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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빚쟁이들(1)
제 959 호    발행일 : 2021.09.01 
강현욱(경영학부·15/창문학동인회)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집의 홀은 좁다. 테이블은 세 개가 전부다. 그래도 반 이상이 찼으니 호황일까. 가게에 들어섰을 때 이미 한 테이블을 여자 한 분이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한 테이블에는 양파가 담긴 소쿠리가 있다. 결국 만석이 됐다. 테이블은 왠지 좀 끈적거렸다.
  종호가 짬뽕이 맛있다고 한다. 그래놓고 자기는 짜장면을 시킨다. 취향이란다. 나는 짬뽕을 먹기로 했다. 추천 받았기 때문에 굳이 시킨 건 아니다. 원래 짬뽕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소주도 하나 시켰다. 주문을 하고서 종호는 입 다문 채 멍하니 있다. 침묵만 계속 되자 왠지 좀 불편해서 내가 말을 먼저 꺼냈다.
- 요즘 뭐해.
- 그냥 있지. 학교 안 가서 좋아. 너는.
- 나도 그냥 집에 있지. 강의 들으면서.
- 이제 졸업인가?
- 아니 아직. 1년 더 해야 돼.
- 그래? 몰랐네. 휴학했었나?
  서로의 사정엔 무관심한 사이. 그래도 꽤 친했는데. 남의 사정 다 알고 지내는 게 쉽지 않긴 하다. 나라고 종호가 몇 학년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냥 재수했으니 나랑 비슷하겠지 싶은 것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괜히 아는 척하고 물어보진 않았다. 그 대신 알만한 걸 물었다.
- 지금도 학교 앞에 사나?
- 어, 누나들은 다 나갔는데 나만 아직 남았어. 
- 슈퍼도 아직 하시고?
- 장사 접으셨어. 두 달 전에 작은 누나 결혼하고서.
- 아, 진짜? 왜? 진짜 오래 하셨잖아.
 이건 정말로 몰랐던 사실이다. 두 달밖에 안됐으니 모를 만 하지만, 이 소식엔 적잖이 놀랐다.
- 오래 하셨지. 부모님도 쉬실 때 됐잖아. 어차피 애들 등교도 안 해서 오는 사람도 없고.
  어딘가 허망한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음식이 나왔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짬뽕은 그릇이 거의 넘칠 듯이 조개가 많았다. 괜히 짜장면보다 이천 원이나 더 비싼 게 아니었다. 껍질을 발라내도 끝이 없어서 그냥 먹기로 했다. 소주도 한 잔 마셨다. 평소보다 썼다.
- 나는 요즘 너무 나태해. 너무 게으른 거 같아.
- 나도 그래.
-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뭐 좀 하려고 보면 벌써 어두워져있고.
- 나도 요새 밤에 잠이 안와.
- 그렇구나. 나도 그래.
  대화는 겉돌고 있다. 모든 말이 마지못해 하는 말이었다. 끊어지는 대화를 억지로 하긴 싫다. 고개를 박고 짬뽕만 먹었다. 솔직히, 그렇게 맛있진 않았다. 먹을 만은 했다.
  사장님 한 분이서 모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요리부터 청소와 서빙까지. 배달만은 대행업체를 쓰는 것 같았다. 툭하면 ‘배달의 민족 주문!’이라는 음성 메시지가 울렸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울려 퍼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 음성은 사장님이 직접 카운터에서 확인 버튼을 클릭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제때제때 그러기엔 사장님은 몸이 한 개뿐이라 너무 바빴다. ‘배달의 민족 주문’은 마치 위급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처럼 일정하게 계속 울렸다. 어떤 위급 상황일까. 덕분에 우리의 침묵이 정당화되었다. 우리의 대화가 자꾸 끊어지는 건 이 소음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진 않다. 우리는 지금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어색하다. 물론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기억은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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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대화가 겉도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정말로 해야 할 얘기가 있는데 아까부터 서로 꺼내질 못하고 있다. 그런 껄끄러운 게 있다.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짬뽕이나 먹자고, 나를 1년 만에 만나자고 한 건 아닐 것이다. 이럴 땐 아무래도 술이 더 들어가야 하는 걸까 싶어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종호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자고 불러놓고 입을 꾹 닫고만 있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사이이긴 했지만 오늘은 좀 아니다. 답답한 인간. 결국 내가 먼저 물었다.
- 지훈이 소식 알아?
- 몰라. 잘.
- 그 날 이후로 연락 해봤어?
- 바로 다음 날 카톡 한 번 한 거 말고 없어.
- 뭐라고.
- 그냥 나쁜 생각 하지 말라고.
  시간은 좀 지났지만 여전히 가슴 한 편엔 착잡함이 남아있었다.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클리셰가 있다. 속담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살면서 하나라도 겪지 않는다면 그런 삶 역시 꽤나 운이 좋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제발 친구 간에 돈 빌려주지 말라는 말을 살면서 한두 번 들어온 게 아닌데, 나는 아닐 줄 알았는데, 나라고 피해갈 리가 없었다.
