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4.04.22 월 19:31
문학
문학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연재소설] 연자방아 전설 (2)
제 944 호    발행일 : 2019.09.23 
글 AIC, 그림 김용길

  “밤 줘요.”
  여남은 살짜리가 한 손을 아래 주머니에 넣은 채 10원을 내밀었다.
  “5월 어치?”
  어머니는 돈을 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애를 쳐다보았다. 제발 10원어치 다 사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예”
  이내 그 애는 돈을 밤 뭉치로 갈아들고 다리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어머니는 그 애를 따라 바로 다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다리 중간쯤에 향자를 업고 오는 향실이가 보였다. 그 곁에 다섯 살 난 중민이도 따라오고 있었다.
  “응?”
  향실이를 보자 어머니는 튀는 스프링처럼 일어섰다. 그리고는 곧장 애들 쪽으로 갔다. 향실이가 훌쩍이며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향실은 어머니와 맞서자 엉엉 소리를 내서 울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향자도 덩달아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
  어머니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아챘다. 향자의 왼쪽 눈 옆이 벗어져 빨갛게 핏방울이 몇 점 엉겨있었다.
  “이 지지배야, 애는 안 보고 무슨 지랄을 하다 이랬어?”
  향자에게 젖을 물리고 나무 궤짝 위에 앉으며 어머니가 쇳소리를 냈다.
  “오다 자빠졌어. 엉엉.”
  향실이는 더욱 울음소리를 높였다. 향자는 이따금 훌쩍이며 젖을 빨았다. 한 손은 어머니의 젖꼭지 하나를 비비 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애기의 젖먹는 모양을 내려다보았다. 애기도 한쪽 눈을 치였다. 애기의 볼에는 아직도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벗겨진 언저리의 흙도 닦아냈다. 아가가 움찔 얼굴을 돌렸다. 따가웠던 모양이다.
  끓어오른 마음이 가라앉고 보니 아직도 훌쩍이는 향실이가 마음에 걸렸다. 옆에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장사 목판들을 굽어보는 중민이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아이 손에 세 알씩 밤알을 쥐여 주었다. 아까 향실을 기다리다 태운 그 밤알들이었다. 중민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밤알을 잡기가 무섭게 한 알을 해치웠다. 향실은 밤알을 꼭 우겨 쥔 채 눈물만 훔쳤다.
  “응!”

