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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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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호
설 곳 없는 마지막 싸움터
제 888 호    발행일 : 2015.03.02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뿐입니다(동광 1931년 7월호).” 한 사람이 광목 한필을 두르고 평양의 명소인 을밀대에 올라갔다. 회사의 만행을 알린 그는 평원고무공장에서 일하던 여공 강주룡으로 밝혀졌다. 그는 우리나라 노동운동 사상 첫 ‘고공농성’을 알리는 신호탄을 쏴올렸다. 그 후로 8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높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올라간다. 임금체불, 비정규직과 같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결국 그들의 공통점은 고공을 ‘마지막 싸움터’로 선택한다는 점이다.
 

 

디딜 곳 없는 벼랑으로 몰린 노동자들

  고공농성의 뿌리는 평원고무공장 여공 강주룡이 공장 측에 임금삭감 철회를 요구하며 을밀대위에 올라간 1931년 5월 평양에서 시작됐다. 당시 을밀대는 평양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고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소였다. 그는 밑에 모여 있는 군중들을 향해 “평원고무사장이 임금삭감 철회를 밝히지 않는다면 내려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한 채 9시간을 버텼다. 결국 평원고무공장은 임금삭감을 철회했고 이후로도 그는 파업 노동자들을 위한 집회를 이어갔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공중에 머무른다는 의미로 ‘체공녀’라고 불렀다(동아일보 1931.05.31).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고공농성은 1990년 4월 발생한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농성으로 재 점화됐다. 한겨레21에 따르면 1931년부터 최근까지 일어난 고공농성 101건(100%)을 집계한 결과 50일 이하 고공농성이 82건(81.2%)이었고 200일 이상은 5건(5.0%)으로 나타났다. 특히 50일에서 309일 이하 고공농성 19건(18.8%)이 2003년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봤을 때, 점차 고공농성이 장기화, 일상화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학교 허석렬 사회학과 교수는 “고공에 올라가 수백일 농성을 이어가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며 “자신을 파괴하면서 장기투쟁을 이어가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막다른 길에 놓인 노동자들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올해 첫 고공농성을 시작한 사람들

  기자는 올해 첫 고공농성이 진행 중인 서울중앙우체국을 방문했다. 14m 전광판 위에 두 사람이 위태롭게 서있는 모습이 눈에 먼저 띄었다. 그들은 가로 2m 세로 13m에 불과한 좁은 공간에서 안전 끈 하나 없는 채로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광판 아래에는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에어매트와 구급차가 대기 중이었다.
  전광판 밑에는 또 다른 노동자들이 농성을 돕고 있었다. 또한 추운 날씨 속에서도 자영업자, 예술가 같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술가는 “고공농성을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달려와 농성을 돕고 있다”며 “전광판에 올라간 파업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박진숙(SK브로드밴드 희망연대노조 여성부장) 씨는 “경찰이 강제로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새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옷가지나 먹을 것이 충분해도 추운 날씨에 농성을 이어가기 버거운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전했다.
  전광판에 올라가 있는 장연의(SK브로드밴드 인천계양행복센터.43) 씨도 휴대전화를 통해 ‘막막하다’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는 “며칠간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한 채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있다”며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지만 경영자총연합회(이하 경총)과 별다른 진전이 없어서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닐이나 판자를 덧대 잠을 청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공농성자들은 어지럼증이나 현기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되고, 장기간의 노숙으로 인해 건강상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문가의 입장이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사무국장은 “혹독한 추위와 흔들리는 전광판에서 사람이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며 “농성이 장기화될 경우 신체적으로 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건강 검진 결과 서울중앙우체국 전광판 고공농성자들도 어지럼증이나 현기증을 심하게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현재 노동건강연대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해 고공농성자들의 건강검진을 돕고 있지만 높은 곳에 있는 농성장의 특성상 제대로 된 의료 검진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우체국 전광판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공에 올라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공장 굴뚝에는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도 회사 측과 이뤄진 교섭이 사실상 성과 없이 마무리돼 농성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는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차광호 대표가 45m 굴뚝에서 250여 일 동안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스타케미칼은 지난해 1월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그 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위로금을 받는 조건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차광호 대표를 포함한 28명의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을 거부했고 회사 측으로 부터 해고를 통보받았다. 해고를 통보받은 노동자들이 여러 번 회사 측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어 사실상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하늘에서 외치는 이유

  그렇다면 그들이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고공에 올라가 농성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고공농성이 1990년대부터 급증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유흥배 경제.노동팀장은 “1990년대부터 국가 간 무역장벽이 무너지면서 기업 간에 인수.합병이 쉽게 이뤄졌다”며 “자연스레 기업 안에서 고용불안, 정리해고, 권고실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생존권이 벼랑에 몰린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허석렬 교수도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을 명목으로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줄였다”며 “정부가 기업 중심정책으로 노동시장을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 시스템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노조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노조 가입률이 낮은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2014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노조가입비율을 확인한 결과, 전체 근로자의 가입률이 평균 12.5%에 불과했다. 정규직의 경우 가입률이 16.9%였지만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시간제 같은 경우는 각각 3%를 넘기지 못했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사업장도 30%밖에 없었다. 허석렬 교수는 “노조 가입률이 저조하면 노동자들의 힘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각 노조 간의 연대도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사실상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단체가 없다 보니 고공농성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원들은 ‘희망연대노조’라는 새로운 노조 구성을 시도했다. 현재 비정규직원들이 기본적인 복지혜택도 받지 않고 있다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구성과정에서 회사 측이 조직적으로 해고, 감봉, 폐업과 같은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에 노조 측은 고용노동부차원의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고 각 권역별로 근로감독을 진행했다. 하지만 6월부터 회사 측이 아닌 경총이 교섭에 참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껏 진행된 교섭내용이 번복됐고 요구사항들이 불인정됐기 때문이다. ‘통신사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들을 독립적인 노동자로 인정하지만 업계의 여파를 고려해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는 서울지방노동고용청장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회사 측과 노동자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어디서도 하소연 할 곳이 없는 일부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고, 강세웅(LG유플러스.46) 씨와 장연의 씨가 서울중앙우체국 전광판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번 교섭을 이어갔지만 회사 측이 우리 입장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었다”며 “경총에서는 고공농성에 대해 사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전했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성백선(SK브로드밴드 희망연대노조) 씨는 “파업을 시작한 이후 3개월 분의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생계가 힘들어진 노동자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파업을 돕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회사 측에서 시간을 끌어 노조결성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라도 세상 밖으로 외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장연의 씨처럼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연을 안고 크레인, 전광판, 철탑 위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땅 아래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김선호 기자
preferenc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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