- 내가 그날 못가서 미안해. 내가 그날 대학 동기들이랑 오랜만에 만나기로 해서 거기 나가는 중에 너한테 전화를 받은 거라. 처음 전화 줬을 땐 내가 뭐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잖아. 그래서 일단 가던 길 간 건데, 나중에라도 병원 들렀어야 했는데.
  사실 놀러 나가는 길에 그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심란해서 별로 즐겁지도 않았다. 계속 적당히 빠지고 가야하나 고민하며 질질 끌다가 결국 취해버렸다. 문제가 생기면 도피하는 버릇.
- 아니야. 왔어도 뭐 딱히. 지훈이는 일어나고 바로 집에 갔어. 요새 음성 판정 나올 때까지 입원이 안 돼. 계속 응급실에 있어야하는 건데 그냥 집에 가더라.
- 괜찮은 겨?
- 그래 보이던데. 
- 근데 어떻게 찾은 거래?
- 경찰에서 마지막 핸드폰 신호 잡힌 위치 찾아간 거라던데.
- 어딘데.
- 몰라. 잘. 어디 모텔. 가니까 손목 긋고 쓰러져 있었대.
  머릿속에서 그 상황을 떠올려봤다. 마치 영화의 한 시퀀스 같았다. 누가 올까 싶은 골목의 허름한 모텔에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손님이 적을 초저녁이라 늘어져있던 모텔 주인은 갑작스런 경찰의 방문에 당황한다. 아까 왔던 손님에 대해 묻는 경찰의 물음에 일단 호수를 알려준다. 키도 주려고 했는데 이미 사라지고 없다. 경찰들이 잠긴 문을 굳이 박차고 들어가니 한 남자가 칼로 손목을 그은 채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다. 서둘러 구급차를 부른다. 한 경찰은 신속하게 귀를 코와 가슴에 갖다 대며 숨이 붙어있는지 파악한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의식이 있는지 보기 위해 뺨도 때리고 몸을 꼬집기도 하지만 반응이 없다. 피는 사방에 어지러이 튀어 있다. 무슨 일인가 뒤따라온 모텔 주인은 현장을 확인하고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욕을 하며 돌아간다. 곧이어 구급차가 도착하고 너덜너덜하게 쓰러져있는 남자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한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뒤처리를 하기 위해 다시 방에 올라온 모텔 주인은 덩그러니 남겨진 칼을 발견한다. 그 칼은 무엇일까. 여기서 망상이 막힌다. 커터 칼? 식칼? 아니면 가위?
- 뭐로 그랬대?
- 모르지 나는.
- 그치. 근데 너는 지훈이 사라진 걸 어떻게 안 거야.
- 지훈이 어머니한테 전화 왔어. 퇴근하고 오니까 이상한 편지 하나만 있고 연락이 안 된다고. 혹시 뭐 연락되거나 아는 거 있냐고.
- 아, 그리고서 바로 나한테.
  이제야 전말을 좀 알겠다. 그날 지훈이는 모텔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냥 돈 갚기 싫은 게 전부는 아닐 텐데. 어쨌든 지금 살아있는 상황에서 생각해보니 빚진 채로 그냥 죽으려했던 게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왠지 좀 괘씸하다.
- 너도 빌려준 거 있어?
- 어. 17만원. 바로 전날 전화 왔었어.
  그 정도면 양호하다.
- 나는 40만원.
- 왜 이렇게 많이 빌려줬어.
- 한 번에 빌려준 건 아니고 한 몇 달 동안 나눠서 빌려준 건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네. 그래도 나름 신용이 있었거든. 그러니까 빌려줬지. 돈은 예전부터 자주 빌려갔어. 옷 가게 할 때 아직 외상값이 안 들어 왔는데 당장 메꿔야 할 게 있다고 하니까. 뭔지는 몰라도 그냥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빌려주고 그랬는데. 그래도 항상 갚는다고 한 날에 잘 갚았어. 근데 올해 초에 장사 접고서도 돈을 자꾸 빌려가더라고,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처음엔 10만원 꿔가고, 다음번에 10만원 더 꿔가고, 그 다음엔 20만원 꿔가고. 매번 다음 달에 바로 갚는다고 얘기를 하는데 빌려 갈 때마다 이유도 들어보면 거절하기 좀 그렇고.
- 그래? 뭐라고 그랬는데.
-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다. 집안에 좀 일이 있다. 아버지 수술 얘기 그런 거.
- 아이고 병신아.
- 왜.
- 그거 다 거짓말이야.
  정말일까. 나는 그동안 지훈이가 날 속였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핸드폰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분명 나를 자극하는 절박함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하긴 그 감정만 진실이지 말에 담긴 내용은 진짜가 아닐 수도 있겠다. 감정마저도 거짓이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 진짜? 상황이 엄청 구체적이던데.
