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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꽃 질 무렵 (2)
제 953 호    발행일 : 2020.11.09 
글 강현욱(경영학부·15/창문학동인회)

5


  윤정아. 이젠 시간이 남으면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펜을 잡는 게 습관이 됐어.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낮에 훈련받으면서는 편지에 쓰고 싶은 말이 자꾸 떠오르는 데 막상 펜을 잡으면 무엇을 써야 할지 머리가 하얘진다. 쓸 말이 없다는 게 아니라 워낙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아.
  나 오늘 아침에 드디어 세례 받았어. 세례명은 마테오야. 어떤 표를 주면서 그냥 생일에 맞추라 길래 골랐어. 이름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해서 그런지 제일 끌리더라고. 원래 이렇게 싱겁게 정하는 건가. 너는 세례명이 뭐라고 했었지?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이 안 나네. 뭔가 세례명이 다 익숙한 이름들이라 오히려 기억에 안 남는 것 같아. 아예 특이한 걸로 해볼걸 그랬나봐. 어쨌든 성당 다니면서 기도하는 기쁨을 알았어. 솔직히 아직도 신이 있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답하겠지만 그걸 떠나서 그냥 기도하는 행위 자체가 좋더라고. 한 주간 나의 생활을 돌아보게 되고 또 다가올 한 주를 맞이하는 마음을 정리하고. 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정말 간절히 빌어보는 게 처음인 것 같아. 너와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앞날이 잘 되길 빌어주는 게 참 기분 좋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어. 미사 드릴 때 느껴지는 그 경건한 분위기도 맘에 들더라. 성호를 긋고 성당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엄숙해지더라.
  편지를 쓰다 막히면 네 사진을 봐. 이 엄지 손가락만한 사진 하나로도 이렇게 끝없는 행복과 애틋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너는 아나 모르겠네. 또 네가 그런 대상이 되어있다는 것도. 고백하자면 밖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군대에 오고 나서 네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네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고 결국 네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껴. 내가 썼지만 참 오그라든다. 내가 편지를 처음 쓸 때는 글로 대놓고 마음을 표현한다는 게 어색해서 이렇게 쓸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 마음이 더욱 깊어져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자연스럽게 쓰게 돼. 내가 읽어도 너무 오글거려서 읽기가 괴로운데 너는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다. 짜증났다면 미안 ㅋ.
  정말 훈련도 막바지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만날 날이 오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날도 결국 오는 구나. 끝이라는 건 참 신기한 힘이 있어. 처음엔 싫었던 사람도 다 이해하게 만들어줘. 동기들이나 조교들이나 내가 편지에 너무 꼴 보기 싫다고 욕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다 친해졌고 그냥 다들 좋은 사람 같아. 전우애란 게 있긴 한가봐. 물론 이젠 안 봐도 된다는 생각에 그런 걸 수도 있고 ㅋㅋ.
  이 편지에는 답장을 해도 내가 받을 수 있으려나? 애매하니까 굳이 안 해도 돼. 어차피 곧 볼 건데. 먹고 싶은 게 또 바뀌었어. 양꼬치 먹으러 가자. 원래 입대하기 전에 같이 먹으러 가기로 했던 걸 못가서 그런지 계속 생각나는 음식이더라. D-5다! 어쩌면 내가 이 편지보다 먼저 갈 수도. 잘 있어. 사랑해.


