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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기꾼 - 기차역 단골손님
제 957 호    발행일 : 2021.05.03 
이준영(환경공학과·20/창문학동인회)

  이름 김태경, 사는 곳 경상남도 창녕군 길곡면,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전화번호, 부산 사투리에 40 정도 되어 보이는 얼굴, 빨간 패딩에 모자.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모든 정보이다. 3월 5일, 그날의 이야기.

  화창한 날이었다. 해도 적당하게 나오고 바람도 선선하게 부는 딱 좋은 봄의 날씨. 이런 좋은 날씨에 집에만 있긴 참 아까워 공기도 마실 겸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딱 그런 날이었다. 새로 산 옷을 입고 딸기 라테 한 잔을 들고 조치원역으로 이동했다. ‘4호 차 16번’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탈 수 있는 자리였다. ‘오늘 진짜 좋은 일이 생기려나? 일이 잘 풀리네’ 그렇게 20분을 달려가 도착한 천안역, 마침 전철도 바로 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머니 속 교통카드를 꺼내 들고 열차를 타기 직전 계단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학생, 혹시 여 근처에 경남은행 어딨는지 아나? 내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전화를 못 하고 있는데 혹시 경남은행 한 번 찾아줄 수 있나?”
  “아 네 찾아보니까 경남은행은 천안에 없고요. 평택까지는 가셔야 되세요. 여기서 전철 타시면 평택까지 가니까 여기서 타시면 되세요.”
  “아이고, 안 되는데 바로 내려가야 해서 학생 혹시 기차표 하나만 끊어줄 수 있나? 내 돌아가면 바로 송금할게. 한 번만 해주면 안 되겠나.”

  이때 역무원한테 안내를 해줬으면 되는 건데 왜 생각을 하지 못했나 싶다. 우연히 본 아저씨의 얼굴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걸까, 그냥 한 번 도와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아 네 뭐 가시죠”
  “학생 어디 급하게 가야 하나? 천안 사람이가?”
  “아뇨 다음 열차 타면 돼요, 천안 사람은 아닌데 근처에 살아서 자주 다니죠.”
  “학생 부산 놀러 오면 내가 크게 한 번 쏜다. 사직구장 가봤나? 거기도 데려간다. 학생 고맙다.”

  원래 길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받아주지도 않고 지나가는 편인데 이날은 유독 기분이 좋았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얘기를 듣고 있었고 어느새 발걸음은 아저씨를 따르고 있었다.

  “근데 지금 부산으로 바로 가는 기차가 없는데 어떻게 하죠?”
  “아 어쩌나.. 그럼 혹시 돈으로 뽑아줄 수 있나? 내 지제역 가서 타면 탈 수 있을 거 같다. 44,500원 드니까 5만 원만 뽑아도. 내 7시에 집 가면 15만 원, 아니 20만 원으로 송금해 줄게. 여기 앞에 ATM기 있으니까 여서 좀 뽑아줘.”

  사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바보처럼 굴었다. 천안에서 없던 SRT가 지제역에 간다고 해서 있었을까? 지제역까지 가는 돈도 필요할 텐데 그건 어떻게 하려고? 그땐 아무 생각 없이 내 손은 카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내가 오는 길에 핸드폰만 안 잃어버렸어도 이런 일 없었을 텐데 미안하네. 대신 내가 7시면 집에 도착을 하거든. 그때 바로 송금해 줄게.”
  “아, 네 알겠습니다. 길 잃지 마시고요.”

  인터넷 뱅킹이 이렇게 발전한 세상에서 휴대폰 버튼 몇 번 누르면 바로 송금이 되는데 왜 이게 지금에서야 생각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네, 5만 원 여기 있습니다.”
  “어 그래 학생 진짜 고맙다. 내 이름은 김태경이고, 여 보이지 이거 등본인데 경남 창녕 산다. 일은 부산에서 하니까 언제든 놀러 오면 내가 크게 한 번 살게. 고맙다. 진짜 못 내려가는 줄 알았는데 내가 부산 내려가자마자 6시 30분에 전화할 테니 받아라 내 번호는 010..... 진짜 도착하면 바로 송금할게 고맙다.”
  “아 네 조심히 가세요. 집에 잘 들어가시고요. 다음부터는 잃어버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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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경 씨는 마지막 말을 듣지도 않고 부산에 내려가서 전화를 하겠다며 번호를 남기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해서 달려간 줄만 알았다. ‘혹시 모르니 저장이나 해놓을까?’하며 저장을 하였고, 이내 몇 초 만에 가짜 번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톡에도 뜨지 않고 전화 연결도 되지 않는 번호, 아마 김태경이라는 이름과 등본도 다른 사람의 것일 확률이 높다. 자신의 주소까지 밝히면서 사기를 치는 바보는 없을 테니, 그냥 말 그대로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핸드폰으로 계속 검색을 했던 것 같다. ‘기차역 사기’, ‘기차역 돈 사기’, ‘기차표 사기’, ‘경남은행 기차표 사기’. 몇 년 아니, 몇 십 년 전부터 유행했던 사기 수법이라는 뉴스도 나오고 피해자들의 글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떤 글에서는 김태경 씨에게 당한 사람도 있었다. 신고를 해도 받기 어렵다는 글을 보고 설마 아니겠지, 이 아저씨는 진짜 급한 사람이었겠지 하며 발걸음을 ATM기 앞으로 향했으나 주변엔 사람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5만 원이라는 돈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물며 알바도 하지 않는 대학생인 나에게는 굉장히 큰돈이다. 사실 돈을 건네면서 못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싫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름 사건이 일단락되고 친구들에게 얘기를 해주었다.

  “네가 어쩌다가 그런 사기를 당했냐. 5만원 이면 큰돈인데 괜찮냐?”
  “와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냐? 지금이라도 내려서 빨리 잡으러 가.”
  “쯧 무슨 그런 거에 당하냐? 너 같은 애가 있으니까 걔네들이 그렇게 사기 치고 다니는 거야. 잘 좀 하고 다녀라.”

  마지막 친구의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이었다. 물론 나의 바보 같은 판단 때문에 당한 것은 맞다. 내가 조금만 더 주의를 했다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근데 도저히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 사기를 당한 사람이 잘못한 사람이라는 건가?

  “엥? 그럼 내가 잘못한 거니?”
  “맞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사기를 치겠냐고.”
  “와 어떻게 하면 사고방식이 그런 식으로 흐르냐? 그래 알았다.”

  도무지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친구의 말이었다. 진짜 내 잘못이었던 걸까? 착하게 사는 것과 호구가 되는 것은 차이가 없는 것일까? 며칠 지난 지금도 계속 떠오르고 고민하게 된다. 요즘 사회가 각박하다는 소리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실 사회가 이렇게 된 건 미꾸라지 몇 마리들 때문이 아닐까? 선의의 마음으로 베풀었던 정이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일, 다들 겪어봤을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착하게 사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착하게 살면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남을 돕지 않고 어려움을 무시하면 ‘정 없다’, ‘쌀쌀맞다’, ‘차갑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럼 대체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정직하게 살아라,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직하고 착하면 바보가 된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연민의 마음은 접는 게 맞는 걸까? 착하게 사는 게 매번 당하고, 마음에 상처입는 일이라면 다신 착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5만 원으로 세상을 배웠다. 다신 누굴 돕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난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 세상은 아직도 꽤나 어렵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착하게 사는 건 어떤 건지? 착한 삶은 무엇인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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