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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일상
제 958 호    발행일 : 2021.05.31 
이규영(영어교육과·16/창문학동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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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하루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이다. 늦잠 잔 것까지 완벽하다. 난 왜 항상 이 모양일까. 오늘따라 길도 더 막히는 것 같다.

  “기사님, 그냥 세워주세요.”
  “네? 아직 도착….”
  “거스름돈은 됐어요!”

  앞에 사고라도 난 걸까. 차라리 뛰어가는 게 속이 편하다.

  “어머나 세상에….”
  “젊은 사람인 거 같은데 어떡해.”
  “구급차는 왜 안 와요?”

  사거리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역시 사고가 난 것인가. 뛰어가는 나의 판단이 옳았다. 그런데 뭔가 찝찝하다. 과장님한테 연락이 안 온다. 분명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칠 텐데. 휴대전화를 켜보니 아무 연락도 없다. 날짜도 이상하다. 어젯밤 업데이트가 잘못됐나.

  “깜짝이야.”

  드디어 전화가 왔다. 제발 부장님이 나보다 일찍 왔다고만 하지 않길.

  “아직 못 찾으셨어요? 음식 식겠네.”
  “죄송합니다. 과장…. 네?”
  “여기가 좀 복잡하긴 한데, 정확한 주소 보낼게요!”
  “네? 아니 누구….”

  끊겼다. 과장님이 아니었다. 분명 내가 아는 목소리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래처 사장님인가. 과장님한테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오늘 외근인 줄 아나 보다.

  [대전 서구 탄방동 684 그랑삐아또]

  문자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나. 그런데 좀 의아하다. 분명 여기 없어졌는데. 내가 좋아했던 곳이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바로 근처에 있던지라 쉽게 도착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음식의 새콤달콤한 토마토 향이 가득하다. 빨리 거래처 약속 상대가 누구였는지 찾아야 한다. 낯이 익은 사람이 있는지 계속 살펴보는데 갑자기 너무 놀라 숨어버렸다. 하필이면 쟤가 왜 저깄을까. 일단 몰래 지나치고 계속 찾아야겠다.

  “늦으셨네요.”
  “?!”
  “그렇게까지 놀라시면 오히려 제가 죄송한데….”

  어안이 벙벙하다. 왜 존댓말이지. 왜 아는 척하지. 왜 날 보며 설레하지.

  “어….”
  “30분이나 늦으셨으니 제 맘대로 주문했어도 되는 거죠?”

  여전히 제멋대로다. 전 여자친구다. 옷차림과 말투를 보니 기억이 난다. 그때도 분명 내가 늦었었다. 여기는 우리 첫 데이트 장소다.

  “어어….”
  “네?”
  “아 아니에요. 늦어서 미안해요.”
  “아뇨 사실 저도 방금 왔어요. 얼른 먹어요.”

  꿈인가. 마르게리따에 빠네파스타와 자몽에이드 2잔, 메뉴도 똑같다.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메뉴다. 검정 펌프스에 그레이 셋업을 입고 있다. 입생로랑 특유의 세련된 도시 여성 느낌 향수가 스며들어온다. 내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했던 스타일이다. 분명 망했을 레스토랑에 우리가 앉아있다. 반지가 없는 걸 보니 썸탈 때가 틀림없다. 머리가 어지럽다.

  “무슨 짓을….”
  “...네?”
  “아 아주 맛있네요. 요리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아 그러게요.”

  무슨 꿍꿍이냐고 물어보려다 창밖을 보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5년 전의 대전 풍경이다. 난 지금 2016년에 와있다.

  우린 끝이 안 좋았다. 아무래도 서로 취업을 준비해서 예민했었나. 상황이 힘들어지니 여유가 사라졌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많이 했다. 장거리가 되다 보니 서운한 일도, 싸울 일도 잦아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건 과언이 아니다. 나중에 어쩌다 마주치면 웃으며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왜 말을 하다 말아?”
  “네? 아니 어?”
  “할 말 있다며, 근데 마지막 말이 빠진 거 같은데.”

  마지막 말이 뭐지. 아니 그보다 여긴 공원이다. 갑자기 얘네 집 앞 공원에 와있다. 진짜 꿈인가 보다. 신경 쓴 듯하면서 안 쓴 듯한 포니테일에 자연스러운 화장이 눈에 들어온다. 기억이 난다. 내가 고백했던 장소다. 얘를 알면 알수록 너무 좋아졌다. 재지 않고 시원시원한 혹은 제멋대로인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냥 예쁘기도 했고. 그러니 내가 먼저 번호를 물어봤겠지.