6

  오늘 출근을 하니 가게에 사장님과 어떤 여자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드디어 알바를 구했나보다. 이젠 사장님과 같이 근무를 안 해도 되서 다행이다. 얼마 안 되는 기간이지만 그동안 정말로 끔찍했다. 꼰대 같은 인간. 자기는 스스로 굉장히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해서 더 싫다. 평소에 그렇게 이미지 메이킹을 하면서도 조금만 심기가 거슬리면 바로 본색이 나오는 사람이다. 감춘다고 감춰지나. 어쨌든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된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다. 일을 가르칠 동안은 내가 더 고생하겠지만 근무시간 내내 사장님과 불편하게 있는 것 보단 낫다. 내가 출근하기 전부터 먼저 일을 하고 있던 예진이가 상 치우고 있는 걸 도우면서 새로 오신 분의 얼굴을 힐끔 살펴봤다. 동그란 얼굴형에 머리는 별다른 것 없이 그냥 뒤로 묶어서 그런지 볼이 살짝 통통해 보이고 쌍꺼풀 없는 눈매지만 그렇다고 쫙 찢어진 인상은 아니다. 그냥 수수하게 착해 보인다. 화장을 옅게 해서 그런지 예진이보다도 어려 보인다. 예진이가 고등학생밖에 안됐으면서 귀신같이 허옇게 화장하고 다니긴 한다.
  사장님이 나와 예진이를 불러 모아 일 좀 잘 가르쳐주라고 한마디 던지신 뒤 곧바로 가게 밖으로 나가셨다. 무책임한 인간 덕분에 우리는 일순간에 어색해졌다. 이른 저녁이라 손님도 없고 가게에는 인기차트의 노래만 울려 퍼졌다. 그녀는 아까부터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서있기만 한다. 말을 먼저 못 거는 성격인가 보다. 문제는 그건 나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아까부터 예진이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눈빛으로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재촉하고 있다. 결국 알바 중 최고참으로서 내가 아무 말이라도 먼저 꺼내야만했다. 이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싶겠지만 나에겐 참 어렵다. 나는 여태 우리와 멀찍이 서서 혼자 있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조심히 물었다.
  “저, 안녕하세요.”
  그녀는 조곤조곤하게 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 스물하나요.”
  “아 그럼 저랑 동갑이시네요.”
  이 말 이후로 잠시 침묵에 빠졌으나 나는 다시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럼 혹시 대학 다니시는 중인가요?”
  “아… 저는 학교는 그만뒀어요.”
  그녀가 잠깐 주저하더니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았다. 애초에 안다니던 것도 아니고 벌써 그만 뒀다니.
  “아 정말요? 왜요?”
  “그냥 잘 안 맞아서요.”
  “그럼 다시 공부하시게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고.”
  “그럼 뭐하시게요.”
  대화가 흘러가다보니 초면인 사람끼리 할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대학을 관둔 게 절대 좋은 일은 아닌데 그걸 캐묻고 있었다. 내가 무례하다 쳐도 그럼 물어볼 때마다 꼬박꼬박 답을 해주는 이 사람은 뭔가.
  “저는 여행 가려고요.”
  “아, 여행. 좋죠.”
  나는 여행에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해외여행은 이해할 수가 없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경험을 하라고 하지만 본인이 힘들게 모은 돈이든, 부모님이 대주시든 꽤나 큰돈을 며칠 사이에 탕진하는 게 과연 그럴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가 싶나 생각을 해왔다.
  “어디로 가시게요?”
  “아직 생각 중이에요. 얼마 전까진 말레이시아에 다녀왔어요.”
  “아, 말레이시아면 싱가폴 쪽이요? 어땠어요?”
  “저는 싱가폴 쪽 말고 말레이 북부 쪽으로 갔다 왔어요.”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거길 왜가지? 뭐 볼 게 있다고. 이 사람이 말하는 여행이란 관광이 아니라 체험인가?
  “북부요? 거기로도 여행 가는 사람 있어요?”
  “네, 있긴 있죠.”
  “거기 볼 게 뭐 있어요?”
  “있긴 있어요. 완전 관광지는 아니지만.”
  “관광지가 아니라 오지 아니에요?”
  “시골 쪽으로 가면 그런데도 좀 있죠.”
  이 말을 듣고 어느 뉴요커가 우리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에 온다면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봤다. 심심해서 미치지 않을까.
  “그럼 이번에 가신다는 여행도 파리, 베니스 같이 유명한 데는 아니겠네요.”
  “네. 그러려고요.”
  “그럼 어디 생각해둔데 있어요?”
  “그냥 뭐… 몽골도 가보고 싶고 아니면 네팔?”
  혼란하다. 나라면 돈 받고 갈 곳이다. 몸이 고생하거나 위생이 좋지 못한 환경에 개의치 않는가보다.
  “혼자 가세요?”
  “네, 지금까진 그랬어요.”
  “안 위험해요? 여자 혼자 다니면?”
  “괜찮던데요. 가지 말라는 데는 안 가면 되요.”
  가본 사람이 안전하다니까 내가 달리 할 말이 없다. 가는 곳이 특이해서 그렇지 엄청 위험하게 들이대지는 않는가 보다.
  “그런 여행을 다니면 얻는 게 있나요?”
  “그냥 다른 세상의 사람들은 이렇게도 사는구나. 근데 제가 엄청 많이 본 것도 아니긴 하지만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더라고요. 나중엔 글로 한번 써보고 싶어요.”
  “멋있네요.”
  “네? 뭐가요“
  “정말로요.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저는 뭐 좀 있으면 군대 갑니다.”
  “아, 네. 근데 원래 여기 손님 이렇게 안와요?”
  동정을 받으려고 군대 얘기를 꺼낸 건 아니지만 이렇게나 무관심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웬만해선 빈말이라도 불쌍해 해주는데. 군필자는 차라리 비웃음이라도 친다. 그보다 손님이 유난히 안 오긴 했다. 이른 시간대긴 해도 한 두 테이블은 간간히 오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 들 때쯤이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제 오겠네요.”
  얼마 뒤 정말로 손님이 들어왔고 예진이가 먼저 나서서 손님에게 자리 안내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냥 저렇게 웃으면서 인사하면 된다고 했다.


