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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3.11.27 월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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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원
제 956 호    발행일 : 2021.03.29 
심문수(국어국문학과·15/창문학동인회)

1.jpg

  얼굴이 하얗고 둥근 쇠부엉이, 비주는 기분이 몹시 좋았어요. 어머니께 허락을 받아, 드디어 홀로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비주는 나뭇가지에서 벗어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전에 가슴을 부리로 꾹꾹 쑤시며 몸단장을 했어요. 높이 뻗은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깃털에 스쳤어요. 비주는 바람이 숲 너머의 드넓은 평원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비주는 황갈색 날개를 활짝 펴 날아오를 준비를 했답니다.
  “신난 것은 알지만 조심하려무나, 아가. 쉴 때는 항상 나무 위에서 쉬렴. 지상 동물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고.”
  어미 쇠부엉이가 말했어요.
  “아가 아니에요!”
  비주는 힘껏 날아올랐어요.
  하늘은 구름 없이 아주 높았어요. 비주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등과 날개를 덮는 볕을 만끽했죠. 비주는 아직 어렸지만, 조용히 잘 날았답니다.
  초원이 너울거렸어요. 목가적인 풍경에 한껏 빠져있던 비주는 바람이 흐르는 대로 마음껏 날다가 슬슬 날갯죽지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몸의 중심을 가슴으로 끌어올리며 날개를 살짝 접고 천천히 아래로 향했어요. 그리고 이파리가 거의 없는 나뭇가지를 골라 살며시 앉았죠. 연못 옆에 홀로 선 나무였어요. 나무 밑동에는 사슴 무리가 물을 마시며 쉬고 있었어요.
  “엄마! 쟤 좀 봐!”
  어린 사슴 하나가 비주를 올려다보며 말했어요.
  “올빼미가 대낮에 우리 초원으로 나왔어!“
  “나는 쇠부엉이야.”
  비주가 부리를 딱딱거렸어요.
  “올빼미가 아니란 말이야.“
  “어머! 그런데 왜 머리에 깃이 없니? 누가 뽑아가기라도 했니?”
  어미 사슴이 물었어요.
  “원래부터 없었어요. 우리는 원래 깃이 없다구요.”
  “그것참 안됐구나.”
  비주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무엇이 안되었다는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나저나 부엉이가 대낮에 우리 초원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니?”
  어미 사슴이 귀를 팔락이고는 초원을 둘러보며 말했어요.
  “심심해서 놀러 나왔어요.”
  “심심해서 좋겠네~”
  어린 사슴이 비아냥거렸어요.
  “우리는 심심할 틈이 없는데 말이야. 조금 전에도 사자 무리에게서 간신히 도망쳤어. 겨우 숨을 돌리고 있다고. 너희는 사자에게 잡힐 일이 없으니 심심한 거잖아? 같은 포식자이니까 말이야!”
  “그게 그렇게 심술부릴 일이니?”
  “지금 심술이라고 했어?”
  얼룩말 무리 중 하나가 참견했어요.
  “너희들 눈에는 심술로 보이니? 그럼, 그렇겠지. 너희 올빼미는 포식자이니까 말이야! 우리 같은 약한 동물들을 어떻게 이해하겠어?”
  “저는 올빼미가 아니라 쇠부엉이예요!”
  “올빼미나 부엉이나 마찬가지지!”
  얼룩말이 호통쳤어요.
  “소리 지르지 마. 얘한테 화내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덩치 큰 코끼리가 끼어들었어요.
  “그래도 올빼미야. 너희들은 우리들을 이해해줘야 한단다. 우리는 항상 너희와 같은 포식자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지 않니?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힘든지 모른단다.“
  “그래! 저런 포식자들이 없었으면, 우리 초원이 얼마나 더 아름답고 행복했겠어? 저들은 이기적이기 그지없어서 우리 새끼들을 잡아먹는다고.“
  다른 얼룩말이 성을 냈어요.
  “나는 저런 포식자들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봐! 그들은 이 초원에서 쓸모없어. 좋을 것 하나 없으니까! 그들이 없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될 거야. 마음껏 뛰고, 마음껏 놀고, 마음껏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맞아! 우리는 자유를 원해!”
  어린 사슴이 소리쳤어요.
  “사슴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불공평해!”
  어린 사슴의 외침과 함께 연못 주변의 초식동물들이 불만을 터뜨렸어요. 다리를 다친 얼룩말도, 사자 무리에게 새끼를 잃은 기린도, 서글피 우는 토끼도. 비주는 그들이 모두 분노와 원한에 사무쳐 있음을 느꼈어요.
  “올빼미야. 미안하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무나. 너는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단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니 말이야.”
덩치 큰 코끼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어요. 결국 비주는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답니다.