  “할 말 없으면 나 다시 들어가고.”
  “아 잠깐.”
  “왜애~?”
  “뭐 사귀든가 말든가. 싫으면 말고.”
  “뭐야…. 완전 구려.”
  “싫으면 나 돌아가고.”
  “좋아.”

  꿈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다시 저질러버렸다. 내가 요즘 많이 힘들었던가. 얘와의 연대기를 주제로 꿈을 꾸다니. 그래도 꽤 괜찮은 꿈인 것 같다. 내 인생의 황금기를 얘랑 함께했다. 마른하늘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도 함께 웃으며 천천히 걸었다. 새벽에 남은 붕어빵 하나를 반씩 나누어 먹어도 배불렀다. 뭘 해도 즐거웠다. 이렇게 보면 고백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생각해 여보야?”
  “...어?”
  “나랑 있으면서 무슨 생각 하냐고. 또 게임 생각했지?”

  내 방이다. 내가 대학생 때 살던 자취방이다. 무언가에 깊게 생각이 들 때마다 꿈속 시간이 바뀌는 듯하다. 케케묵은 단칸방 냄새 속에서 피어오르는 싱그러운 샴푸 향이 날 일깨운다.

  “오늘이 며칠이지?”
  “오늘? 10월 04일.”
  “연도는?”
  “말 돌리기는, 2019년이잖아.”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있다. 주마등처럼 인접한 과거가 지나간다. 우리의 연애가 가장 타오를 때다. 하루의 시작과 절정과 끝을 함께할 때가 많았다. 행복한 일상이었다.

  “빨리 일어나. 낮에 같이 공부하기로 했잖아.”
  “잠깐만.”
  “응?”
  “조금만 더 이렇게 같이 누워있으면 안 돼?”
  “못 말려 진짜.”
  “5분만….”
  “응? 왜 울어 갑자기? 무슨 일 있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걱정하며 나를 끌어안는 모습에 더욱 벅차오른다. 벌써 여기라니. 절정 다음이 결말이었던가. 끝을 아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비참한 게 없다. 어떻게든 깊게 생각하는 것을 피하려 했지만 멈출 수가 없다. 발버둥 칠수록 더욱 심연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든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 할 말 있어.”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다. 눈을 떠 보니 한적한 골목이다. 익숙한 장소다. 할 말이 있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무언가 예상치 못한 것을 암시하고 전제하는 발언이다. 안 좋은 추억이 많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

  “무슨 말 할지 알아.”
  “응?”
  “헤어지자는 말 안 해도 돼. 내가 미안해.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네가 나에게 너무 가까운 존재여서 당연한 줄 알았나 봐.”
  “그렇지 아무리 봐도 네가 잘못했지?”
  “어…?”

  느낌이 싸하다. 이별을 고백하려는 사람치고는 은은한 미소가 퍼져있다.

  “그냥 뭔가 다시 느껴보고 싶었는데, 진짜 될 줄은 몰랐네.”
  “이거 설마 다 네가 한 거야? 꿈 아니야?”
  “몰라.”
  “뭐야…. 그래도 뭐, 보고 싶었어.”
  “나도 가기 전에 볼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럼 이제 슬슬 깨워줘. 나 출근해야 해.”
  “응…. 나한테 또 뭐 할 말 없어?”
  “언젠가 직접 네 앞에서 꼭 전할게,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응응, 항상 건강해, 다치지 말고.”
  “너도.”
 .
 .
 .
 .
 .
 .
  
  “이거 좀 길이 많이 막히는데요. 무슨 사고라도 났나.”
  “네? 아….”

  꿈을 택시에서 꿨나 보다. 미쳤지 내가 출근길에 잠이 들고. 현실이다. 그런데 뭔가 개운하다. 마치 오늘 하루쯤은 그냥 회사 안 가도 될 거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기사님, 그냥 세워주세요.”
  “네? 아직 도착….”
  “거스름돈은 됐어요!”

  뭐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갑자기 무슨 낯짝으로 연락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해야겠다. 너무 많이 미뤄왔다. 무슨 말부터 할까. 사과부터 할까. 추억부터 곱씹을까. 아니면 아직 사랑한다고 말할까. 1년 동안 제자리였던 걸음이 멈추지를 않는다.

  “앞에 웃고 계신 분 비켜주세요, 긴급 환자입니다.”
  “아이고, 저 피 좀 봐.”
  “저 정도면 이미 죽은 거 아냐…?”

  뇌리에 평생 잊을 수 없는 향기가 밀려 들어온다. 세련된 도시 여성 느낌이다. 입생로랑 향수다.

  평범한 하루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느낄 수 없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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