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근 부산여중생 살인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자의 신상공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인권침해측면과 국민의 안전과 알 권리 측면에서 양측 주장이 엇갈린 가운데 일부 언론에선 범죄자를 떠나 한 인간의 인권침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에 대해 조명해봤다.
 

 사진출처 : 한겨레 
 
 
성범죄자 인권 논란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됐다. 여전히 논쟁거리인 사형제 존폐와 범죄자의 얼굴 등 신상공개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것이다.
김길태의 얼굴이 공개돼 인권 침해라는 내용의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접수됐다. 인권위는 15일 “A씨(37)가 홈페이지를 통해 ‘부산 경찰이 김길태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취지의 제3자 진정을 냈다”고 밝혔다. 이번 진정은 김길태 얼굴 공개와 관련한 첫 진정이라고 인권위 측은 전했다.
반인륜적 흉악범죄의 예방과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쪽은 사형 집행과 흉악범의 신상공개를 주장하지만 반대론자들은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내세우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찬반논쟁
 흉악범죄 용의자의 얼굴과 이름, 나이를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이들의 신상공개 문제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뜨겁다.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피의자 인권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견과 ‘국민의 안전과 알 권리를 위해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것이다. 흉악범 용의자 신상 공개 법안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피의자의 인권 못지않게 피해자의 인권도 중요하다”며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흉악범에게까지 권리를 줄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신상공개를 찬성하는 이아롬 학생(원예학과·06)은 “성범죄가 갈수록 증가하고 그에 따른 수위가 점점 심해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흉악범 신상 공개는 재판받을 권리와 무죄추정 원칙 등 헌법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의 인권 기준을 크게 후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신상공개에 반대하는 주영민 대학원생(사회학과 석사과정)은 “공개를 통해서 성범죄율이 줄어 들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신상공개는 연좌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범죄자의 가족까지 정신적 피해를 입어 신상공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후 피해사례
 연쇄살인이나 아동대상 성폭력 등 잔혹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곤란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흉악범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들이다. 이들은 범죄자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놀림을 받거나 근거 없는 오해를 받는다.
지난해 ‘강호순’이란 이름을 가진 한 네티즌은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의 ‘강호순’의 범죄사실이 드러나자 ‘살인마’라는 글이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등 생각지도 못한 비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름이 소개되거나 불려질 때마다 떠오르는 흉악범 이미지가 이들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흉악범의 동명이인이 낸 개명신청은 속속 허가되고 있다. 이런 추세를 고려하면 최근 발생한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사건의 용의자 김길태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개명신청을 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또한 조두순 사건의 용의자 조두순 신상공개로 인해 그가 살던 아파트값이 떨어지고 사건이 발생한 교회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외국의 사례와 우리나라 성범죄자 신상공개
 미국의 경우 1970년대 후반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신문사가 살인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한 소년범의 이름을 공개한 기사를 보도했다. 검찰은 법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실명을 실은 혐의로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을 고소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연방대법원이 판단한 기준은 보도가치였다. ‘실명 보도에 더 이상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고 사생활에 대한 불건전하고 선정적인 엿보기가 아니라면 보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피의자의 실명 등 신상에 관한 보도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또한 주별로 성범죄자 신상정보가 인터넷은 물론 스마트폰으로 이용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으로까지 개발되었다. 성범죄자 검색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은 GPS를 이용해 현재 위치에서 성범죄자 주소, 사진, 인상착의 등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며, 성범죄 용의자가 발생하면 경고하는 기능 등을 갖추고 있어 사용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과 독일 법원도 피의자의 실명 보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점은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중 어떤 이익이 더 중요한지를 따진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성범죄자의 정보공개 데이터 자체가 미비하다. 3월 11일 현재, 보건복지가족부의 성범죄자알림e(www.sexoffender.go.kr)사이트에는 성범죄자 열람 대상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신상정보를 파악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경찰서를 찾거나 성범죄자알림e 사이트를 방문해 본인확인절차를 거친 뒤 법원의 신상정보 공개명령을 받은 이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열람대상자가 없는 것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에 따라 올해 1월 1일 부터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를 저지르고 법원의 공개명령을 선고받은 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성범죄자의 얼굴은 연일 1면으로 보도되고 있다. 피의자 얼굴 공개로 인한 여러 부작용 또한 드러나고 있다. 성범죄자와 같은 이름, 닮은 꼴, 그의 가족들, 그리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
 신상공개는 성범죄자에 대한 징벌의 효과와 함께 범죄 예방 효과가 있어 재범의 여지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범죄율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여론에 대해 수사기관 측에서는 형법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은 상태이다. 정부는 아동 성폭력과 같은 중대한 범죄에 한해 공익상 필요성이 인정되고 증거 관계가 명백할 경우 수사기관이 피의자 얼굴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법안만큼은 엄중하게 처리되어 피의자 얼굴 공개로 인한 부작용과 역기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아라 기자
ann2011@c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