  비주는 금세 우울해졌어요. 포식자라는 이유로 혼난 것이 서러워 눈물이 찔끔 나왔죠. 그러나 비주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어요. 초식동물들이 하는 말이 틀린 점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자신과 같은 포식자가 그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죠. 초식동물들은 진실로 분노하고 원망하며 슬퍼했어요. 그들의 자유를 위해서 자신과 같은 포식자들은 초원에서 사라져야 할까?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할까? 그리고 무얼 먹어야 할까? 하늘을 날며 비주는 머리가 점점 복잡해졌어요.
  정처 없이 날던 비주는 문뜩 저 멀리 네 마리의 사자가 나무 그늘에 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암사자 한 마리와 세 새끼 사자였죠. 비주는 사자 무리가 왠지 반가웠어요. 얼른 그들의 나무 위에 앉았답니다.
  “안녕하세요?”
  비주가 인사를 건넸어요.
  “와! 올빼미야, 올빼미!!!”
  새끼 사자 중 하나가 소리쳤어요.
  “그래, 올빼미구나. 대낮에 이곳에는 무슨 일이니?”
  암사자가 약간은 놀란 눈으로 물었어요.
  “올빼미가 아니라 쇠부엉이예요.”
  비주가 참을성 있게 말했어요.
  “산책하던 중이었는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 왔어요.”
  “궁금한 것?”
  “네. 너무 궁금해서 머리 깃이 빠질 것만 같거든요. 애초에 없지만 말이죠...”
  비주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횡설수설 털어놓았어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암사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하긴, 이런 일도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아가! 동생 귀를 깨물지 말렴!”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요?”
  “그래. 그놈의 자유 때문에 골치가 아파. 아가! 그늘 밖으로 나가지 마!”
  “음... 마치 자유가 나쁘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비주가 어미 사자에게 붙들린 채 여전히 그늘 밖으로 나가려는 새끼 사자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자유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란다.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마음껏 뛰놀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으면, 그곳은 최고의 초원일 거야.”
  암사자가 찡그린 표정으로 새끼 사자에게 주의를 주며 말했어요.
  “하지만 항상 좋은 것도 아니란다.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거든. 나는 우리 아이들을 낳고 싶어서 낳았지만, 동시에 양육할 책임이 생겼잖니? 만약 내가 아이들을 굶긴다면, 그건 무책임한 행동일 거야. 비열한 하이에나에게 새끼를 빼앗긴다면, 그것도 무책임한 행동이고 말이야. 책임을 지지 않으면, 내가 가진 자유는 비극이 되어 사라진단다. 초식동물들의 자유를 위해서 내 새끼들을 굶기라고 한다면, 그건 그들이 나의 자유를 빼앗는 셈이야. 음... 그래서 차라리 자유 없이 누가 시키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뜩 들곤 한단다. 특히 요즘에는 말이야. 그만큼 내 등을 짓누르는 책임이 무겁고 힘겹다는 뜻이야.”
  “당신도 행복하지 않은가 보군요...”
  비주가 침울하게 말했어요.
  “이 초원에 행복한 동물도 있었니? 모두 하루하루를 살기 어려운 동물들뿐인 것을... 어쨌든 언제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야. 그것은 우리 포식자뿐만 아니라 초식동물도 마찬가지란다.”
  암사자가 날 선 눈빛으로 어딘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어요.
  “책임감 없이 자유만 차지하는 동물이 있다면, 그놈이 우리 초원의 행복을 갉아먹는, 초원에서 제일 쓸모없는 동물일 거야.”
  비주는 암사자가 보는 곳을 따라 보았어요. 갈기가 풍성한 수사자가 커다란 바위 위에 늠름한 자태로 앉아있었죠.
  “이제 궁금증은 좀 풀렸니, 고민쟁이 부엉 씨?”
  “예. 덕분에 조금 나아졌어요.”
  비주가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어요.
  “다행이구나. 바보같이 신세 한탄을 한 것 같아 마음에 걸렸거든. 다음에는 네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려무나.”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무에서 벗어난 비주는 초원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생각을 정리했어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구나. 책임을 지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구나. 자유롭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구나.’ 그러다 문뜩 의문이 떠올랐어요. ‘그러면 행복한 동물은 어디에도 없는 건가?’

2.jpg

  비주는 바위 위 수사자를 굽어보았어요. 수사자는 미동도 없이 초원을 내려다보며 엎드려 있었죠. 비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수사자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조용히 다가갔어요.
  “쇠부엉이로구나.”
  불어오는 바람에 갈기가 멋들어지게 흔들리는 수사자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네! 맞아요!”
  비주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어요.
  “단번에 알아보시네요!”
  “단번에 알아보지. 너는 쇠부엉이이니까. 네가 쇠부엉이인지 모르는 동물은 무지한 동물이란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다른 모든 동물은 수사자 님처럼...”
  “내 이름은 ‘밈’란다.”
  “아, 네. 다른 모든 동물은 밈 님처럼 저를 쇠부엉이로 바로 알아보지는 못하던걸요?”
