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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3.11.27 월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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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현
<산재 없는 세상을 위하여 ①> 청년노동자의 죽음은 오늘도 묵인된다
제 959 호    발행일 :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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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청년노동자 산업재해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한 사건부터 지난 4월, 평택항에서 현장 노동자인 아버지를 도우러 일일 아르바이트를 왔던 대학생이 300kg의 개방형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한 사건까지. 사건의 장소와 그 이유만 조금씩 다를 뿐, 약자들에게 척박한 노동환경을 강제하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일은 여전히 빈번하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관계자들은 말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건지 모르겠다”,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 “우린 모르는 일이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똑같은 대답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닌 ‘모르는 것이 힘’이다. ‘모른다’라는 한 마디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설사 그 책임이 사람 목숨에 대한 것이라도.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열악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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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이하 산재) 사망자 수는 최근 10년간 감소 추이를 보이며, 청년층(30세 미만) 역시 42명으로 전년 대비 9명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노동자 수 대비 산재 사망률은 다른 OECD 국가들보다도 월등히 높다.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최하위 국가인 영국은 2008년부터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을 시행해 노동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기업이 부과하도록 한다. 또 다른 산재 사망률 최하위 국가 호주도 2003년부터 <산업살인법>을 시행해 산재가 발생하면 원.하청 뿐만 아니라 정부의 상급관리자까지 강도 높게 처벌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노동자를 보호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지만, 산재가 발생하면 피고인에게 소액의 벌금을 부과하고 원청 기업과 다른 관계자는 기소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감독관들조차 재해가 발생한 현장에 적용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규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안전이 지켜지기는 어렵다. 인천대 산업안전공학과 김철홍 교수는 “영국은 법령명에서 처벌 대상을 기업으로 명확히 표기하고, 심지어 2번이나 언급한다. 다른 국가들 역시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을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취급해 엄격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법적 장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쿠팡 물류센터, 직접 해봤습니다

  ‘쿠팡’ 물류센터는 대학생이 많이 지원하는 대표적인 단기 아르바이트 중 하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해 200건이 넘는 산재가 발생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악평이 자자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6월에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계기로 쿠팡 일용직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쿠팡 대표가 사과문까지 발표하며 후속 조치에 힘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후, 상황은 과연 나아졌을까? 이에 기자는 쿠팡 물류센터 근로 환경을 직접 확인하고자 지난 7월 31일, 야간 단기 아르바이트 근무를 신청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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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해가 지지 않은 오후 6시, 웃으며 퇴근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쿠팡 덕평 A노선’이라는 안내판이 적힌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를 탄 지 약 1시간 정도 지나 물류센터에 도착하니, 각지에서 온 버스가 즐비하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버스에서 내려 커다란 물류센터 안으로 들어가니, 담당자의 “처음 왔어요?”라는 질문과 함께 빠른 앱 설치 이후 휴대폰은 압수된다. 근로계약서 역시 작성하긴 했지만, 이를 찬찬히 읽고 확인할 시간 없이 형광펜으로 표시된 항목에만 빠르게 서명하길 재촉할 뿐이었다. 이후 단체로 안전 교육 영상을 30분 정도 시청하고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기자가 담당한 일은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PDA로 확인한 후 카트에 해당 상품을 담아오는 일로, OB(출고) 업무 중 ‘집품’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다른 업무에 비해 비교적 쉬운 업무지만 더위 속에서 몸만 한 카트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자니, 업무 시작 10분 만에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실내 온도가 34도를 기록할 정도로 더운 날씨인데도 에어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낡고 먼지가 잔뜩 낀 대형 선풍기가 드문드문 눈에 띄긴 했으나,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해 존재할 뿐 현장에 근무하는 몇백 명의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는 그렇다 쳐도, 가장 큰 문제는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근무 시작에 앞서 시청했던 안전 교육 영상에는 분명 ‘팔레트 같은 무거운 물건들은 두 명 이상이 운반하며 반드시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실제 작업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일한 지 4시간쯤 지났을까. 옷이 땀으로 흥건하고, 고된 노동에 몸이 지쳐갈 때쯤 “저녁 드시고 하세요”라는 안내 음성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주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뛰어나간다. 저녁 메뉴는 미역국과 불고기로 간 조절이 다소 아쉬웠지만, 일한 뒤 힘든 상태라 금세 식판을 비웠다. 식사를 마친 후,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몇 개 확인하니 어느새 휴식 시간은 끝나버렸다.
