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이는 배고픔부터 깊게는 아픔, 슬픔까지, 서러운 이름들은 왜 하필 픔으로 끝나는 걸까. 불러내지 않으면 마음이 아릿할 말들을 털어놓고 싶은 때에, 홀로 픔, 픔을 읊조리면, 프-하고 열었던 입을 음, 하고 다물고 나서는 침묵해야만 할 것 같은데도.
아끼는 사람의 품, 하품, 같이 따닷하고 느긋한 것들이 픔, 하픔이었다면, 우리의 포옹과 여유는 오히려 적막했을까. 기쁨이 처음부터 기픔이었다면, 우리는 다만 미소만을 지을 뿐 함께 소리 내어 웃지는 못했을까.
흉진 곳을 돌아볼 때 소리 낼 말들이 혹여나 픔이 아닌 품으로 발음됐더라면, 내 상처를 마주한 너의 맘과 말이 조금 더 동그랬을까. 그랬다면 순간순간의 진심을 드러내는 일이 실낱만큼이라도 더 쉬웠을까. 쉬웠다면 나는 나에 더 가까운 인간이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런 세계에 애초에 슬품이란 단어는 있었을까.
슬픔은 픔으로 끝나기에 무결한 슬픔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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