  “이런... 그것참 끔찍한 일이구나.”
  밈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무지몽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들은 너무 무책임해. 그들에게는 배움이 필요해.”
  “어... 그 정도인가요?”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는 법이야. 배움 속에 진실이 있거든. 그리고 진실은 아주 중요하단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이지. 꼭 기억해두거라, 아가.”
  “‘아가’가 아니라 비주인데...”
  비주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밈의 풍성한 갈기를 바라보았어요. 밈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비주는 도무지 알 수 없었죠.
  “그나저나 내게는 무슨 일이지?”
  밈이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고는 넌지시 물었어요.
  “아! 맞아. 밈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요.“
  비주는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얘기했어요.
  “자유... 책임... 행복... 그것참 흥미로운 생각이구나.”
  밈이 멀리 보이는 연못으로 눈을 돌렸어요.
  “내 의견을 말해주마. 지금까지 네가 만난 동물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책임이 무엇인지, 행복은 무엇인지, 모두 모른단다. 그런 단어들은 입에 담는다고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거든. 그것들은 아주 고귀한 단어야. 자유란 무엇일까? 날카로운 발톱이 다 닳을 정도로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지. 책임은 무엇일까? 뾰족한 이빨이 썩을 때까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야. 그리고 행복은 무엇일까? 풍성한 갈기가 모두 빠질 만큼 헤아려보아야 한단다.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해답을 찾긴 했단다. 삶은 비극이야.“
  “비극...이요?”
  “그래. 끔찍한 비극. 왜냐하면 비극이기 때문이지. 우울하고, 피곤한 것. 그것이 삶이야.”
  비주는 밈의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었죠. 그저 느낌이 그러했거든요. 비주는 왜 이러한 느낌이 들까 고민하다가 밈이 바라보는 연못을 따라보았어요. 여러 초식동물들이 서로 어울려 무리를 이루고 있었죠. 그리고 비주는 문뜩 깨달았어요.
  “혹시... 외로우세요?”
  밈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어요. 그리고 아주 길고 가늘게 내쉬었죠.
  “원래 삶은 고독하단다, 아가.”
  밈이 말했어요.
  날이 어두워지자 비주는 복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어요. 연못도, 나무도, 바위도, 한순간에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죠. 초식동물도, 포식자도, 모두가 불행한 초원이라니.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었어요. 깃털에 닿는 바람이 왠지 차가울 정도였죠.
  어미 쇠부엉이는 집으로 돌아온 비주를 따듯하게 맞이해주었어요. 부리로 깃털을 골라주고, 갓 잡은 쥐를 주었죠. 하지만 비주는 그렇게 좋아하는 쥐를 먹고 싶지 않았어요.
  “외출은 재밌었니?”
  어미 쇠부엉이가 비주가 남긴 쥐를 힐끗보며 물었어요.
  비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 비주를 보며 어미 쇠부엉이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어요.
  “엄마랑 같이 밤 산책할까?”
  비주는 엄마와 밤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죠. 쇠부엉이 모자는 그렇게 밖으로 나와 초원으로 향했답니다.
  밤공기는 상쾌했어요. 그러나 비주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죠. 그렇게 좋아하는 밤 산책을 떠나면서도 말이죠. 비주는 초원이 훤히 보이는 숲 가장자리 나뭇가지에 앉는 어미 부엉이를 보고는 얼른 따라 앉았어요.
  “아가, 초원을 보렴. 아름답지 않니?”
  어미 부엉이가 말했어요.
  달빛 아래 초원에 연못과 나무와 바위가 보였어요. 그리고 비주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죠.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초원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아가 아니에요.”
  비주가 조용히 말했어요.
  “너는 내 아가란다. 그리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단다. 우리가 보고 있는 초원처럼.”
  비주의 눈이 동그래졌어요. 초원이 변치 않는다는 말이 기묘하게도 신기하게 들렸거든요. 그리고 비주는 초원을 다시 바라보았어요. 달빛이 연못에 비쳐 반짝이고, 조용히 부는 바람이 나무의 머리를 흔들고, 바위 위 밈은 꾸벅꾸벅 졸았죠. 그 모든 것이 고요했어요.
  초원은 몹시 안정적이었어요. 콧김이나 목소리 따위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굳건했죠. 초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어요. 수년, 백 년, 아니, 수백 년, 어쩌면 천 년이 넘는 세월이 천천히, 견고하게 만들어낸 것이었죠. 그리고 비주는 더는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태로워 보이던 초원을 바라보며 오히려 가슴이 따뜻해졌답니다.
  비주는 어머니가 몹시 지혜로운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마음만큼 초원 역시 아름다웠죠. 어머니도, 초원도 비주에게 무한한 안정감을 주었어요. 비주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어요. 그리고 불행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 순간, 비주는 아주 행복했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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