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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빚쟁이들(2)
제 960 호    발행일 : 2021.10.05 
강현욱(경영학부·15/창문학동인회)

  - 사장님 여기 언제 닫아요?
  - 닫으려면 멀었쥬. 이제 야식 배달 한창 들어올 시간인데.
  다행이다. 우리는 깐풍기와 소주를 더 시켰다.
  - 그럼 지훈이한테 연락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종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눈치이다. 나보다 떼인 돈이 적어서 그런가.
  - 하면 받으려나?
  - 몰라, 한번 해봐.
  핸드폰에서 지훈이 연락처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종호를 한번 쳐다봤다. 표정이 없다. 혹시나 받을까 하는 기대도 없나 보다. 초록색 수화기를 눌렀다. 곧바로 화면이 바뀌며 신호가 갔다. 제목은 모르지만 익숙한 노래가 컬러링으로 흘러나왔다. 여전히 컬러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희망적이다. 그러나 대기 시간이 20초를 지날 때쯤부터 기대가 점차 사라졌다. 짧은 노래는 다 끝나버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안 받을 걸 알면서도 끝까지 놔두었다. 47초가 되자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종호는 이제야 웃으며 말했다.
  - 안 받는다니까.
  - 그러네. 근데 전화 받았다고 해도 왜 그랬는지 알려줄 것도 아니고, 돈 바로 갚을 것도 아니고. 진짜 친구 간에 돈 빌려주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둘 다 잃는다고.
  - 너 이가은 기억 나냐?
  종호가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 누구지?
  - 초등학교 같이 나온 애 있는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도저히 목소리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아, 알 것 같다. 키 크고 안경 쓰고 걔 아니야?
  - 어, 어쨌든 내가 그래도 지훈이랑 가장 최근까지 연락 했었고, 또 지훈이 주변 사람들도 조금씩 아니까 대충 돌아가던 상황을 나름 추측을 해봤는데.
  종호가 드디어 좀 제대로 된 말을 하려나 보다. 
  - 지훈이가 옷 가게 접고 알바 뛰고 그러는 동안 걔를 만났었어. 그런데 걔한테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얘기를 또 어디서 들었어.
  - 와, 미친년. 어떻게 사기를 쳤는데? 그거 때문에 지훈이가 그런 거야?
  - 어떻게 까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완전히 그 일 때문에 라고는 할 수 없는 게 원래부터 빚은 있던 거 같아. 그래서 그거 갚으려고 계속 술집에서 알바하고 그러면서 돈 모으던 와중에 걔한테 당한 거지. 그래도 걔 탓이 크긴 한 게, 빚이야 원래부터 있던 거니까 그거 때문에 그러진 않았을 거 같고. 그러니까 단순히 돈이라는 이유 하나 보다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겠지. 이가은이 처음부터 돈 때문에 접근한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어. 어쨌든 저렇게 상황 맞춰보니까 지훈이 일이 이해 가더라.
  내 기억 속에 이가은이라는 사람은 한낱 초등학생에 불과한데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길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알아 볼 수 있을까. 사기꾼이 오히려 평범하게 생겼다는데. 
  - 근데 빚은 왜 있던 거야?
  - 그것도 사실 잘 몰라. 근데 계속해서 친구들한테 돈 꿔가고 그러는 이유가 이자 갚느라 그런 거 아니겠나 싶은 거지. 근데 다른 애들 말 들어봐도 정황상 빚이 있는 건 맞는 거 같고, 내 생각엔 어디서 잘 못 빌린 거 같아. 진짜 빌리면 안 될 곳에서. 문제는 그 큰 빚을 왜 졌냐는 거지.
  - 그러게. 이유야 생각해보면 다양하지. 토토, 비트코인, 아니면 합의금.
  - 떠오르는 게 다 한심하기 짝이 없네. 자기가 토토는 안 한다고는 했었는데. 
  - 차라리 아버지 수술비가 진짜였으면 좋겠다.
