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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레시피 : 카스텔라
제 955 호    발행일 : 2021.03.02 
장연지(사회학과·19/창문학동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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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피의 법칙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한다. 쉽게 말하자면 ‘재수 없는 날’인 거다. 이런 날이 있다는 것에는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갈릴지도 모른다. 그런 거 입 밖으로 내면 진짜 재수 없어진다고 입 밖으로도 내지 말라는 등의 기타 의견도 존재한다. 참고로 이 의견은 우리 부모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루에도 여러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찾아온다지만, 있다. 분명히 ‘재수 없는 날’이.
  하릴없이 지내다 보면 베이킹은 생각보다 좋은 취미가 된다. 덕분에 이것저것 구워봤고, 제과를 만드는 나는 나름의 성취감을 얻고 주변인들은 맛있는 군것질거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만들기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카스텔라다. 갓 만든 건 뭐든지 맛있다지만, 그중에서도 갓 구운 카스텔라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어서 만들고 나면  후기 작성할 때 선택지에 있을 법한 매우 만족함을 느끼곤 한다. 엄청나게 부푼 카스텔라는 노란 부분은 촉촉하고 갈색으로 그을린 부분은 달고나 같은 단 맛이 난다. 맛있는 건 다른 사람도 먹여야 더 맛있는 법. 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신 카스텔라를 만들어 룸메이트들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때문에 모든 것의 시작이 잼 바른 빵이 아닌, 애정 하는 카스텔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전 10시는 일어나서 모든 것을 준비하기에 나름 적절한 시간이었다. 약속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고, 나 또한 베이킹에 대한 숙련도가 어느 정도 있던 터라 1시간 정도면 대왕 카스텔라 한 판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스텔라 레시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스텔라를 아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팁은 적당한 상태의 머랭을 아주 많이 투하해 주면 된다. ‘적당한 상태’에 주의를 기울여줘야 한다. 원래 레시피를 따른다면 노른자 6개, 흰자 3개지만 그러기에는 남은 흰자가 매우 아깝기 때문에 나는 흰자 3개를 추가하여 머랭을 친다. 흰자 6개의 머랭을 넣으면 카스텔라가 풍선처럼 부푸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주, 아주 행복해지는 냄새는 추가 옵션으로 딸려 온다.
  원래대로였다면, 나는 머랭의 거품 정도와, 반죽과 머랭을 함께 섞을 때 반죽이 꺼지는 지 여부에 대해서만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흰자 노른자 분리 같은 것은 너무 쉬워서 탁. 탁. 탁. 탁. 탁. 탁. 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불행하게도 일은 여기서 터졌다. 숟가락, 내 힘, 계란의 신선도 중에서 원흉은 모르겠지만 노른자가 깨졌고 흰자를 담은 그릇에 섞여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노른자를 최대한 건져냈지만 노란색이 드문드문 점처럼 보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십 분의 시간을 들였지만 결국 흰자 거품이 생기지 않았고 계란 6알을 쓰레기통에 처박을 위기에 처했다. 요즘 계란 값이 많이 올랐는데…. 다행히도 순발력을 발휘해 팬케이크를 한가득 구움으로 계란 6알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정작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은 벌써 1시에 다다르고 있었고 또 직접 차로 한 시간을 운전해야 하기에, 교통시설이 낙후된 시골에 사는 학생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버스가 많이 없는 곳에 살다 보면 필자의 마음이 왜 다급해지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미 계란 6알이나 썼으니 계란을 더 쓰기에는 엄마의 눈치가 보였기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안 나오는 게 없다는 빨간 지식인에게 노계란, 노버터 케이크 영상을 물었고 능력자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침 비싼 요리용 초콜릿하고 생크림도 있으니 진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어보고자 빠르게 움직였다. 