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논란

 지난 25일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1996년 11월 합헌 결정 이후 13년만의 일이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25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형법 41조 등 위헌제청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합헌의견을 한 재판관들은 “사형제도는 헌행 헌법이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로 생명권 제한에 있어 헌법상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조항에도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에 위헌 의견은 “생명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사형제는 그 자체로서 ‘위헌’ 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가 존치·집행되는 국가가 58개국에 불과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장기간 실행되지 않아 이미 사형제는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앞서 1996년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사형제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 문화수준이나 사회현실에 비춰 당장 무효로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사형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59명의 사형수가 있지만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7년 23명에게 사형을 집행한 이후 12년 동안 사행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도에 대한 존폐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형제 위헌법률심판이 이루어진 것은 2008년 9월 광주고법이 전남 보성 앞바다에서 남녀 여행객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70대 어부 오모씨의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진행됐다. 사형제도의 쟁점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는지 여부,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지 여부, 무기징역보다 범죄 억제효과가 높은지 여부 등이었다.

엇갈린 반응

 헌법재판소가 13년 만에 다시 사형제도에 합헌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사회단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여․야당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헌재가 사형제에 합헌 결정을 내리자 ‘사형제 폐지’를 요구해온 종교·인권·시민단체들은 ‘인간의 생명권을 정면으로 부인한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사형제 찬성론자들은 아직 우리 사회에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는 만큼 현 상황에서 사형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헌재 결정을 환영했다. 폐지론자들은 한국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지 12년이 흘러 이미 실질적 사형폐지국의 반열에 오른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날 헌재 결정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여․야당의 반응도 엇갈린 양상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반면 당론으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민주당 등 야당은 “국제적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조계 반응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대다수 법조계 인사들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면서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무부 측은 “당연한 결과이며,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될 결정은 아니라며 구체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례상 어긋나기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검찰과 법원의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변호사업계의 반응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다소 엇갈리는 양상을 띄었다.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의 공동대표인 이헌 변호사는 “우리나라 여건 상 사형제도는 잠정적으로 존치해야 한다고 본다”며 “우리나라 국민들 정서에 사형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면이 헌재의 결정에 반영된 것 같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류제성 변호사는 “사형제라는 것이 국가가 강제적으로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며 “사형제 존폐여부는 그 나라 국민적 정서와 품위를 반영하는데 사형제 합헌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형제 합헌’ 결정 계기로 본 외국 사례

 25일 헌법재판소가 공개한 사형제도의 현황을 보면 사형폐지 국가는 모두 138개국이다. 이 가운데 완전 폐지국은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스페인, 독일, 영국, 터키, 홍콩, 코스타리카, 멕시코 등이다. 군법 등 특수한 사례에만 사형을 인정하는 부분 폐지 국가는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등 9개국이다. 실질적으로 폐지한 국가는 러시아, 카메룬, 가나, 튀지니 등 35개국이고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루미나아와 헝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북한, 모로코, 자메이카 등 59개국에는 아직 사형제도가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1972년 사형이 금지됐다가 76년 다시 합법화된 뒤 지금까지 1000여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중국은 살인 등의 강력범과 함께 마약사범, 부패 관리 등을 사형에 처하는데 공공장소에서 총살형을 집행하는 장면이 국내외에 공개되면서 인권 침해 시비를 빚기도 했다.

한편 헌재의 사형제 합헌 결정으로 국제 인권단체들은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유감이라 전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형제도 자체의 합헌성은 인정하되 절대적 법정형으로 사형만을 규정할 경우에는 위헌이라 판시했다. 외국의 경우 사형제도는 극단적인 범죄에만 예외적으로 인정한다. 사형제도의 오·남용이나 인권문제 등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찬반양론이 뚜렷이 갈리는 문제인 만큼 존폐여부를 확정하기보다는 국회에서 입법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