- 구체적인 구라니까.
- 근데 너는 바로 전날에 왜 빌려줬어.
- 알고도 빌려준 거지. 
  나는 거짓말인 걸 알았다면 빌려줬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감정은 진짜라고 느껴졌다면 빌려주지 않았을까. 종호도 분명 지훈이의 목소리에서 정말 심각한 무언가가 있다는 건 느꼈을 것이다. 그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심각할 것이라곤 생각을 못했을 지라도 어쨌든 일단 돈을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을 것이다.
- 지훈이가 아는 사람들이 많잖아. 진짜 친구들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돈을 우리 말고도 여러 사람들한테 많이 빌린 것 같더라고.
- 그래? 얼마나?
- 한 몇 천 되는 거 같아.
  몇 천이라. 숨이 턱 막히는 돈이다. 고작 가난한 대학생에 불과한 나에게는 꿈만 같은 돈인데 그게 빚이라면 항상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할 것 같다. 아무리 장사가 잘 안 되서 접었다고 해도 그 정도 빚이 생겼을까. 가게를 인수하기까지 오랫동안 일해서 헐값에 넘겨받았다고 들었다. 또 손실이 커지기 전에 일찍이 사업을 접었다.  
- 가게 때문에?
- 아니야, 내가 알기론 그 전부터 빚이 있었어.
- 왜?
- 몰라. 정말 답답한 건 걔가 말을 절대 안 해. 내가 그날 응급실 갔을 때도 무슨 일이냐고 당연히 물어봤지. 근데 절대 말 안 해줘. 난 그게 지금 너무 화가 나는 거야. 돈이 급하면 빌릴 수도 있지. 그러다 상황이 어려우면 당장 못 갚을 수도 있지. 그러다 결국 자살까지 하려고 했으면 어차피 못 죽은 상황에선 적어도 돈 빌려준 사람들한텐 왜 그랬는지는 알려줘야 되는 거 아니냐?
  종호 말이 맞긴 하다. 지훈이는 나에게 아무런 연락도 주질 않았다. 내가 종호를 통해 그런 소동이 있었다는 걸 들었으니, 갚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거지, 만약 소식을 못 들었다면 왜 갚는다고 해놓고 연락조차 없는 걸까 답답해하다, 먼저 연락을 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나는 돈 받기에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 내가 가졌던 생각을 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좀 한심하다.
- 지훈이가 나한테 20만원 빌려가면서 자기가 다음 달 10일에 알바 월급 들어오면 꼭 한 번에 40만원 다 갚고 술 한 번 꼭 산다고 그랬거든. 그때는 나 그거 진짜 믿었어. 그래서 내가 있잖아, 40만원 다시 생기면 뭐하려고 했냐면, 그 돈으로 주식 시드 늘리려고 했어. 어차피 나갔던 돈이니까. 뭐 살지 종목 분석도 해놓고 기다리면서 10일 다가올수록 되게 설렜는데. 근데 막상 10일 되니까 연락이 없더라고. 그렇다고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그렇고. 친구 간에 돈 독촉하기가 나는 좀 어렵더라고. 나는 냉정하게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 상황 되니까 마음 약해져. 어쨌든 며칠 지나서라도 연락 오겠지 하고 넘겼는데, 바로 다음 날 너한테 연락 오고 실종됐다는 얘기 듣고, 괜히 안 좋은 생각 떠올라서 불안하고. 또 정말 비슷하게 흘러가고. 지금에서야 다행이지만, 어쨌든 어이가 없다. 돈 줄 사람은 갚을 생각은커녕 죽을 결심하고 있는데, 나는 돈 받아서 주식 살 생각이나 하고 있었네.
- 요새 주식도 하냐.
- 그냥 주변에 많이 하길래 나도 조금 넣었어.
- 할만 해?
- 처음에야 반등할 때 들어가서 좋았는데 요새는 계속 횡보장이라 잘 모르겠다. 어려워.

  앞 테이블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보다 먼저 와있던 앞 테이블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비틀거리다가 미끄러질 뻔했지만 다행히 의자를 부여잡았던 것이다.
- 아저씨 너무 많이 남겨서 죄송해요.
  그녀는 굉장히 혀가 꼬인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사장님은 괜찮다고 했다. 괜찮을 수밖에 없다. 혼자서 먹은 것치고 많이도 팔아줬다. 그녀의 테이블에는 아직도 수북한 짬뽕 그릇과 빈 소주병 두 개가 놓여있었다. 술 상대도 없이, 안주도 별로 먹지 않고 혼자서 두 병이나 마셨다. 저 여자도 분명 뭔 일이 있었나 보다. 사연 있는 사람만 모이는 중국집인가. 여자는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갔다. 사장님은 곧바로 여자가 앉았던 테이블을 치웠다. 일을 미루지 않는 성격인가 보다. 아니면 마감 시간이 다 됐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일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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