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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지수
[사람이슈] 한국 범종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다
제 859 호    발행일 : 2013.03.18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 원광식

  “이 사람아! 나는 종을 위해 한쪽 눈을 바쳤어. 혼을 담아야 천년의 소리가 나오는 거지. 잔재주 부리면 끝이야, 끝!” 펄펄 끓는 쇳물을 종으로 완성시키는 과정을 담은 모 증권회사의 CF에서 웅장한 종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이 대사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을 만큼 인상적이다.
  이 대사의 주인공은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쇠를 녹여 각종 기물을 만드는 장인) 기능보유자 원광식 씨다. 우리 시대의 장인, 그를 만나러 충북 진천의 성종사를 찾았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종만 해도 7천여 개. 현재 전국 곳곳의 범종 대부분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 산불로 소실됐던 낙산사 동종과 제야의 종을 울리는 보신각 종은 물론, 신라시대 범종도 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우리나라 종의 살아있는 역사가 된 그가 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언제일까?
  그가 처음으로 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8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는 8촌형인 원국진 선생의 주물공장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도면작업과 조각하는 일을 반복하며 종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가기 시작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국 범종의 매력에 매료된 그는 불철주야로 종을 만드는 데 몰두했다.
  “우리 범종의 소리는 가슴에 와 닿는 소리에요. 꽝하고 부딪히면 천지를 울리고 그 끝의 맥놀이의 긴 여운이 살을 떨리게 하고, 뼈를 울리죠.”
  한국 범종이 가슴을 울리는 깊은 소리를 내는 것은 긴 여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소리의 여운이 1분 이상 이어지는 이유는 바로 맥놀이(종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현상)에 있다. 그는 한국 범종의 맥놀이가 주는 깊은 울림에 매료됐고 그의 인생을 한국 범종에 헌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에 큰 사건이 찾아왔다. 주물일을 하던 중 쇳물이 튀어 눈을 심하게 다치게 된 것이다.
  “앞이 깜깜했어요. 나의 노력에 대한 댓가가  큰 사고로  돌아올 줄은 몰랐던 거죠.” 
  그는 사고난 후 1년간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범종의 깊은 울림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다 접자고 마음을 먹어봐도 밤에 눕기만 하면 귓가에 종소리가 맴돌았어요. 그제서야 내가 종을 만드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어요. 다시 종을 만들고 싶은 열정이 솟아오른거죠.” 
  그때부터 그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신라 종의 복원작업에 매달렸다. 종과의 질긴 인연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정교한 문양과 유장한 소리를 만든다는 밀랍주조기법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됐다. 그는 미궁 속의 밀랍주조기법을 찾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수시로 답사했다. 무려 10년이 넘는 긴 시간 끝에 그는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그 해답의 열쇠를 찾을 수 있었다. 밀랍주조기법의 핵심인 ‘활석’을 발견한 것이다. 마침내 그는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천년의 비밀을 풀고 밀랍주조기법을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잃어버렸던 기술을 되찾고 우리나라 범종계의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1976년부터 ‘범종연구회’를 결성해 범종연구와 제작을 활발히 진행했으며, 컴퓨터로 범종에 대한 가상설계와 음향측정을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세계 최고의 종 제작기술을 보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01년에 그는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그리고 2005년에는 우리 범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자 세계 최초로 종 박물관을 설립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신라시대 최고의 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을 복원하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성덕대왕신종을 복원하고 싶은 그의 염원은 후세에 좋은 종소리를 물려주고 싶다는 장인의 바람이기도 하다.
  “돈이 얼마가 들든 저는 상관이 없어요. 성덕대왕신종이 천년의 세월이 지나 지금 그 생명을 다하고 있는데, 그 소리를 후대에 물려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하지만 그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부딪혀 천년의 세월을 넘겨 쇠약해진 성덕대왕신종을 복원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종을 복원하려면 탁본도 하고 여러 가지 연구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게 문화재보호법에 맞지가 않다는 거에요. 문화재를 보존하겠다고 만든 법인데, 죽어가는 문화재를 살리려고 하는 일을 막고 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그의 기술은 세계에서도 인정할 만큼 정상의 위치에 있지만, 그는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 최고의 종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장인정신은 여러 사람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장인정신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장인정신은 옛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다가 아니에요.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예전의 단점까지 끌고 가는 것은 장인정신에 맞지 않죠.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장인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잘못된 것은 개선하고 시대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야죠.”
  그는 종을 만드는 옛방식을 지키면서 현대기술을 적용하는 ‘온고지신’의 장인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5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종에게 바쳐 진정한 종의 장인으로 거듭난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우물을 파려면 한 우물만 파야 해요. 오랫동안 한 가지에만 열중하면 언젠가 그 끝이 보이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와요. 당연한 사실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빨리 성공하기만 바라느라 이 중요한 걸 놓치는 것 같아요. 끈기를 가지고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겁니다.”
  천년을 간다는 범종은 긴 세월 동안 그 입자가 서서히 부서지며 더 좋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쇠로서의 수명이 다하는 그날, 그 종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가 나온다. 그 또한 그의 수명이 다하는 그날, 우리 시대 최고의 종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한국범종의 깊은 울림을 물려주고자 한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최고의 종을 만들어 내는 그의 장인정신은 후손들의 가슴속에 깊이 머무를 것이다.

남지수 기자
jeesoo0722@cbnu.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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