  다시 같은 직업을 반복했다. 계속 걸은 탓에 다리가 아파 잠깐이라도 앉아있으려면 관리자가 감시하듯 오가고, PDA에서도 ‘신속 작업 요구’ 창이 뜨는지라 당최 쉴 수가 없었다. 다리의 감각이 점점 사라져갈 때쯤, 2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창가 쪽의 좁은 쉼터로 입성하니 에어컨이 말썽이다. 좁은 방에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뱉고, 연신 땀을 닦는다.
  새벽 4시가 지날 무렵, 관리자의 슬슬 마무리하라는 외침이 들린다. 관리자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미흡했던 사안들을 지적했지만, 이미 지쳐버린 사람들의 귀에 그게 들릴 리가 없다. 1층으로 내려가 출퇴근 명부에 다시 사인하고, 앱으로 퇴근 처리를 했다. 그리고 셔틀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6시였다. 실질 노동 시간은 8~9시간 정도였지만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니 약 12시간을 할애했다.
  이날 쿠팡물류센터에서 만난 일본 난잔대에 유학 중인 박준하(국제무역학과·16) 학생은 “근무 내내 물도 한 잔 마음 편히 마실 수가 없었다. 쉴 수 있는 공간도 제한적인데 그마저도 멀리 있어서 쉬러 가는 길에 휴식 시간이 다 끝나 버린다. 근무 시작 전에 안전 교육이랍시고 여러 안전수칙에 대해 알려주지만, 막상 현장에는 지게차와 나뒹구는 팔레트때문에 교육에서 들은 내용 이외에도 위험요소가 많다”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민병조 회장은 “쿠팡물류센터에서의 노동자 권리회복과 노동환경개선을 위해 지회를 설립했다. 지난 6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자 시위도 했다. 다행히 이후 화재 비상벨이 오작동으로 울려도 대피지점으로 대피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같은 상황에서 관리자의 제지로 불안한 마음을 품고 노동을 이어가야 했다”라며 앞으로도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 현실을 변혁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허울만 좋은 <중대재해법>

  여전히 청년노동자는 일터에서 조용히 죽어간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변화를 만들었다. 지난 1월 8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부상 및 질병에 대해서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단 처벌은 사업주와 안전책임자가 재해 예방을 위해 사전 안전조치와 교육 등을 철저히 했는지와 사고 발생에 따른 후속 조치 그리고 직원과 유가족에게 회사가 책임감을 느끼고 합의와 배상금 지급을 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내리게 된다.
  <중대재해법>은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내년 1월 28일부터 먼저 시행되고, 50명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돼 그전까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산재 사망사고의 70% 이상이 상시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5명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에서 제외돼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법안이 처음 발의될 때에는 처벌 대상을 ‘법인의 대표이사 및 이사’로 명확히 명시했지만 심의 과정에서 빠졌고, 이번에 정부가 입법 예고한 시행령에도 처벌 대상을 ‘사업주 또는 안전책임자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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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김철홍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법안명칭부터 잘못됐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 요구한 법률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 중대재해로 인하여 노동자 및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 기업에 대한 책임의 규명과 엄격한 처벌을 통한 산업재해 예방이 목적이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처벌의 대상인 ‘기업’은 없어지고 ‘중대재해’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형용모순적 법률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중대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를 급성중독, B형 간염, 산소결핍증 등 직업성 질병을 총 24개 유형으로 규정했다. 과로사의 주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과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질환에 대해서는 급성으로 발생하는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빠졌다. 이번 정부는 임기 내인 오는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감축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감축이 아니라 산재를 근절시키겠다고 해야 한다.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은 그만큼의 여지를 남겨놓겠다는 말과 같다. 앞으로의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원래에 취지에 맞게 예방을 위한 법적 장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전면 개정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위험한 환경을 조성한 책임자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원청은 위험을 외주화할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예방조치에 힘을 쏟을 것이다. 이것이 <중대재해법>의 취지이며, 무고한 희생들로 얻은 소중한 성과이다. 산재는 우리 사회의 재난 가운데 가장 쉽게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업장의 변화는 가장 더딘 것일까? ‘n포 세대’라는 말은 그저 취업, 연애, 결혼, 출산 등만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을 뻔히 들으면서도, 컨테이너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환경에서도, 과로와 탈진으로 쓰러지더라도, 그 작업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성현 기자
jcn03226@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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