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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키덜트
제 961 호    발행일 : 2021.11.08 
이규영(영어교육과·16/창문학동인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책임질 것이 늘어간다는 걸 말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희생은 필연적이다. 이 귀염둥이도 내 노력의 일부분이다. 좁디좁은 원룸 속 작은 어항이 세상 전부인 반려 물고기다. 이 친구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즘 들어 혼자 무언가 해보려는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안에 가두기엔 내 반려동물의 그릇이 큰가 보다.

  “귀여워, 주인 왔다고 뛰쳐 반기는 거야?”
  “요즘 맨날 이래. 어항 밖으로 나오고 싶나 봐.”
  “왜? 어항이 답답한가?”
  “그러게.”
  “그나저나 다음 달에 1차 시험이라며. 책상이 뭐 이리 공허해.”
  “눈치 주지 마…. 때가 되면 알아서 할게.”
  “올해까지가 마지막인 줄 알아. 엄마가 남자친구 얼굴 좀 보고 싶다고 계속 눈치 주잖아.”
  “아니….”
  “됐어. 빨리 옷이나 입어. 영화 시간 늦겠다.”
  “응.”

  맑은 물이든 시궁창이든 앞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는 아름답다던데, 주인으로서 괜히 미안하기만 하다. 근데 사실 내가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마음껏 헤엄쳐줄 테니 누군가 방향만 정해줬으면 좋겠다. 옛날 사람들은 날개가 없어서 나는 법을 찾았다는데, 지금의 나는 날 수는 있으나 어디로 날지를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그저 무엇이든 될 수 있겠지,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잠재력 넘치는 아이는 어느새 대학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내던져진 존재가 되었다. 대학은 상아탑이 아닌 네버랜드였다. 책임져주지 않았다. 사회가 내게 가혹하니 나만이라도 나에게 관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좀먹고 있다. 도망가고 있었다.

  “이 영화 꼭 보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난 별로. 애니메이션을 왜 돈 주고 보는지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야. 이거 실사화라니까. 그리고 어렸을 때 이거 본 적 없어?”
  “어렸을 때는 많이 봤지.”
  “무드 없긴.”

  ‘피터팬’이다. 그리고 사실 난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그냥 지금  이 영화가 보기 싫었다. 어렸을 땐 제일 좋아했던 동화 중 하나다. 계산적인 어른들로 가득한 속세에서 벗어나 꿈과 무질서에서 모험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아 너무 재밌었다. 피터팬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
  “가자. 데려다줄게.”
  “뭐야. 영화 안 봤지? 그치?”
  “…”

  사실 뭘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계속 딴생각을 했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이어서 그런가. 아는 맛은 언제나 유혹적이지만 아는 내용만큼 따분한 시간도 없다.
  그러나 지루한 파편치고는 가혹한 영화 시간이었다. 피터팬이 현대인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동화인지 몸소 느끼는 요즘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겉으로는 대충 관람하기 쉬운 동화의 성질을 띠고 있지만, 사실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내용이다.
  나는 웬디다. 내가 피터팬을 떠나 현실로 돌아온 이유는 단순히 집이 그리워서가 아닌, 매력적인 이성과 사랑에 빠져 유유자적한 삶을 그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사회에서 도태되는 나 자신이 아까워서라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나는 후크선장이다. 내가 무서워한 것은 악어가 아닌 악어 배 속에서 울리는 시곗바늘 소리, 시간이 흘러간다는 공포에 몸서리쳤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나는 피터팬이다. 웬디가 아닌 상상 속의 팅커벨을 택한 것은 사랑의 크기가 달라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세상을 희생하는 것이 두려워서임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우리의 머리가 익어 알아서 고개를 숙일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피터팬과 후크선장은 대표적인 권선징악적 인물들이다. 철없이 천진난만하게 사는 걸 선택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악의 피터팬과 철이 일찍 들어 시간에 쫓기며 열심히 사는 선의 후크선장. 그리고 난 그 둘 사이 네버랜드 속 길을 잃은 다 큰 아이 하나.

  “아빠한테 문자 왔어.”
  “갑자기? 뭐라 하시는데?”
  “이번 주말에 선보라네. 괜찮은 남자라고.”
  “…그래?”
  “뭐야, 반응이 왜 그렇게 미지근해?”
  “피곤하다. 들어가.”
  “…그래.”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 너무 피곤했다,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기도 했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후크선장의 갈고리가 내 어깨를 짓누른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온갖 어지러움과 비린내가 나를 덮쳤다. 바닥에는 땀인지 물인지 모를 흔적들이 가득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모습이 역력하다. 물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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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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