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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미용실
제 962 호    발행일 : 2021.12.06 
이치섭(지구환경과학과·21/창문학동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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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저 햇빛은 머리카락을 먹는 게 틀림없어! 그야 내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 계속 눈치를 보며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살금살금 바닥을 기어서, 머리카락 있는 쪽으로 계속 오잖아. 부끄럼쟁이군! 무슨 눈치를 그렇게 보는지. 나 원, 머리카락을 좀 먹을 수 있지 그런 걸로 눈치를 주다니, 이상한 미용실이야.

  조금씩 잘려나가는 머리카락과 가위질 소리를 들으니 점점 몽글몽글해지는군. 분명 저 미용사는 머리카락만 자르는 게 아니라 내 부정적인 영혼도 자르는 게 틀림없어. 이렇게 좋고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다니. 이것 참, 침 흘리면서 자지 않게 노력해야겠군! 잠시만 그럼 머리를 다 밀면 부정적인 생각이 더 이상 안 드는 건가? 난 천재야! 아, 아니지. 그런 게 아니야. 머리를 다 밀면 그때는 군대에 가야 할 시간인 거겠지. 음음, 역시 부정적인 부분을 다 잘라내면 안 돼. 부정적인 것도 조금은 남아있어야 하는 거겠지. 음! 그런 게 틀림없어!

  오, 이제 머리를 감는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분명 이 머리 감는 걸 좋아해서 머리를 안 잘라도 되는 길이임에도 일부러 미용실에 오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 내 목을 감싼 수건. 내 눈 위를 덮은 수건. 좋았어, 눈을 감고 소리를 듣자. 여행을 떠나자!

  물 틀어지는 소리, 물이 배수구에 들어가는 소리. 물이 배수구에 빨려 들어가 듯 내 영혼도 내 머릿속 광활한 우주에서 방황하다가 어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눈을 뜬 곳은 바다. 아름다운 밤바다가 펼쳐진, 흰색의 모래사장.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과 바다에 비춰진 보름달. 파도가 넘실대고 파도소리는 내 발목에 입맞춤을 하고 서서히 부서진다. 아니야! 다시 보니 입맞춤을 한 건 파도가 아니었어! 토끼다! 보름달의 푸른빛을 받은, 푸른 토끼야! 다시 보니 파도가 넘실대는 게 아니었구나! 토끼가 껑충대며 뛰어다니고 있는 거였어! 바다 토끼다!

  하늘에 있는 달에는 달 토끼가 살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저 바다에 있는 달은 하늘에 달이 있기에 비춰진 것이 아니라, 저 바다 안에 달이 있기 때문이구나! 하하하! 그런 거구나! 달에 가기 위해서 우주로 갈 필요까진 없던 거야. 헤엄치자! 껑충대는 토끼들의 품에 뛰어들자! 바다 토끼야 나를 저 밑으로 보내다오! 저기 바다에 있는 달을 향해! 저 깊은 바다 밑으로 나를 이끌어주오! 우주에 가지 못한 나를 위해 바다의 달로 여행을 떠나자!

  머리를 다 감고 다시 머리카락을 잘랐던 자리로 돌아간다. 아직 여행을 갔다 온 피로가 풀리지 않아 비몽사몽하다. 위이잉 소리와 함께 거울의 사내를 보면. 흡족!

  처음에 본 사내보다 훨씬까지는 아니지만, 꽤 단정해졌어! 마음에 드는군! 이제 가자! 마스크를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도 쓰…… 아니야. 모자는 쓰지 말자. 이제 사람을 보며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려주는 건 머리밖에 없으니까. 아! 다른 사람이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이제 머리밖에 남지 않았구나! 타인의 성장과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건 이제 이 머리밖에 남지 않은 것이야. 변화는 좋지만 시간이 흐르는 건 별로 기분 좋은 게 아니지. 내가 실시간으로 늙고 있는 걸, 아는 것은 서글픈 일이야. 이 생각이 드는 건 나도 이제 늙었다는 걸까? 서글프니까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자. 에이! 그냥 모자 쓸래! 다른 사람의 변화 따위. 나만 신경 쓰자. 어차피 다른 사람은 내가 머리 자른 것도 모를 걸.

  “12,000원입니다.”

  지갑에서 주섬주섬 지폐를 꺼내 꼬깃꼬깃한 10,000원 하나, 빳빳한 1,000원 두 장. 이런! 아무리 1,000원의 수가 더 많다고 왕따시키면 안 되지! 나쁜 돈! 미용사에게 돈을 건네고 10,000원은 10,000원이 있는 곳으로, 1,000원은 1,000원이 있는 곳으로 보내는 미용사는 좋은 사람인건가?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곳으로 보내니까 좋은 사람이지. 그곳에서는 왕따같은 건 없으니까. 으음, 아니지, 아니야. 같은 돈이 모인 곳에서도 왕따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법이야. 음, 나쁜 미용사군.  갑자기 드는 생각. 1,000원이 달 토끼일까, 바다 토끼일까. 으음…… 분명 1,000원은 푸르니까 바다 토끼겠지. 잠시만! 바다 토끼는 열 마리가 모여도 달 토끼가 될 수 없는 걸. 애초에 바다 토끼가 달 토끼를 왕따시킬 수는 없을 거야. 달 토끼가 바다 토끼를 왕따시킬 수는 있어도. 그럼 달 토끼가 1,000원인가? 하지만 달 토끼는 위에 있고 위에 있으면 더 고귀하게 느껴지는 걸……. 아! 모르겠다. 머리를 너무 많이 썼어. 그만 생각하자. 이제 그만 생각을 멈추자.

  헤헤헤, 이제 갈 시간이군. 저것 봐, 저 구식 선풍기가 이제 가라고 팔을 흔들고 있어. 얼마나 내가 떠나면 좋은지 팔이 360도로 돌고 있잖아. 고개도 좌우로 흔들면서. 알았어, 알았어. 이제 갈게. 근데 잘 가라고 하면 고개를 좌우가 아니라, 위 아래로 흔드는 게 맞지 않나? 저 신입선풍기 좀 봐봐, 고개를 상하로 흔들잖아. 너보다도 훨씬 낫네. 너 조만간 잘릴 수도 있겠다. 근데 저 선풍기를 뭐라고 불렀더라, 뭐라고 말하는 게 있었는데……. 이런! 아무래도 저 미용사가 자른 건 머리카락이나 부정적인 감정 말고도 기억을 잘랐나보군! 이제 이 지긋지긋한 미용실에서 빨리 떠나야겠어! 어, 아니야 상처 받지 말아줘, 널 보고 말한 게 아니야 구식선풍기야. 널 오래보긴 했지만, 난 항상 널 보러 여기 왔던 거야. 정말이야, 믿어줘. 이제 이 지역에서 구식선풍기는 너밖에 남지 않았는걸. 저 신입한테 밀리지 말아줘. 너만은 오래 남아 있어줘. 나는 다음 달에도 여기에 올게. 그때도 다시 만나자. 그때는 좌우로 고개 흔드는 거에 뭐라고 하지 않을게. 너도 나도 밀리는 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니까. 미용사가 너는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진짜 갈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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