7

  하필 내가 일하던 가게 주변에서 식사를 했고, 하필 소주 한 병을 마셨으며, 하필 자리가 파하자 그녀가 일을 마칠 시간에 가까워져있었다. 약속은 내가 잡았고 소주도 내가 시켰지만, 나는 이런 우연을 핑계 삼아 그녀가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가게와는 조금 떨어져 그녀가 퇴근하는 길목에서 서성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먼발치에서 가게의 불이 꺼지기만을 바라봤다. 천연덕스럽게 인사하러 왔다고 할까. 진지하게 말을 건넬까. 내가 여기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을 할 지 생각해놓은 게 없었다. 일을 그만둔 뒤로 지나간 시간에 나와 그녀 간에 나름 친밀해졌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희석되어 이제는 너무 옅어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불안해졌다. 또한 내 마음이 어떻고를 떠나 입대를 얼마 안 남겨둔 상황에서 이게 뭐하자는 건가 싶었다. 이윽고 가게의 불이 꺼졌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결국 정하지도 못했고 가슴만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못 본 사이에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웨이브도 넣었다. 머리는 왜 잘랐을까. 긴 머리를 자르는 건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거라던데. 어쨌든 그렇게 꾸민 모습을 보니 참 예쁘다. 일할 때 자주 봤던 수수한 차림과는 또 다르다. 걸어오고 있는 그녀를 향해 성큼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나의 인사가 갑작스럽게 느껴졌는지 굉장히 놀랐고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간신히 내 인사에 답해줬다.
  “어?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머리 자르셨나 봐요.”
  “네 그냥 잘랐어요. 괜찮아요?”
  “네, 잘 어울려요.”
  나의 밑천은 끝났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대뜸 물어왔다.
  “근데 왜 오셨어요?”
  “네? 아…”
  나는 왜 왔을까.
  “그냥,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요.”
  “저를요?”
  “네.”
  “그래요?”
  “…아닌가?”
  “어차피 올 거면서….”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네?”
  “아니, 어차피 다시 올 거면서 그날 왜 그냥 갔어요? 제가 그날 끝나고 한참 찾았는데.”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마치 내가 잘못한 게 있는 사람인 것 마냥.
  “네? 제가요? 언제요?”
  “정말 모르세요? 마지막으로 일하던 날 제가 저 일 끝날 때까지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그 때 알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차라리 뺨을 세게 한 대 맞았어도 이렇게 띵하진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분명 나에게 그날 뭐라고 말을 하긴 했었던 것 같다. 그땐 그냥 잘 가라는 소린 줄 알았지. 지금 생각해보면 잘 가란 말을 그렇게 애타는 표정으로 한 것도 이상하긴 하다. 잘 알아듣지도 못해놓고서 왜 알았다고 그랬을까. 그렇게 사람을 바람맞히며 떠나버리고 한참 뒤에야 보고 싶다며 홀연히 나타난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일까.
  “죄송해요. 정말. 몰랐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알았다고는 했지만 그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도 않고 아무 말이나 했나 봐요. 미안해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녀도 이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둘 다 말없이 어색하게 걷고만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결국 말을 먼저 꺼낸 건 나였다. 대체 왜 나에게 꺼지라고 하지는 않는가가 궁금해서.
  “그럼 제가 싫으세요?”
  “아니요. 근데 좋지도 않아요.”
  “다행이네요.”
  다행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에선 절로 나온 말이었고 나는 이제야 조금 안도했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걸으며 화가 좀 풀어진 것일까. 내 생각처럼 그녀도 아까보단 다정해진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근데요, 제가 정말 보고 싶어서 왔어요?”
  “네.”
  “봐서 뭐하려고.”
  “아니, 그냥, 그냥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어요. 지금 못 보면 아마 영영 못 볼 것 같아서. 어디로 여행 갈 지는 정했어요?”
  “몽골이요.”
  “거긴 뭐가 있어서 가는 데요?”
  “뭐가 있어야만 가나요.”

1.jpg

  그렇게 얼마간 걷다보니 벚꽃나무가 길게 늘어선 가로수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로 발걸음을 이끈 사람은 나와 그녀 중 누구일까. 나는 일단 아닌데, 그녀에게 물어봐도 아니라 할 것이다. 운명처럼 흘러온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멘트는 비록 너무나 뻔하더라도 단 하나밖에 없다.
  “올해 벚꽃 보셨어요?”
  “아니요. 아직 못 봤는데요.”
  “그럼 보러 가실래요?”
  “지금은 거의 다 지지 않았나요?”
  “그거라도 보면 되죠.”
  우리는 못 보던 동안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을 두런두런 나누며 벚꽃을 향해갔다. 얼마 남지 않은 꽃이라 해도 아름다운 건 변함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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