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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호
장애인이 기댈 수 없는 ‘장애등급제’
제 885 호    발행일 : 2014.11.17 


“장애인의 권익을 보장하라!” 국민연금관리공단 앞에서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1인 시위를 했던 고(故) 송국현(위 사진 속 왼쪽 영정사진) 씨는 뇌병변장애 5급, 중복장애 3급을 지닌 중증장애인이다. 홀로 사는 그는 도우미가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활동보조인제도’가 누구보다 절실했다. 하지만 장애인심사센터를 통해 주기적으로 받는 재심사에서 그는 종합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활동보조인제도가 장애 2급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장애등급제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결국 그는 불이 났음에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끝내 살아나오지 못했다.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서 장애등급제가 장애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는 장애등급제
 
  장애등급제도는 의학적인 기준을 통해 1급부터 7급으로 나눠서 장애를 판정하는 제도다. 지난 1981년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전신)가 ‘심신장애복지법’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장애인등록제도’와 ‘장애인복지법’이 각각 국회에 통과되면서 장애등급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사실상 장애등급제가 생긴 지 30여 년이 지나면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는 제도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사자인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가 현실과는 매우 거리가 먼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안종태(청주시 상당구.80) 씨는 “제도를 30여 년이나 유지하다 보니 현실과 맞지 않는 측면이 많은 것 같다”며 “장애등급제는 의학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하다 보니 진짜로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들은 혜택을 못 받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현행 장애등급제는 의학적인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고 이를 통해 복지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직업, 경제, 자기욕구와 같은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인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 장애인들은 2년 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장애심사센터에서 재심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매년 장애등급 판정기준이 제각각이다 보니 재심사에서 등급이 떨어지거나 장애인에 탈락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한 익명의 장애인은 “어릴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아 지금껏 장애인으로서 제도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며 “올해 재심사에서는 장애인에 탈락돼 이제는 아무런 도움을 못 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관련기관에 가서 항의해도 별다른 답변을 얻을 수 없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장애등급 판정기준을 아는 것도 쉽지 않다. 장애등급 판정기준을 정확히 알고 싶어 관련기관에 전화했다는 김정수(청주시 상당구.63) 씨는 “작년 재심사에서 등급이 하락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연락을 걸었지만 자기네들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며 “결국엔 몇 차례나 다른 기관에 전화를 걸어 겨우 원하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기자는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걸어 장애등급 판정기준을 알고 싶다고 문의했지만 다른 부서로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 담당 부서한테 “보건복지부 소관이 아니니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 연락하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충북생활자립센터 김용구 소장은 “독일 같은 경우는 수백 가지의 항목으로 세분화해 장애인의 직업, 경제, 자기 욕구에 맞출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며 “선진국의 사례를 잘 연구해 종합적인 장애판정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장애등급제에 반대하는 ‘그들’

  충북대신문에서는 장애등급제에 대한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지하도를 방문 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환풍구에 찬 공기가 들어와 온몸이 서린다는 그들이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너 명이 번갈아가며 농성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장애등급제가 장애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립을 방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창원에서 올라와 농성을 돕고 있는 정창일(창원시 마산회원구.34) 씨는 “처음에는 몰랐지만 장애등급제가 사실상 장애인들의 권익을 뺏는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농성을 돕기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관심해져서 많은 아쉬움이 든다”고 전했다.
  그들은 처음에 돗자리 하나로 농성을 시작했지만 점차 책상과 의자를 하나 둘씩 놓았고, 그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해 장애인들이 다치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고 전했다. 마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상민 소장은 “지하도의 통행을 방해한다는 명분으로 경찰들이 철거를 시도하면서 농성하는 분들이 온몸으로 막다가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며 “사실상 농성장이 철거당하지 않기 위해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번갈아가면서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씁쓸함을 나타냈다.
  그렇게 2년 간 농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그들은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박희환(창원시 마산합포구.27) 씨는 “2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없는 것은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증거”라며 “최근 정부가 복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복지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현재 농성을 주관하는 ‘장애등급제 폐지 공동행동’은  국회의사당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각종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김상민 소장은 “224개의 시민단체가 함께 노력을 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권과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차가운 지하도에서 농성하는 장애인분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정부와 시민단체 서로 ‘엇박자’

  사실 정부와 정치권이 장애등급제에 대한 논의에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약으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한다고 했고, 정부도 ‘장애인정책 국정과제 추진계획’을 세워 2017년까지 ‘장애인 종합판정체계’를 개발해 새로운 제도를 마련한다고 전했다. 현재는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제3차 장애종합판정 체계개편 추진단(이하 추진단)’을 구성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인지원실 김미현 대리는 “장애등급제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관리공단도 잘 인지하고 있다”며 “장애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제도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제3차 추진단을 구성해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추진단 구성원 중에서 장애인단체가 제대로 포함되지 않아 사실상 ‘빈껍데기’에 가깝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제1차와 제2차 추진단의 위원 중 장애인단체 소속 참여자가 올해 구성한 제3차 추진단에서는 절반으로 줄어들어 장애인의 권익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은경 활동가는 “추진단이 새로운 제도에 KAMS(한국장애평가기준)를 도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KAMS가 사회적인 불이익이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학적 기준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장애등급제를 그대로 승계할 것”이라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이어 그는 “국민과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고 장애인들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일부 정치권에서도 장애등급제에 대해 다양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동당 정상협  비정규노동 국장은 “정치권에서도 장애등급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노동당의 경우 장애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장애인권리보호위원회 몬티나 분탄 보고관은 우리나라 장애등급제에 대해 의학적인 기준으로만 등급을 판정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등급제에 대한 논란과 농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장애인들이 진정으로 편의와 복지를 누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 역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선호 기자
preferenc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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