1.jpg


  아직 말도 못 하는 얘기가 한 손을 쭉 뻗고 손가락을 펼쳤다. 애기의 두 볼은 불그스레 익어 있었다. 어머니는 애기의 손에도 밤알을 하나 올려놓았다. 애기는 밤알을 받자 한 손마저 뽑아서 밤알을 까보았다. 애기는 몇 번 밤알을 눌러보고는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머니는 밤을 바꾸어 물렸다. 이젠 향실이도 울음을 그치고 밤을 까고 있었다. 중민이는 벌써 세 알을 다 해치우고 어머니 등에 매달려 칭얼댔다.
  “집에 가 밥 먹어.”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향실아! 어이 가라!.”
  향실이가 등을 드려댔다.
  “앙…”
  애기가 다리를 뻗으며 울상을 지었다. 향실이에게 안 업히려는 것이다. 어머니는 애기를 내리고 볼기를 두어번 토닥거렸다. 또 젖을 물렸다. 큰 애기에게도 밤을 두 알씩 더 주었다.
  “아버지 집에 있니?”
  어머니는 물으나 마나라는 듯이 남의 일처럼 입을 놀렸다.
  “엄마 나오고 바로 나온 걸 뭐.”
  향실이가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집에 가서 아랫목에 있는 밥 내서 중민이 하고 먹고, 애기 잘 봐.”
  “으응. 이제 집에 가지. 응”
  애기는 들은 체도 않고 어머니 품에 일어나 앉았다. 낯 설은 주위를 한가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애기를 치켜들고 향실은 또 등을 굽혔다. 이번에도 애기는 뻗대기만 했다. 억지로 애기를 등에 올려놓았다. 애기는 손을 짚고 고개를 들었다. 금방 떨어질 것 같았다.
  “아이구.”
  향실이가 비틀거렸다.
  “가 이년아. 가.”
  ‘찰싹’ 애기의 볼기가 따끔했다.
  이 때문에 애기의 울음소리는 커졌지만, 몸은 쉽사리 등에 달라붙었다. 이런 기세에 감 장사의 목판을 바라보며 칭얼대던 중민이도 향실이를 따라나섰다. 효과는 꺼져가는 등잔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산뜻했다. 향자의 울음소리도, 세 아이의 모습도 점점 다리 건너로 작아져 갔다. 멀어져가는 애들의 모습과는 반대로 엉뚱한 생각이 뚜렷한 형체를 갖추고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향실이는 말할 것도 없고 중민이까지도 식모 등으로 길러낸 애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일곱 살배기가 해종일 갓난아이와 중민이를 달래야 한다니 너무 엄청난 짐을 지웠구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 위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향실이 또래들이 재잘거리는 모습이 한 폭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어머니는 화독 위에 고개를 떨구었다. 두 줄기 뜨거운 것이 볼을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마침내 얼굴을 두 손에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득 갇혀있던 저수지의 물이 적은 구멍을 넓히며 새나가듯 팽팽했던 마음의 줄이 누그러지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실컷 울고 나자 창피한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마르던 목도 추기고 보면 시들하듯이 앞뒤는 이렇게 다른 것이었다. 눈물겨운 일이긴 했지만,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눈물이 아닌 이상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너무나 비겁하게 생각됐던 것이다. 지나가는 이들을 치켜 올려 보았다. 그들이 치켜 보이는 만큼 어머니보다 높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올려 보였다.
  현실은 여유롭지 못했다. 그따위 일들이야 어쨌건 군밤을 많이 파는 것이 그날의 과제였다. 어머니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또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군밤을 사줄 만한 그럴싸한 사람들을 점쳐보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그럴싸한 사람이 한 사람도 안 보였다. 손님 없는 한가한 시간은 현실에 대한 서러운 마음을 타고 어머니에게 지난날의 삶들을 재생시켜 주었다.
  내가 중학 1학년 때니까 이미 십구 년 전의 이야기다. 당시 아버지는 대한XX공사 서무과장으로 있었다. 아버지는 보통학교고 4학년까지밖에 못 다녔다. 경력이라면 일제 때 열두어 해 동안 군서기를 지낸 것이 전부였다. 해방이 되자 회사라는 것이 장마 후의 버섯처럼 숱하게 솟아났다. 아버지는 그 만만치 않은 경력 덕분에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의 관사였던 만큼 집은 K시의 구례동에서는 몇째 안가는 와가였다. 물론 생활도 집 못지않게 윤택했다. 당연히 어머니는 이른바 사모님 족속에 속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초인종 밑에서 초조하게 어머니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어머니가 하는 일들은 모두 석순이라는 열여덟 살 난 아가씨가 해냈다. 지금처럼 식모가 흔하지 않던 그때로는 어머니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세계는 지금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한 것이었다.

(제945호 계속)

충북대학보 제30호(1963년 9월 20일자)부터
                           제33호(1964년 1월 10일자) 까지 연재

Name Pass  

목록보기
최근기사
충북청주FC와 개화 총학생회가 함께 한 ‘충...
학생들의 꿈을 배양하다, 씨앗 마일리지 제도
새롭게 돌아온 ‘벚꽃과 함께하는 푸드트럭 축...
총학생회, 편입·복학생과의 소통을 위한 간담...
청주시 소상공인을 위한 ‘청주페이 플러스...
공지사항 More
<안내> 신문방송사 60주년 기념행사
2015학년도 수습기자 추가 모집
2015학년도 수습기자 및 편집기자 모집
2013학년도 신문반송사 현상공모 안내
2012년 CBNU UCC 공모전 심사결과
영상뉴스 More
사진뉴스 More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고창섭 | 주간 : 구본상)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