케이크도 굽고 생크림도 휘핑을 쳐야 하기 때문에 1시간 내에 케이크를 만들어 구웠고 굽는 동안은 설거지를 열심히 했다. 초콜릿 비율이 좀 많았는지 굽는 시간이 원래보다 더 걸려서 초조해지던 참에 오븐이 띵 소리를 내며 케이크가 다 구워졌음을 알렸다. 이제 케이크 흉내 좀 내보기 위해서 생크림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전에, 생크림은 뜨거운 열에 녹아 흘러내릴 수도 있으니 케이크를 빠르게 식혀야 했다. 생각해 보니 마침 겨울이었고 밖에도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기 때문에 케이크를 밖에 내보내서 식히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도 없이 동그란 케이크 팬 양쪽 실리콘 손잡이를 끼우고 현관으로 나갔고 실리콘 손잡이가 팬에서 미끄러져 아주 화려하게 케이크를 엎었다. 잼 바른 빵과는 다르게 케이크는 무거웠고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그대로 떨어질 법하건만 놓칠 때 각도가 이상했는지 아예 거꾸로 뒤집혀서 엎어졌다. 사람이 너무 황당하고 화나는 일을 겪으면 화도 안 난다고 하던데 진짜로 그랬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우당탕 소리가 난 후에 내 케이크는 엎어졌고 김만 모락모락 내뿜고 있다는 것을 정보로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깜짝 놀라셔서 보러 오시더니 조용히 내 눈치를 보다 아이고 하셨다. 이때까지는 화나고 자시고 간에 영혼이 가출해버려 시험문제 다 풀고 나서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릴 때보다 백지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하던 동생이 나와 뭔 일인지 보더니 케이크 엎었냐며 꺽꺽대며 웃기 시작했다. 정신이 바로 번쩍 들면서 언제 몰아칠지 간을 보던 분노의 불꽃이 당겨졌고 동생은 그제서야 눈치를 보며 다시 게임을 하러 홀라당 들어가 버렸다. 컴퓨터 있는 방이 내 방이라 들어가지 말라고 난리 치고 싶었지만 케이크 수습이 먼저라 넋을 놓은 채로 주섬주섬 엎어진 걸 치우기 시작했다. 케이크가 뜨거워서 한참 식힌 다음에 치우느라 한 삼 사십분 걸렸다. 그다음부터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은 하는데 이미 몸과 마음은 탈진한 채여서 도통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침 좋은 시점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룸메들에게 연락이 와서 약속시간이 당겨지게 되었다. 이때 엄마는 애가 영 아침부터 뭐가 안 되는 걸 보시고 차라리 데려다줘야 하나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가는 길에도 아무 문제 없었고, 잠시 들린 매우 복잡한 대형마트에서도 멀쩡하게 잘 운전했었지만 마지막, 그 마지막에 자동차 사고가 났다. 차를 빼던 와중에 뒤에 차량과 접촉사고가 난 것이다.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하겠다. 그냥 사회 초보는 정신건강이 갈려나갔고 사회 고수 룸메들이 옆에서 위로해 주면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정신건강이 갈려나가다 못해 박살이 났을 것이다. 정작 부모님은 원래 운전 1년 차 초보는 차 사고 한 번쯤은 낼 수 있는 거라면서 아무렇지 않아 하셨지만 이미 내 정신건강은 한계치에 도달해버렸다. 아무리 머피의 법칙이라 해도 조금씩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점점 더 불행의 크기를 부풀려서 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머피의 법칙은 아주 야무지게 추가타까지 먹이고 사라졌다. 그날 머피의 법칙에게 많이 얻어맞은 사회 초년생은 그 충격으로 인해서 매일매일 출석하던 출석 이벤트를 까먹어버리고만 것이다. 한 달의 끝을 꼭 달성하고 싶어서 꼬박꼬박 출석했고 마지막을 며칠 안 남기고 있었는데 잊어버리고 말았으니 모든 것이 초기화되어버렸다. 아주 완벽한 하루였다.
  한동안은 레시피 : 카스텔라를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카스텔라만 떠올리면 끔찍하기만 해서 베이킹 근처에도 가지 않고 있다. 좀 더 정신건강이 튼튼해진 후에 언젠가 다시 카스텔라의 냄새와 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레시피 : 카스텔라와의 만남을 기약하고 싶다. 불행의 첫 타격이 된 레시피 : 카스텔라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와닿을지, 또 어떤 호기심을 불러일으킬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레시피 : 카스텔라는 진짜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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