!”라고 하고 싶네요.
관객 1명, 화장실 1열 콘서트 #싸늘하다_한 명이 더 있었다
ㅇ(제약학과·25) 학생
그날은 초등학교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었어요. 칵테일 바에서 한창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더빙하는 릴스를 보여줬어요. 그게 너무 웃겨서 서로 더빙 장면을 따라 하고 있었죠. 그러다 친구 한 명이랑 같이 화장실을 갔어요. 화장실 칸이 두 개가 있어서, 친구가 바로 옆 칸에 있다고 생각했죠. 당연히 우리 둘뿐이라고 생각하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랑 아까 봤던 릴스의 더빙을 따라 하면서 <에반게리온> OST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불렀어요. 제 목소리가 좀 여리여리한 편이라서, 락 장르도 아주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바꿉니다. 사실 노래의 멜로디를 좀 무시하고 부르는 편이라서, 당시 불렀던 두 곡도 그렇게 불렀어요.
그런데 화장실 칸에서 나왔을 때 친구는 세면대 근처에 있고 옆 칸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었어요. 저는 둘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다른 사람이 볼일을 볼 때 신나게 노래를 불렀던 거예요. 정말 너무 창피해서 세면대에 손을 빠르게 씻고 얼른 나왔어요. 친구는 절 보면서 막 비웃었고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화장실 바로 옆에 있던 코인 노래방으로 도망쳤어요. 그리고 그 쪽팔림을 조금이라도 승화해 보고자, 아까 화장실에서 불렀던 <보헤미안 랩소디>랑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한 번씩 더 불렀어요. 제가 도망치고 난 뒤에 친구는 화장실에서 제 노래를 들었던 분이 갔는지 망을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그분 얼굴이나 반응은 하나도 몰라요. 그리고 저는 술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를 코인노래방으로 불러서 같이 노래를 불렀어요. 친구가 화장실에 있던 그분이 갔다고 할 때까지 코인 노래방에서 버텼어요.
막상 부를 때는 별다른 생각이 안 들었는데, 지금은 자꾸 이 수치스러운 흑역사가 생각나요. 친구와 둘만 있다고 확신하고 노래를 불렀거든요.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그냥 선곡만 바뀔 것 같아요. 지금 이대로 돌아가면 아마 <진격의 거인> OST <홍련의 화살>을 불렀을 것 같네요.

헤세 사랑이 문제였나? #오빠 책을 너무 좋아했어요
ㅇ(지구과학교육과·22) 학생
1학년 1학기에 사범대학 3개 학과가 같이 듣는 ‘대학글쓰기’ 수업에서 있던 일이에요. 3월 중반쯤에 교수님께서 지정한 책 중에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라는 무난한 과제를 내주셨어요. 지정된 책은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어요. 새로운 환경인 데다 첫 과제이다 보니,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교수님 말씀을 제가 오해해 버린 거예요.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에 꽂혀있었어요. 주인공은 어느 시점부터 학교생활이 삐걱거리고 결국 일탈을 시작해요. 제가 실제 교직에 나가면 모범생만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러 유형의 학생에게 관심이 좀 많아요. 전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그 교사였다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이 교사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같은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어요. 그래서 교수님이 지정한 책을 예시로 알고, 헤르만 헤세의 다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도 된다고 완전히 착각한 채, <수레바퀴 아래서> 독후감을 써버렸어요.
결국 다음 수업에서 갑자기 교수님이 마이크로 “ㅇ 학생은 왜 다른 과제로 제출했나요?”라며 의아해하셨어요. 교수님이 워낙 멀리 계셔서, 제가 거기서 구구절절 설명해도 제 목소리가 닿지 않을 것 같았고, 오해한 과정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게 부끄러워서 아예 대답을 못 했어요. 다행히 교수님이 허허 웃으시며 “독후감은 00일까지 다시 써서 제출하세요”라고 하셔서 나름 유하게 넘어갔어요. 얼마 후 같은 과 동기를 불러서 교수님이 독후감을 잘 썼다면서 칭찬했는데, 저와 그 동기의 상황이 대비돼서 민망하고 부끄러웠어요. 지금 당장 이런 실수를 한다면 무던하게 넘길 텐데, 첫 과제부터 과제를 잘못 제출했다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황인선 기자 dlstjs03@chungbuk.ac.kr
김륜휘 기자 rhwwww@chungbuk.ac.kr
그림 | 이준환 기자 Jwhanlee@chungbuk.ac.kr








황인선&김륜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