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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먹어보고 싶은 김치
제 961 호    발행일 : 2021.11.08 
이준영(환경공학과·20/창문학동인회)

  김치는 어떤 집을 가든, 어떤 식당을 가든 음식을 있는 곳이라면 항상 등장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익숙한 대표적인 음식이다. 김치를 안 먹는 사람은 봤지만 김치를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내가 김치를 즐겨먹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은 맛집의 기준이 김치의 맛일 정도로 김치를 좋아하고 잘 먹고 있다. 김치는 여러 과정과 숙성을 거치면서 더 맛있어진다. 김치와 얽힌 많은 이야기 중 몇 가지를 풀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김치를 먹지 않았던 이유는 김치에 대한 약간의 트라우마와 고집일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교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급식을 먹고 다 먹은 식판을 선생님께 검사 받아야 했다. 매번 김치를 먹지 않아 잔소리를 듣다가 하루는 선생님께서 김치를 강제로 먹이려고 하셨다. 정말 먹기 싫었지만 집에 가지 못 한다는 말과 선생님의 표정이 무서워서 빨리 해결해버리자는 마음으로 김치를 먹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김치의 매운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김치를 보기만 해도 그 기억이 가득했고, 김치를 먹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 뒤로는 김치를 입에 물고 있다가 화장실 가서 뱉고 바로 양치를 해서 입을 바로 정리하곤 했다. 선생님께서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떠나신 후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져 좋긴 했지만, 김치를 보면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건대 아마 3학년쯤부터는 김치를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치를 먹지 않았던 이유는 안 먹다 보니 집에서도 김치 먹기를 강요하지 않았고, 김치보다 맛있는 반찬들도 많고 강제로 김치를 먹은 후 다신 김치를 먹지 않겠다는 어린 고집이었다. 이때의 고집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후회를 느끼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릴 적부터 김치를 먹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외증조할머니(왕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날 정말 예뻐하셨던 할머니는 고기, 생선, 김, 잡채와 같은 요리를 매일 해주시며 꼭 물에 씻은 김치를 같이 주셨다. 혹여나 조금 남아있는 양념 때문에 매워하진 않을까 물 한 잔을 항상 김치 옆에 두셨다. 기억은 안 나지만 다른 김치 말고 유독 할머니가 씻어준 김치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를 가면서 할머니께선 조금씩 양념이 섞인 김치를 주셨다.
  초등학교 3학년 봄바람이 창문을 타고 솔솔 불던 날, 할머니와 짜장면 하나를 나눠먹었던 적이 있다. 김치와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면서 할머니는 접시 위에 김치를 올려주셨고, 난 김치를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거짓말로 짜장면만 먹었다. 할머니께선 이번 김치 정말 맛있게 되었다고, 나중에 배가 안 아프면 꼭 먹어보라고, 김치 한 통을 챙겨주셨고 그대로 집에 가져가 입에 대질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초가을, 왕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아무 정신이 없었다. 다신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과 울부짖음이 나를 장악했고, 끊임없이 흐르던 눈물은 할머니의 사진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마음속에 한바탕 태풍이 지나가고 옛 추억들을 떠올리다가 할머니 김치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몇 달 전에 받은 그 작은 김치는 집을 떠난 지 오래였고, 김치의 향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때부턴 죄책감이었을까. 할머니의 김치도 거짓말하면서 안 먹었는데, 다른 김치를 먹는 건 할머니한테 너무 죄송했다. 그렇게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김치를 먹지 않았고, 할머니의 기억이 차츰 줄어들 때쯤 ‘언제까지 먹지 않을 순 없지’ 하며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  김치가 이렇게 먹기 쉽고 맛있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먹어볼걸, 고집 피우지 말고 그냥 먹을걸.
  현실에선 먹지 못 하는 할머니 김치를 꿈에서라도 먹고 싶었다. 꿈속에서 할머니와 밥을 먹어도 김치는 보이지 않았고 김치가 있더라도 그 맛을 느낄 순 없었다. 나를 제일 아끼고 사랑하던, 내가 제일 좋아하고 사랑했던 할머니의 김치는 다신 먹지 못 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며칠 전 추석 때도 그렇고 명절이나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에선 항상 할머니의 김치 얘기가 나오곤 한다. “할머니 김치가 진짜 맛있었는데” , “할머니 김치만 있으면 밥 세 공기도 먹었을걸?” 대체 얼마나 맛이 있길래 저런 말들을 하는지 너무 궁금하다. 이럴 땐 김치 레시피를 차차 알려주시겠다는 말씀만 남기고 떠난 할머니가 야속하기도 하다.
  이젠 김치를 좋아하고 잘 먹는 청년이 되었지만 할머니의 김치만큼은 먹지 못 한다. 계속 새로운 식당, 새로운 김치 맛을 원하는 것은 어쩌면 알지 못 하는 할머니의 김치 맛이 그리워서일 수도 있다. 하나쯤은 똑같지 않을까. 많은 김치를 먹다 보면 한 번쯤은 같은 맛을 느끼지 않았을까.
  김치를 삼키는 순간마다 옛 후회를 함께 삼켜낸다. 되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꿈속에서라도 좋으니 할머니와 함께 짜장면과 김치를 먹고 싶다. 어젯밤 라멘집에서 먹은 맛있는 김치를 생각하며 한 번 더 할머니를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사람이 꼭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다. 그게 아주 특별하고 값비싼 음식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먹어보고 싶지만 먹지 못 하는, 죽는 순간까지도 먹지 못 하는 바로 할머니의 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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