  올해 초에 지훈이를 만났을 때만 해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고등학생 때부터 6년간 옷 가게에서 일을 하다 드디어 자기만의 작은 가게를 갖게 되었고 앞으로 이 상권에서 우뚝 서겠다는 포부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나니 문득 안타까워졌다. 
  - 지훈이가 옷 장사 계속 했다면 이렇게 까진 안됐겠지?
  - 모르지, 뭐.
  - 요새 다시 사람들 많이 돌아다니는 거 보면 좀 아쉽다. 그냥 버텼다면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잘 됐을 거 같은데.
  - 내가 왜 여기 골목에 숨어있는 작은 중국집으로 부른 줄 아냐. 우리 동네 식당들 한 집 건너 망했더라. 원래 동네 사람들 대상으로만 장사하던 게 아니라 다른 데서도 많이 오는 상권이라 더 심해. 오히려 여기 같이 작게 배달 위주로 하던 데가 살아남았지.
  여전히 ‘배달의 민족 주문!’은 잊을 만 하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헬멧을 쓴 라이더들이 아까보다도 부쩍 자주 가게로 들어와서 음식을 받아갔다.
  - 무작정 버티는 게 쉬운 게 아니야. 다 돈인데. 근데 걔처럼 빚이 몇 천 있던 애가 버틸 엄두가 낫겠냐.
  - 한창 힘들 때 옷 사주러 한 번도 안 간 게 미안하긴 하다.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지만, 내가 옷을 많이 사줬다고 해도 결국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지훈이 입장에선 어설프게 희망을 얻고서 질질 끄는 것 보단 빠르게 사업을 접었던 게 금전적으로는 옳은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적 재난이 무참히 짓밟고 간 젊은 사장님의 꿈은 여전히 구겨져 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자기를 탓하기엔 억울할 것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불운이 찾아와 시련을 겪는 것일까 생각하겠지만 사실 고갤 돌려보면 그렇게 억울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더 잔인하다.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별 말도 못하고 안주나 깨작거리고 있는데 종호가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을 꺼냈다.
  - 너 성우랑은 연락 하냐.
  사실 성우는 한때 종호나 지훈이보다도 더 친했던 친구이다. 종호와 지훈이까지 넷이 함께 형제처럼 친했지만, 성우는 특히 제일 늦게 알게 되었음에도 나와 성격이 가장 잘 맞아 각별하게 친했던 친구였다.
  - 아니, 나는 졸업하고 본 적도 없어.
  - 나한테 한 달 전인가 갑자기 카톡 왔었어. 근데 어이가 없어서.
  - 뭐라고 왔는데.
  종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나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종호 잘 지냄?’
  ‘ㅇㅇ 오랜만이다. 너도 잘 지내냐.’
  ‘우리 엄마가 해준 떡볶이가 니네 집 떡볶이보다 맛있다.’
  ‘뭔 소리야.’
  종호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인 ‘뭔 소리야.’ 왼쪽에는 아직도 숫자 1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 뭔 소리야 이게?
  - 몰라. 
  - 얘도 심각하구나. 근데 성우 군대 갔다 온 건가?
  - 아니, 안 갔을 걸.
  - 왜? 지금 나이가 몇인데.
  - 몰라. 얘는 군대가 아니라 깜빵 안 간 게 다행이야.
  - 왜?
  - 여자에 미친놈이야. 그냥 조금이라도 스치는 여자마다 껄떡대고 다니고 그래.
  - 그러다 조만간 잡혀가겠네.
  왜 다들 꼴이 저런지 모르겠다. 각자 길이 있는 거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누구는 빚에 쫓겨 자살하려하고, 누구는 동창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고, 누구는 여자에 환장하다 언제 사고 칠지 모르고. 소주는 여전히 썼다. 더 이상 이런 얘기는 듣기가 싫었다.
  - 우리 지각했을 때 월담하려다 걸려서 가방만 던져놓은 상태로 도망갔던 거 기억 나?
  그래서 나는 옛날 얘기를 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어릴 때지만 다 큰 줄 알고 세상에 대들 던 때의 이야기들. 내가 계곡에서 죽을 뻔한 거 구해준 얘기, 지훈이가 좋아하던 여자 애에게 고백했다가 까인 얘기, 그거 놀리다 싸운 얘기, 종호가 옆 학교 양아치와 시비 붙어서 싸운 얘기, 운동회 때 성우가 팔씨름 1등한 애기, 10시 넘어도 안 쫓아내는 PC방을 찾아서 밤 새보려다 졸려서 실패한 얘기, 밤마다 차 없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활주하며 유사 폭주족처럼 놀던 얘기, 수학여행에서 선생님들 몰래 숙소 탈출했다가 막상 주변에 할 거 없어서 돌아오다가 어이없게 걸린 얘기, 그 외 잡다하게 일탈했던 추억들.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지만 다시 말하고 들어도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소주가 그나마 달달해졌고 다 식은 깐풍기도 이제 좀 먹을 만 했다. 온종일 죽상으로 무뚝뚝하게만 얘기하던 종호도 어느새 신나서 떠들고 웃었다. ‘배달의 민족 주문!’이 우리 웃음소리에 묻혔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가 퍼져 나와 들어서기가 꺼려졌다. 숨을 힘껏 들이마신 후 숨을 최대한 참으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볼 일을 본 후 소변기의 녹슨 버튼을 몇 번이고 눌렀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손을 씻으러 세면대에 다가가 거울을 봤다. 신나게 웃어대서 그런지 아직 코 양 옆으로 팔자주름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괜히 섬뜩했다. 긴장이 풀려 참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숨을 마시니 화장실의 악취가 그대로 들어와 술이 깰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 언제 이렇게 주름이 지는 나이가 된 걸까. 거울에 비친 주름진 내 모습이 낯설 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방금 전까지 깔깔대던 대화 속 어린 우리는 더 이상 없었다. 세상은 매정하게 변해있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자리에 앉지도 않고 말했다.
  - 나가자.
  - 왜? 아직 술 좀 남았는데.
  - 화장실이 싫어.
  종호는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 그냥 나가버리는 내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 마스크는 가져가야지. 
  계산을 마치고 나온 후 가게 앞에서 종호는 담배를 폈다. 종호가 담배를 폈던 걸 알긴 했지만 지금에서야 다시 기억이 났다.
  - 고맙네.
  - 뭐가.
  - 나랑 먹는 동안 담배 핀다고 밖에 한 번도 안 나간 게.
  - 예의지. 그 정도는. 그런데 막상 너는 어떻게 사는지 말을 별로 못했네.
  - 무소식이 제일 나은 거다.
  - 들어가. 다음에 또 연락할 게.
  - 그래. 너도 조심히 들어가.

  건조한 인사를 끝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집에 가는 길에 지훈이에게 카톡이라도 보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카톡을 열고 어떻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낼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네 소식 들었다. 나는 괜찮다. 돈은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나중에 술 한번 먹자. 아까 전화 안 받던데 이거 보면 꼭 연락 줘라.’라고 썼다가, 지웠다. 결국 보내지 않기로 했다. 어설플 바에야.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로 접어드는 중이었다. 마스크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무렵도 이렇게 추울 때였다. 부푼 꿈이 있었던 이는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좌절을 했다. 나는 다행히 변한 건 없다. 나는 여전히 호구였다. 돈을 왜 안 갚냐는 연락도 왠지 어려워 못하더니 지금은 돈을 안 갚아도 괜찮다는 빈말도 부담이 될까봐 못하는 놈이다.
 
  얼마 뒤 주머니 속 움켜잡고 있는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괜히 한숨이 나왔다. 그러자 입김이 마스크를 타고 올라와 안경을 뿌옇게 만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김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있었다. 떨리는 손에 힘을 꼭 쥔 채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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